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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江)아, 강을 죽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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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江)아, 강을 죽이지 마라"

[기고] 지율 스님, "나에게는 이곳이 전선(戰線)이에요"

며칠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보낸 이는 '초록의 공명', 메일 제목은 '오리섬 이야기'. '초록의 공명'은 지율 스님이다. 사신(私信)은 아니다. <초록의 공명> 회원들과 다음(Daum) 카페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의 회원들에게 보내는 공통 메일이다. 독자들은 천성산의 도롱뇽을 기억할 터이다. 경남 양산의 천성산에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한다며 터널공사를 할 때, 지율스님은 "산이 아파 우는 소리를 들었다"며 그 공사에 단식투쟁으로 맞섰었다. 당시 단식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네 차례. 총 200일이 넘었다. 지율 스님은 지난 해 3월부터는, 천성산에서 낙동강으로 그 동선을 옮겼다. 낙동강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공사가 한창인 현장이다.

'오리섬 이야기'에는 카페 회원이 쓴 낙동강 순례기 한 편이 실려 있었다. 순례기의 제목은 <지율의 전선(戰線), 낙동강을 따라 걷다>. 순례기의 사진 가운데는, 주민들이 오리섬이라 부르는 낙동강의 한 섬에서, 포크레인이 모레와 자갈을 채취하고 덤프트럭이 그 골재를 운송하는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본문을 읽어보니, 지율 스님의 말 가운데 한 대목이 눈에 밟혔다. "방문객에게는 정경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전선(戰線)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이곳'은 낙동강이다. '전선'이라는 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불가의 한 출가 수행자가 전선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비장했을 터이다. "이곳이 전선"이라는 그 단문 너머로, 진양조장단의 장문(長文)들이 얼마나 많이 은복(隱伏)하고 있겠는가. 지율 스님은 상주보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서는 "슬픔이 분노로, 분노가 슬픔으로 변하지 않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힘으로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경제성장론자, 개발론자들은 성장과 개발 앞에 '녹색'이라는 말을 붙였다. '녹색뉴딜'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들은 유형의 자산도 아닌 무형의 자산인, 그 '녹색'이라는 언어마저 독과점하고 나섰다. '녹색'이 괴물처럼 나타난 게 그때부터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선도하는 주체들 역시 녹색성장, 녹색개발을 내세운다. 4대강 예산은 22조원, 국토해양부 장관은 16개의 보와 준설공사, 제방공사 등 핵심 공정의 60%를 올해 안에 끝내겠다고 말한다. 번갯불에 콩을 튀어먹는 형국이다. 그 사업은 낙동강에서 이미 삽질을 시작했다. '초록의 공명'은 낙동강의 그 공사현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수중생태계, 야생동물과 철새들의 삶의 현장 등 강의 생태계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사진과 글로 증언하고 있었다. 잿빛 승복의 그 회색(灰色)이 녹색과 싸우고 있었다. '초록의 공명'의 그 초록이 녹색을 고발하고 있었다. 초록과 녹색은 동색이 아니었던가. 역설이다. 생태운동가가 녹색을 고발하고 녹색과 싸우다니. 녹색은 녹색이 아니다. 색감이 흔들린다.

어떤 이는 이 정권을 두고 "이명박은 우리의 분신, 우리는 이명박의 분신"이라고 말한다. 이명박을 불러들인 요인은 결국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또 어떤 논객은, "이명박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내려온 외계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말인즉슨 옳다. 끼리끼리 모여 한쪽에서 "맹박이 나빠요" 하면,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고 "저두요" "저두요" 하는 풍경보다는, 이처럼 우리 내부의 구조적인 모순의 실체를 성찰하는 언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쪽에서 드러난 모순은 이쪽에 내재한 모순과 분절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모순과 모순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투영한다. 불이(不二)와 비이원주의(非二元主義)의 사상이 그러할 터이고, 이를테면 모든 존재들의 생태적 존재방식의 이미지인 인드라망(Intra網)도 그런 논리를 받쳐줄 터이다. 그러나 낙동강의 저 전선(戰線)을 보라. 우리는 불이(不二)하면서, 불일(不一)하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면서 하나도 아니다. '4대강 살리기'는 '4대강 죽이기'가 될 수도 있다. 전선에는 피아가 존재한다. 생태적 가치를 지키려면 반(反)생태적인 가치와 싸울 수밖에 없다. 지율 스님이 쓴 '전선'이라는 말은, 진정한 생태주의자가 아니라면 쓰지 못했을 터이다.

나는 전자우편 메일함에 사신 등 메일을 보관하지 않는다. 읽고 나면 지운다. 메일함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지율 스님이 보낸 메일 몇 통이 남아 있었다. 그 메일 가운데 하나는 지난 해 3월 받았던 것이었다. <보낸이, 초록의 공명 / 보낸 날짜, 2009년 3월 06일 금요일, 오후 13시 14분 12초 / 제목, 낙동강 걷기를 떠나며>. 한 비구니 스님이 천성산의 도롱뇽을 위해 단식한 이후, 그 도롱뇽은 하나의 상징이었던 것이지만, 다시 낙동강으로 그 전선을 옮기면서 보낸 첫 번째 메일이다. 무슨 예감 때문이었는지 그 메일을 지우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메일을 계속 받았다. 낙동강에 삽질이 시작된 뒤로는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일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대부분이 비보(悲報)였다. 지율 스님은 '오리섬 이야기'에서, 낙동강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는 공사현장을 두고, "학살의 현장이며 사체를 쌓아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메일을 읽을 때마다 아팠다. 고단하고 팍팍하다, 사는 일이. 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복장 터져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할 사람이 부지기수일 터이다.

(지율 스님과 그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소개합니다.)

1.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http://cafe.daum.net/chorok9).
지율 스님이 카페지기로 있는 <다음> 카페이다. 카페 이름에 등장하는 '이곳'은 낙동강이다. 이 카페에는 회원들 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율 스님과 카페 회원들은 '낙동강 숨결 느끼기' 1박2일 코스의 일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카페 메뉴에는 '순례자들의 일기' '낙동 순례 일정' '4대강 개발의 문제점' '순례 기사 모음'과 기타 순례 관련 글들이 있다. 순례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낙동 순례 일정'을 클릭하면 <1박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에 참가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월 17일 현재 여덟 번째 순례를 진행했다.


2. '초록의 공명'(www.chorok.org).
이 사이트는 지율 스님의 홈페이지. 지율 스님이 자신의 삶과 생태사상, 생태운동과 관련한 글을 담고 있다. 사이트의 메뉴 가운데 '물길을 걷다'에는 지율 스님이 낙동강 현장에서 보내는 글이 실려 있다.

(시(詩)를 쓸 줄도 모르고, 쓰지도 않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졸시(拙詩) 한 편 썼습니다.)

<강(江)아, 강을 죽이지 마라>

강(江)에 삽질하는 짓은 어디서 배웠느냐, 사람아
누가 그리 하라 하던?
천강(千江)에 뜨던 달이 그리 하라 하던?
보리밭에 볏짚 덮어주러 가야 하니까, 어여 말해 봐
모래톱과 갈대, 수달, 고니, 노랑부리저어새가 그리 하라 하던?
피라미와 버들치, 쏘가리, 꾹저구, 퉁가리가 그리 하라 하던?
해가 뜨면 물비늘, 달이 뜨면 은결, 그 윤슬이 그리 하라 하던?
소백산에 해 지기 전에, 어여 말해 봐
사행천의 곡선(曲線)이 그리 하라 하던?
그대만 주어(主語)이겠느냐, 사람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러하듯, 강도 주어가 아니더냐
강만 목적어(目的語)이겠느냐, 사람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러하듯, 그대도 목적어가 아니더냐
체로키족 인디언은 강에서 물을 떠 마실 때
강을, 긴 사람아, 라고 불렀다
그대를, 강은 뭐라 부르는지 아느냐

사람아, 사람을 죽이지 마라
강아, 어이 강아, 강을 죽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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