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文酒) 이야기를 하는데 폭탄주를 들며 "위하여"하고 외치는 '무주(武酒)' 이야기면 몰라도 어떻게 민기식 육군대장이 거론되느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 대장의 인간사에 대한 접근, 세상을 보는 눈 등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찬탄할 만한 것이어서 여기서 다뤄 보려는 것이다.
한번은 육군사관학교에서 민 장군을 초청하여 지휘관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단다. 그때 민 장군, 학생들이 왜 군인이 되었으냐고 묻자 이와 같이 솔직히 말했다.
***할 일이 없어 국방경비대 입대**
"만주서 건국대학(만주 최고의 대학이다)을 다니다 학도병을 갔다 해방으로 귀국하니 아무리 생각하여도 할 일이 마땅하지 않더군. 그래서 국방경비대에 들어가게 된 거야."
그때 밑에서 쪽지가 올라왔다. "장군님,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맞는 말이다. 국가 방위의 사명감을 갖고 애국적 정열에서…, 운운 했어야만 하지 않을까.
민 장군 다음과 같이 이었다.
"여러분들은 나와는 달라. 나는 부모님들이 애써 돈을 대주어 대학공부를 했지만, 여러분들은 전적으로 국가가 먹이고 입히면서 대학과정인 육사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겠어. 그러니 여러분은 국가의 고마움을 알고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쳐야지."
얼마전 국방장관을 지낸 최영희 예비역 육군대장과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민 장군에 대한 회고가 나오니 최장군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6.25때 민 장군과 나는 인접 사단의 사단장으로 있었지. 그래서 잘 아는데, 그때 민 장군 사단에서 특공대를 조직하여 민 장군이 그들을 환송하게 되었어. 적진에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지. 민 장군은 도열한 특공대원 앞에 서서 모두에게 골타리를 까라는 게 아니겠어.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 불알을 만져 보고는 됐다고 끝내는 거야. 일리 있는 일이지. 죽을지도 모르는 길에 겁이 났으면 바싹 오그라 들었을 테고 겁이 안 났으면 늘어졌을 것이니까 그것을 알아 본 거야."
그 민 장군의 술 마시는 법도 걸작이어서 신당동 집의 지하실 홀에서의 파티에서는 의례히 양은 양동이에 가득 진토닉을 만들고 국자로 떠서 컵에 권한다. 호걸스런 음주다.
박정희 대통령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지 않느냐고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을 때이다. 예의 지하실 파티에는 공화당 의원 몇, 고위관료 몇, 그리고 일본 특파원 4, 5명이 참석했었다. 민 장군의 건국대 동기생이 그때 동경신문의 주필이어서 그런 연줄로 일본 특파원들에게 가끔 술을 내게 된 것이다.
술이 어지간히 취하자 일본기자들은 민장군에게 집요하게 핵 문제를 취재하려 한다. 육군참모총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지냈고 박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이이니 그럴 일이다.
민 장군은 끝까지 질문을 피하기만 하였다. 그러다 마지막 판에 이렇게 일본 기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박 대통령 나빠. 왜 자기 혼자 평생 대통령 하려 해."**
"그래, 우리가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게 어디로 향하고 있겠느냐. 북경하고 동경이야. 우리가 미쳤다고 동족을 향해 핵을 겨누어."
마침 내가 고교 10년 후배여서 술자리에 자주 끼었다.
또 한번은 비슷한 자리로 유신 말기인데, 술에 취한 민 장군은 일본 기자들 앞에서 "박 대통령 나빠. 왜 자기 혼자 평생 대통령 하려 해. 개헌하라는 김영삼씨 이야기가 맞아." 하는 게 아닌가. 그때는 개헌 소리만 하여도 끌려 갈 때다. 더구나 그는 공화당 의원이 아닌가. 마침 나도 언론계이고 특파원들도 안면이 있었던 터라 나는 "여러분들 너구리 중에도 노회한 묵은 너구리인 민 장군이 여러분 마음 떠 보느라고 그러는 것이니 기사화는 하지 마시오."라고 하여 넘겼다.
그러나 며칠 후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여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고 철야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전직 육군참모총장 덕에 구속은 면하고, 취중의 일로 치고 앞으로는 다시는 술을 안 마시겠다는 서약서를 박 대통령 앞으로 쓰고 풀려났다 한다.
민 장군은 천재에 가까운 기재라 할 것이다. 청주고교 3천재론을 자가 발전한 것도 기발하다. 자기를 제1천재로 먼저 꼽는다. 그리고 제2천재로 천관우, 제3천재는 가끔 바뀌지만 대개는 남재희라고 말한다. 자기 피알의 그 이상 없는 선전술이다.
***"동창끼리 똘똘 뭉치면 우리나라는 망해요."**
내가 이른바 국방위 회식 사건이라고 유명해진 사건에서 육군의 하나회 장성들과 술잔을 던지며 다툰 일이 있다. 그때 책임을 지고 좌천당한 한 장군이 일선을 시찰간 민 장군에게 "국회의원과 육군 소장과 어느 쪽이 더 높습니까"하고 물었단다. "야 사람아, 사과와 배를 놓고 어느 쪽이 더 좋은 과일인가 묻는 것과 같지. 그게 무슨 질문인가" 민 장군의 답변은 재치가 번쩍인다.
특히 나나 사업하는 오능균 사장 등 동문 후배들과 어울리면 죽이 맞아 끝날 줄 모르고 마셔댄다. 가끔 위를 버려서 쉬기도 하지만 양주 마시는 것을 단념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에 그를 고등학교의 서울 동문회장에 추대하였다. 그랬더니 그 첫 인사가 모든 동문을 실망시켰다. 나는 감동하였지만 말이다.
"여러분, 동문회는 너무 잘 되어도 안됩니다. 내가 일찍이 일본으로 만주로 많이 돌아다녀 보았는데, 우리나라는 손바닥만한 나라에요. 거기서 무슨 학교다 하여 동창끼리 똘똘 뭉치면 우리나라는 망해요. 동창회란 명부나 발행해서 동창들이 어디 있겠거니 하고 알 정도면 충분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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