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지만 초승 무렵이라 달은 보이질 않는다. 별들만 저희들끼리 밝다. 마을 뒤 강 건너편에서는 초저녁부터 날짐승 한 마리가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절절히 울었다. 소쩍새였다. 수컷이 저렇듯 울어대는 데는 그럴만한 내력이 있을 터이니, 어두컴컴한 숲속 어디에선가 그 소리를 엿듣고 있을 암컷은 노심초사할 법도 하다. 휘파람을 부는 듯한 호랑지빠귀의 울음소리. 여리지만 비수처럼 서슬이 파랗다. 쏙독새는 또 거두절미하고 대뜸 오이채를 썰어댄다. 밤새들 모두가 그들 나름으로 바쁜 기색이다.
모내기를 끝낸 이웃집 최씨의 무논도 심상찮다. 악머구리와 청개구리 떼 우는 소리가 별스레 요란하다. 산란기를 앞둔 이 녀석들도 대체로 밤에만 운다. 악머구리란 다름 아닌 참개구리를 가리키는 말로, ‘악머구리 끓듯 하다’는 얘기는 이 참개구리 떼가 우는 본새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나무나 풀 위에서 주로 사는 청개구리도 이즈음엔 무논 같은 곳에 와서 얼마간 머문다. 산란을 해야 하니 별 수가 없다. 어미 개구리가 되려면 올챙이시절을 거쳐야 하니 무논이나 웅덩이의 물속에 알을 풀어야 한다. 그들만의 통과의례였다.
봄도 깊고 밤도 깊다. 날짐승, 물짐승 할 것 없이 뭇 생명들이 서로 짝을 부르는 소리 또한 절절한 걸로 보아 세상은 또 도리 없이 그런대로 농익어 가는 것이겠으나, 며칠 전의 날씨를 보아하니 시절이 하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날은 아침나절부터 비가 내리다가 그 뒤끝에는 비거스렁이 치레를 한답시고 날이 몹시 추웠다. 바람도 불어대는데, 살랑살랑 봄 처녀 치맛자락을 흔드는 그런 바람이 아니라 아예 광풍(狂風)이었다. 미친 듯이 불었다. 삿갓봉으로 오르는 진골 입구의 아름드리나무가 낙뢰를 맞은 듯 꺾이고, 그 사품에 나무 언저리에 있던 조립식 주택의 지붕이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강둑 옆에는 파이프 지주가 뽑혀진 채 발랑 뒤집어진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인삼은 음지식물이라 인삼밭에는 차광시설을 해주는데 그 차광시설들도 대부분 바람에 날려 버렸다. 감자밭과 배추 모종이 갓 들어간 밭들을 보니 이랑을 덮었던 비닐들도 태반이 걷힌 채 널려 있다. 어느 해 오월의 봄날에 이런 모진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는가 싶다.
절기로 보아 들녘에서 나물 캐는 할머니들 몇 분은 보일 만한 때이건만, 날이 그러하니 나물은커녕 바깥출입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을 고샅길이 적막할 지경이었다.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천기(天氣)를 엿보려고 하늘을 살피고 또 살폈다. 그렇게 염탐을 해서 집대성해 놓은 학문이 ‘농업기상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날씨는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얼추 기상학 몇 권쯤은 뗀 나도 예전엔 천기 속의 ‘내재율(內在律)’ 같은 걸 가늠해 보았다. 내가 농사짓고 사는 땅의 기상의 리듬이랄까 흐름이랄까 하는 것을 제법 짚어보기도 했지만 이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당장 올 여름에 찾아올 거라는 100년만의 무더위에 이 산골은 또 어찌 몸닦달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농부들은 종종 ‘봄 몸살’이란 걸 앓는다. 봄철 바쁜 농사일 뒤 끝에 앓는 병이다. 옛사람들은 하루 중엔 아침 일이 어렵고, 한해 중엔 봄철 일이 어렵다고 했다. 아침 일이 어렵다 함은 간밤에 쉰 몸이 아침나절엔 굳어 있어 쉬 풀리지 않은 까닭이고, 봄철 일이 어렵다 함은 겨울 한철 기나긴 세월을 쉰 몸이 역시 봄을 맞아 쉬 풀리지 못해 그렇다고 했다. ‘봄 몸살’이 들면 팔다리는 물론이고 등짝이고 허리고 가릴 것 없이 온몸의 삭신과 뼈가 쑤시고 나른하다. 대체로 이 ‘봄 몸살’은 감기 기운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 감기몸살처럼도 보인다. 콧물이 흐르고 목이 붓고, 기침을 할 때는 목의 편도선 부위가 아프고 재채기를 할 때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통증으로 쓰라리기 마련이다. 오뉴월 봄볕을 지척에 두고도 오한 때문에 몸을 떤다.
며칠 전부터 몸이 ‘손님’을 받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긴 했다. 봄날이라지만 날씨가 워낙 좌불안석이었다. 일교차도 심했고, 밤낮을 구별 않고 뜬금없이 추웠다. 무엇보다도 봄 일을 시작하다보니 지난 겨울 몸가축을 튼실하게 못한 티도 바로 났다. 요 며칠간 한 일이라고 해야 밭에 거름을 좀 내고, 흙담 무너진 것을 정리한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결국 손님을 받고 말았다. 손님이란 다름 아닌 그 ‘봄 몸살’이었다.
그간 내 자신의 삶 내부에 축적되어 왔던 모순들, 그것들이 의식주의 문제이든 아니면 내면세계처럼 관념이나 추상의 영역에 속한 문제이든 그 모순들이 몸을 통해 그렇게 표출됐던 것 같다. 이번 ‘봄 몸살’은 바로 그러한 모순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 데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일이 바쁠 때의 이런 몸살은 참, 대책 없는 불청객이다. 몸살이 심한 날은 갱신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특히 비거스렁이를 하던 그날이 큰 고비였었다. 오늘은 몸을 들여다보니 그래도 몸살 기운이 다소 꺾인 것도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두루마리 휴지를 하루에 한 통 정도 쓸 만큼 콧물이 심했었다.
이번에 ‘봄 몸살’이라는 손님을 받고선 많이 배웠다. 내 몸 안에 든 몸살이었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거리를 두고 그 몸살을 관찰해 볼 수도 있었다. 몸이야 다소 축이 났지만 소득도 다소 있는 것이 딱히 손해를 본 것 같지는 않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첫 대목에 내가 좋아하는 경구가 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번에 심하게 앓고 보니 새삼 그 경구가 깊이 와 닿았다. 탐욕이란 게 무슨 재물욕이나 명예욕 따위만을 일컫는 것은 아닐 게다. 농사일도 그렇고 무슨 공부도 그렇고 자신의 분수를 잊은 채 한 걸음이라도 서둘러 가려는 마음 따위 역시 탐욕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들, 아름다운 수사로 치장된 그 가치들에 대한 집착 역시 대욕(大欲)임에 틀림없다.
병을 얻고 보니 우선은 몸으로부터 육질적인 힘이 빠져나갔다. 그런 후 아픈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자 그토록 수선스럽고 볼썽사납던 내면의 여러 기운들도 금시 잦아들었다. 노상 밖으로만 치달리고 떠돌려 하던 마음도 자주자주, 오래오래 내 안에 머물러 주었다.
사실 자연의학에선 이 ‘몸 앓이’를 몸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그 치유를 위한 해법을 찾아가는 자연치유력의 한 작용으로도 본다. 병증 곧, 병의 여러 증상들을 ‘치유’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증상’이 곧, ‘요법’이다”는 말도 나왔다. ‘마음’이 ‘몸’을 믿을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몸은 몸의 방식으로 사유한다는 걸 명심해야 할 듯싶다. 마음만 사유를 하는 게 아니다. 몸도 사유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몸속에 축적된 생물학적인 지혜들, 이를테면 그 지혜들을 통한 자연치유력이랄지 하는 것은 몸 특유의 사유 방식을 잘 드러내 준다. 몸은 내색을 않지만 그 몸속에 숨어 있는 지혜들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이번에 아픈 몸을 들여다보며 영국의 한 속담을 떠올렸다. “감기는 약을 쓰면 2주일, 약을 쓰지 않으면 보름”이라는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 약을 쓰든 쓰지 아니하든 감기는 때가 되어야 나간다는 얘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그 감기약은 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는 게 아니라, 외형상의 증상만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해주는 처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봄 몸살’을 앓으면서는 부러 약을 먹지 않았다. 대신 감기의 일반적인 증상들인 기침과 재채기, 콧물, 고열과 오한 따위를 그대로 겪어냈다.
명상 체험이 있었던 까닭에 그 증상들을 개별적으로 깊이 만날 수도 있었다. 기침과 재채기만 하더라도 목의 편도선 부위와 폐부에서 느껴지는 예민한 통증들과 그 통증에 반응하는 마음 같은 걸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덩달아 아팠다. 그 아픔을 통해 몸과 마음은 하나가 되기도 했다. 몸의 통증도 온 마음을 집중해 바라보니 어느 순간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심해졌다가 어느 순간은 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때로는 몸은 비록 아프되, 마음은 또 그 아픔에 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기도 했다. 몸과 마음은 하나가 아닌 둘이기도 했다. 몸은 성하다가도 아프니 그 성함도 무상(無常)하고, 아프다가도 다시 성한 몸으로 돌아오니 그 아픔도 역시 무상했다. 괴테는 “자연과 멀리 할수록 병마에 가까워진다”고 했는데 그런 말을 실감할 때가 많다. 몸이 아프더라도 그 회복이 도시에서 살던 때와 비교해보면 매우 빨랐다.
지금 내가 마시는 물은 ‘풀차(茶)’라고도 할 만하다. 찻물의 색은 파랗고 향은 또 원색적이다. 산자락과 들녘에서 만난 풀과 나무들이 담긴 차다. 생쑥을 뿌리째 캐서 앉힌 다음 거기에 다시 엄나무와 오가피 잎을 따 넣고 취나물류와 잔대 뿌리, 고들빼기, 야생 달래와 부추 같은 걸 함께 넣어 달인 물이다. 이 찻물을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몸이 반응하는 게 느껴질 정도이니 아마 내 몸에 적지 아니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깊은 밤, 먼 산에선 소쩍새 울음소리가 여전하다. 찻잔 속의 물에 파문 하나가 일었다가 사라진다. 그 파문에 소쩍새 울음소리가 간여를 한 것일까. 육이부동모(六耳不同謀)! 여섯 개의 귀로는 함께 도모할 수 없으니 소쩍새와 나, 둘만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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