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2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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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江)아, 강을 죽이지 마라"
[기고] 지율 스님, "나에게는 이곳이 전선(戰線)이에요"
며칠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보낸 이는 '초록의 공명', 메일 제목은 '오리섬 이야기'. '초록의 공명'은 지율 스님이다. 사신(私信)은 아니다. <초록의 공명> 회원들과 다음(Daum) 카페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의 회원들에게
서연 농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프레시앙이 되며]
어느 날엔 솔잎과 잣나무 잎이 철침(鐵針)이나 표창으로 보였다. 새벽 그믐달은 또 은장도였다. 분노 때문이었다. 정부에서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는 걸 지켜보다가 일어난 분노였다. 한미FTA 문제를 거시경제의 지표만 갖고 논하자면, 그 찬반 논쟁은 진창 속에서 끝없이 드
남루한 농부는 다만 사무칩니다 - 연재를 마치며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40ㆍ끝>
올 농사도 들에서 하는 일은 모두 매조지를 했다. 김장용 무도 뽑아내고, 타작을 끝낸 콩대도 모두 밭에 뿌렸다. 요즘은 아침 기온이 영하 5도 안팎이니 갈 데 없는 겨울이다. 하루살이떼 중엔 날개가 새하얀 무리들도 있다. 얼마 전 그 녀석들이 바람에 날릴 때는 눈이 내리
그대 자신의 역사를 버려라!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9> 어느 인디언 주술사의 존재방식
야키족 출신의 인디언 주술사인 돈 후앙(Don Juan)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놀랄 때가 많다. 그가 남긴 영성적인 수사들은 동양정신의 명상적 전통과도 적지 아니 상통했다. 그의 가르침은 '인디언판(版) 도교(道敎)'로도 불린다. 페루 출신의 인류학자였던 카를로스 카
내가 하늘을 아느냐, 네가 하늘을 아느냐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8> 어머니를 회상하며
초심(初心)이란, 장상(長常) 사무친다. 가던 길을 멈추고 구메구메 뒤돌아보았을 때, 저 멀리 보이는 곳에 초심은 못내 머물렀다. 회심(回心)을 하려한들 그때의 마음을 되찾는다는 것은 지난하다. 초심이란 늘 그러하니 도리 없이 추억이다.비망록의 앞부분을 펼쳐보니 첫해
자유, 자유인의 길!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7> 소설의 시점(視点)과 명상의 원리(1)
(박꽃이 핀 어느 달밤에 박각시나방이 다녀갔던 것일까. 산전(山田)에는 박이 열 두 덩이나 속절없이 익어 간다. 잎은 푸르고 박은 하얗다. 다시 가을인가. 산자락을 따라 긴 안개 띠가 생겼다. 여명의 강물 위로 피어오른 물안개였다. 풍물패의 잡이가 돌리는 열 두발짜리의
하 수상한 시절에 ‘봄 몸살’로부터 배우다!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6>
밤이 깊었지만 초승 무렵이라 달은 보이질 않는다. 별들만 저희들끼리 밝다. 마을 뒤 강 건너편에서는 초저녁부터 날짐승 한 마리가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절절히 울었다. 소쩍새였다. 수컷이 저렇듯 울어대는 데는 그럴만한 내력이 있을 터이니, 어두컴컴한 숲속 어디에
어느 봄날의 사변(思辨)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5>
여행은 짧았지만 사념은 길었다. 사념이 길다 보면 마음도 쉬이 지친다. 차창을 넘어 들어온 볕이 예사롭지 않다. 경칩도 지난, 봄볕이었다. 봄날의 햇살 속에는 단단히 갈무리해 놓은 끈들을 느슨하게 풀어 버리는 힘이 들어 있다. 지친 마음이 그 햇살의 힘
입춘(立春) 부근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4>
‘입춘 추위에 김장독 깬다’더니 여전히 춥다. 입춘 무렵이지만 봄 같지가 않다. 문자 그대로 ‘불사춘(不似春)’이다. 더욱이 입춘 전날인 오늘은, 천성산의 뭇 생명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건 한 비구니 스님이 단식 100일째를 맞는 날이기도 하다. 하루 내내 마음까지
“마음을 달래가면서 사는 거지요”
서연의 '농막(農幕)에 불을 켜고' <33>
입춘이 한 열흘 남았다. “여윈 몸을 뒤척이네.” 봄을 앞둔 산하를 두고 그렇게 노래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윈’ 산은 여전히 겨울산이었다. 몸을 뒤척이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이 산 깊은 곳 어디선가 복수초가 노란 꽃을 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