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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2>신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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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회고-文酒 40년 <22>신상초

통렬한 독설의 정치평론가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소장과 끝까지 통음**

주당(酒黨)당수 가운데 당수는 누구일까? 50년대부터 80년대 전반까지의 언론계에서라면 나는 격(格)도 고려에 넣어 당시 일급의 독설가이며 정치평론가였던 신상초(申相楚)를 꼽고 싶다.

전하여지는 이야기로는 5.16 쿠데타를 한 박정희 소장은 역시 소탈한 술꾼이기에 측근에게 구정치인 가운데 쓸 만한 술꾼을 추천하라고 했다 한다. 그리하여 잘 알려진 대중적 음식점 용금옥(湧金屋)에서 우선 김수한(金守漢)씨(나중에 국회의장)와 대작, 김씨가 떨어져 나가고, 송원영(宋元英)씨(민주당 대변인으로 유명)가 바톤을 이었으나 역시 중도 탈락. 마지막으로 신상초씨가 등장하여 끝까지 죽이 맞아 마셔댔다는 것이다. 정확한 것인지 확인은 안됐으나 대충 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신상초씨에게는 아주 파격적인 면이 있다. 돌아가신 분에게 좀 어떨까 하지만 선우휘씨에게 들은 것으로 신상초씨의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술에 만취한 신씨는 택시를 타고 고급 적선지대인 묵정동으로 가자고 했다. 도착하고 보니 택시비가 좀 모자랐다. 기사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다. 그때 멀끔한 청년이 개입하여 기사를 타이른다. 그리고 깨끗한 집으로 안내하고 주인에게 귀한 손님이니 잘 모시라고 당부한다. 막 자려 하니까 노크소리가 나 문을 여니 그 청년이 “편히 주무십시오.”하고 인사를 한다. “요즘 세상에 참 훌륭한 청년도 있군.”하고 혼잣말을 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노크를 하며 “선생님, 편히 주무셨습니까.”하고 물러갔다. 나올 때 시계를 맡기며 셈을 하니 계산이 갑절이다. “선생님, 그 젊은 사람이 먼저 가면서 셈을 선생님이 하신다고 하던데요.” 사기를 당하기는 당했는데 신상초씨는 결코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동경제국대학을 다녔으니, 천재인지는 몰라도 수재는 틀림없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에 있었으며, 전쟁이 끝나자 대담하게 연안(延安)에 갔다. 귀국하여 주로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당시의 정치평론을 주름잡았으며, 성균관대 교수도 지냈다. 민주당 대변인, 국회의원(유정회), 반공연맹 이사장 등을 지냈는데 그런 이력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통렬한 독설의 정치평론가와 당대의 주호(酒豪)가 그의 본령이다.

그는 정당의 당(黨)자는 집안에 흑심을 품은 자들이 들어앉은 것이라고 파자 풀이를 하며 정치인들을 매도한다. 또 한번은 한 학자출신 정치인을 양심(良心)이 아니라 양심(兩心)을 가진 사람이라고 피부를 벗겼다.

***“한강의 기적이 정인숙 사건이더냐, 조국 근대화가 와우아파트더냐”**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과 학생회에서 중앙일보 신상초, 동아일보 송건호(宋建浩), 조선일보 남재희의 세 논설위원을 연사로 부른 일이 있다. 첫 등장은 신 선생. “한강의 기적이 정인숙 사건이더냐, 조국의 근대화가 와우아파트더냐.” 완전히 대중집회의 선동 연설이다. 대학에서 저런 연설을 해서 되나 하고 기가 막혔다. 그러더니 연설을 마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내년으로 50이 됩니다. 대개 50이 고비입니다. 50이 되면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고 심약한 심정 토로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부치미 집으로 가서 술을 통음하였다.

무교동에 ‘자자’라는 조그마한 맥주집이 있었다. 주인은 국문과 대졸의 젊은 이혼녀. 근처의 조선, 동아, 한국, 중앙의 논설위원들의 집합소가 되다시피 하였다. 거기서 약 10년 선배인 신 선생과 각각 소속사를 대표하여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내가 감히 신선생의 적수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그날은 공교롭게 내가 완승을 거두었다.
그는 화장실에 간다며 내빼버렸다. 그것도 애교다.

그 후 그는 나를 특별히 맥주집에 초대하였다. 맥주를 마시며 선배 언론인으로 후배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였다.

“글을 쓸 때나 강연을 할 때는 우선 북의 김일성 체제를 매섭게 비판해요. 그리고 나서 박정권이 이리저리 잘 못한다고, 시정하라고 비판하는 거요. 그래야 탈이 없어요. 당신은 그렇게 않더군요.”

짚신 장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을 때까지 좋은 짚신 만드는 비결을 안 가르쳐 주다가 마지막에 숨을 헐떡이며 “털, 털” 하고 가르쳐 주었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털을 깨끗이 제거하여 말끔히 보이게 하라는 비법이다. 그런데 나는 신 선생의 비법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번 정보기관에 끌려 다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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