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4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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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4>현대의 황진이들1
살롱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김봉숙 여사
江西文學 제 6호에 文酒 40年-試論을 기고했더니 반응이 괜찮은 듯 속편을 써달란다. 그때는 남성사회를 중심으로 썼으니까 이번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뜻이 있을 것 같다. 인생이나 사회의 선명한 단면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여성과
남재희 전 언론인ㆍ국회의원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3>장기표와 권영길
어느덧 후배들에게 술 사주는 나이
사람들은 나에게 선배 운이 좋다고 말한다. 그 동안 훌륭한 선배들을 만나 총애를 받고 술을 함께 하면서 교훈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제 그런 선배들은 몇 분 남고는 거의 고인이 되었다. 이제 내가 후배들을 아낄 차례이다. 내 식으로 값싼 대폿집에서 술 마시는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2>신상초
통렬한 독설의 정치평론가
주당(酒黨)당수 가운데 당수는 누구일까? 50년대부터 80년대 전반까지의 언론계에서 라면 나는 격(格)도 고려에 넣어 당시 일급의 독설가며 정치평론가였던 신상초(申相楚)를 꼽고 싶다. 전하여지는 이야기로는 5·16쿠데타를 한 박정희 소장은 역시 소탈한 술꾼이기에 측근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1>오종식
술의 맛과 멋을 아는 酒仙
술 마시는 일을 도(道)의 경지로 끌어 올리려고 노력한 사람이 언론인 석천 오종식(昔泉 吳宗植)선생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술 마시는 것은 하나의 도와 같았다고나 할까. 만약에 주객(酒客)에도 주선(酒仙)이 있다면, 그리고 또 내가 주선을 만날 수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0>요시오까 다다오(吉岡忠雄)
한국을 사랑했던 ‘추악한 일본인’
일본 마이니찌(每日)신문의 특파원으로 요시오까 다다오(吉岡忠雄)씨가 부임한 것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직후였다. 마침 조선일보의 방우영(方又榮)상무(현 회장)가 간부들을 집에 초청하는 기회에 조선일보와 제휴관계에 있던 마이니찌의 요시오까 특파원도 함께 불렀다. 벤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9>민기식
"동창끼리 똘똘 뭉치면 우리나라는 망해요"
문주 이야기를 하는데 폭탄주를 들며 “위하여”하고 외치는 ‘무주’ 이야기면 몰라도 어떻게 민기식 육군대장이 거론되느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대장의 인간사에 대한 접근, 세상을 보는 눈 등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찬탄할 만한 것이어서 여기서 다뤄 보려는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8>천관우
"이 놈, 네가 나를 능멸했겠다"
나는 언론인들의 수명과 관련하여 나 나름대로 공식을 만들었다. 석간 신문 기자들은 조간 신문 기자들에 비해 단명하기 쉽다라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신문이 조간으로 되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간과 석간이 비슷했다. 석간신문 기자들은 신문을 내고 나서 점심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7>선우휘
한 달에 한 번은 痛飮한 '막걸리대령'
역시 소설가는 글이나 말에서나 재치가 있다. 그리고 선우휘는 어느 좌석에서나 거침없이 재치있는 말들을 내뱉는다. “에베레스트산이 왜 높은지 아슈?” 무슨 말인가 해서 생각에 빠지면 “히말라야산맥에 있으니까 높은 것 아니여. 평지 돌출이란 없는거지.” 음미해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6>조덕송
청운각에서 마시고 대포집으로 2차
언론계에서 조대감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조덕성 씨는 6.25전의 이른바 해방 공간에 신문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타고난 사회부 기자라 할 만큼 연파 기사로 필명을 날렸다. 백범 김구선생이 암살되었을 때는, 특히 그 장례식 기사로 사람들의 심장을 거쳐 조선일보에 정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15>이병주
볼보와 코냑, 여인을 사랑했던…
‘소설 알렉산드리아’, ‘지리산’, ‘관부 연락선’, ‘쥘부채’ 등 비교적 진지한 작품에서 시작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설을 대량 생산한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 요즘 그를 잘 알던 사람들과 회고담을 나누게 될 때 나는 그를 ‘잡놈’이라고 표현한다. 결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