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산이 왜 높은지 아슈?”**
역시 소설가는 글이나 말에서나 재치가 있다. 그리고 선우휘는 어느 좌석에서나 거침없이 재치있는 말들을 내뱉는다.
“에베레스트산이 왜 높은지 아슈?” 무슨 말인가 해서 생각에 빠지면 “히말라야산맥에 있으니까 높은 것 아니여. 평지 돌출이란 없는 거지.”
음미해 볼 만한 이치가 담겨져 있는 재담이다. 전체의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세계적으로 뚜렷한 인물이 나오는 것이지 아무데서나 위대한 인물이 나오는 게 아니다. 소설도 그렇고, 과학도 그렇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에 간 우리들의 지사들에게 중국사람들이 무어라고 충고하였는지 알아요? 어서 고국에 돌아가서 아이나 많이 나으라고 했대요.” “화장실에 들어갔으면 뒤나 보아라.” 제 할 일만 하지 딴짓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사실 땅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의 ‘고향’이란 단편에 나오는 구절인데 선우 선생은 그것이 마음에 들어 “길이 따로 있나. 사람이 다니면 길이지”란 말을 자주 한다.
선우 선생은 소설가이면서도 조선일보 논설위원, 편집국장, 주필 등 언론 경력도 화려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한달 한번 통음으로 머릿속 대청소**
그에게는 한 가지 고집이라 할지 신념이라 할지 또는 습벽인지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통음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때까지의 머릿속 찌꺼기를 씻어내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음 후에 그는 활발해지는 것이다. 자기는 머릿속 대청소를 통해 발상의 전환으로 신선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음의 의식에 자주 내가 상대가 되었던 것이다.
한번은 도염동에 과일주 담근 집이 좋다고 하여 둘이 가서 마셨다. 선우 선생은 나보다 열 살쯤 위이다. 그날 따라 나는 괜찮은데 그는 의식을 잃고 큰 길에 누워 버렸다. 공중전화에 가서 조선일보사에 연락을 해야 했기에 나는 그동안 혹시나 하여 그의 시계, 지갑 등을 모두 챙기고 갔다.
체격 좋은 기자를 차에 태워 보내라고 했는데, 온 것은 역시 장대한 박범진 정치부 기자였다. 그는 지금 재선의 국회의원이다. 선우 선생을 태워 정릉까지 갔는데 골목이 헷갈렸다. 그래서 둘은 골목을 나누어 선우 선생 집을 찾기로 했으며, 선우 선생은 술을 안 마신 박 기자가 맡았다. 약속 장소에 다시 오니 박 기자가 집을 찾아 모셨다는 것이고, 우리는 시간이 매우 늦어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니 떠들썩했다. 만취하고도 일찍 나온 선우 선생이 간밤에 술에 취해 노상강도를 당했다고 회사 안을 떠들고 다닌 것이다.
술 먹는 코스는 우선 배를 채울 수 있는 빈대떡집이거나 고기집이고, 그 다음이 스탠드바이다. 요즘은 카페나 룸살롱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여급의 서비스를 받으며 맥주를 마시는 스탠드바가 인기가 있었다. 통금이 있던 때라 더 마시고 싶으면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때 회현동에 유엔센터라고 밤 새도록 하는 고급 술집이 있었다. 늦으면 그리 갈 수밖에. 한번은 돈이 떨어져 선우 선생의 IPI(국제언론인협회) 신분증을 맡기고 술을 마셨다. “평생 IPI신분증을 처음 써보는군.” 그의 우스개다.
***'김대중 납치범은 나오라'**
그는 언론인으로서도 기억될 만한 일을 많이 했다. 김대중씨가 일본서 납치되었을 때는 주필인 그가 범인은 숨지 말고 나오라는 사설을 시내판에 기습적으로 바꿔치기로 실어 그 용감함이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그는 일찌기 기독교가 유입된 수준 높은 사회 환경에서 자랐으며 경성사범(서울사대의 전신)을 나온 후 조선일보 기자를 잠깐 하다가 정훈장교가 되었다. 그때 어찌나 술을 좋아하고 규율을 안 지켰던지 ‘막걸리대령’으로 통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끔 말한다. "내가 대령으로 끝났기에 소설을 쓸 수 있었지, 별을 달았으면 못 썼을 것이다.“ 맞는 이야기 같다.
선우 선생도 이병주씨만큼 다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을 많이 쓴 편이다. 나는 그 가운데서 ‘깃빨없는 기수’, ‘불꽃’, ‘사도행전’등 초기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
지금은 없어진 신아일보에서 나에게 선우휘, 이병주에 관한 글을 하나 써 달라고 했다. 그래서 평생에 한번 어줍잖은 문학평론을 해보았다. 그 글은 문학평론 목록에 올라 있다.
***선우휘와 이병주**
이병주, 선우휘는 동연배로 둘 다 대학교육을 받았다. 하나는 경상도 남쪽에서 서울로 왔고, 다른 하나는 평안도 북쪽에서 서울로 왔기에 둘 다 리버럴(자유주의자)이지만 전자는 그 좌파이며, 후자는 그 우파이다. 그래서 이병주의 ‘지리산’, 선우휘의 ‘사도행전’을 대비하여 글을 써 본 것이다.
요즘 대학에서 한국정치에 관한 강의를 하는데 해방 후 3년간의 이른바 해방공간을 설명할 때에는 그때를 다룬 소설을 읽어 보라고 권고한다.
사상의 스펙트럼에 따라 나누어 보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진보파, 이병주의 ‘지리산’은 리버럴 좌파, 선우휘의 ‘불꽃’, ‘깃빨없는 기수’는 리버럴 우파,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보수파 등. 이병주의 리버럴 좌파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이 스페인 내전 당시의 공화파를 동정하던 그런 맥락이었다. 나중에는 변했다.
선우 선생과 엄청 술을 마시고 재담을 하였는데 그것도 끝나게 되었다. 그가 중앙일보에 ‘물결은 메콩강까지’라는 월남파병을 예찬하는 소설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실리는 취할지 모르겠으나 도덕적 명분은 없는 파병으로,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가 그 일을 사과하고 있지 않는가.
나중에 한겨레신문 부사장이 된 임재경씨와 함께 장시간 술을 마셔가며 간곡하게 말렸다. 그런데도 선우 선생은 우편향의 길을 가고 말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