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황진이들'을 시작하며**
江西文學 제 6호에 '文酒 40年-試論'을 기고했더니 반응이 괜찮은 듯 속편을 써달란다. 그때는 남성사회를 중심으로 썼으니까 이번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뜻이 있을 것 같다.
인생이나 사회의 선명한 단면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여성과 술에 얽힌 이야기이니 대개는 서민생활과는 유리된, 얼마간 고급술집 풍경이 많이 나오게 되어 송구스러운 느낌이다. 그러나 대포집 이야기도 있으니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속편 이야기를 하면서 현대판 황진이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황진이가 옛날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사회에도 제 2의, 제 3의 황진이가 숱하게 있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술을 뒷받침하는 수준 높은 교양과 재치라 할까. 물론 미모와 품위도 갖추고서다.
내가 가장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주도 서귀포의 깊은 바다 물 속에 우뚝 솟은 외돌괴를 바라보면서 소주 한 병을 마시는 것인데···
***살롱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김봉숙 여사**
6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서울의 살롱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담이 누구냐고 한다면 정치계·언론계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김봉숙 여사를 들 것이다. 본명은 김성애. 본명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80년대초 국회에서 좀 난폭하기로 이름난 L 의원과 관철동의 '낭만'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2차로 한남동에 있는 '인형의 집'으로 옮겼다. 그때 새롭게 등장한 이른바 오픈 살롱이라고 방이 없이 약간의 차단물을 둔 홀뿐인 살롱이다.
그 집 주인이 나하고는 오랜 구면인 김봉숙 여사. 나는 김 마담이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김봉숙 여사, 김 여사로 호칭하여 존경한다는 뜻을 표하곤 했다. 그만한 여걸이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기며 인사도 하고 재치있는 이야기도 하는 김 여사가 우리 자리로 오자 나는 "김 여사, 이 분이 국회에서 그 유명한 L 의원인데 인사하세요"하였다. 그랬더니 김여사 L 의원을 한참 멀거니 바라보더니 나에게 이러는게 아닌가.
"남 의원님, 어디 술 마실 분이 없어서 이런 분하고 어울려 다니세요!"
김 여사가 겉으로 표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약간의 취기가 있었으리라는 짐작이다. L 의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지면서 폭발 일보 직전으로 흥분하는 게 아닌가. 나는 김 여사를 쫓아보내고 L 의원을 술공격으로 달래었다.
그러다 저만치 보니 문교부 산하 한 기구의 책임자로 있는 P 교수가 여자를 앉히고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잘 아는 처지이기에 사람을 보내어 우리와 합석하자고 하였다. 그랬더니 뻣뻣한 P 교수 오히려 우리 둘 보고 자기 자리로 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말렸지만 L 의원은 무슨 의도인지 P 교수 자리로 갔다. 그리고 한참 후에 돌아와서는 "됐어! 여자가 이 집 호스테스가 아니고 다른 술집의 주인 마담이라는군."한다.
몇일 후 국정감사에서 L 의원은 "주지육림에서 사는 P 교수"라며 공격하여 위기일발이었는데 내가 정회를 요청하고 둘 사이를 조정하여 무사히 끝났다.
나는 현장에 없었지만 이런 두 가지 이야기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정계의 최고급인사가 80년대초 계엄령이 삼엄하던 때 나타났다. 정치활동이 금지되었을 때다. 김봉숙 여사 그 명사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00님,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데를 오십니까. 만약 여자하고 어울리고 싶다면 저에게 전화를 하실 것이지···"
또 누구나 아는 한때의 실력자가 나타나서 위세를 부렸다. 그러자 김여사가 면박. "00선생님,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세요?"
이야기는 더 신랄하였는데 약간 누그려뜨렸다. 참 담대한, 아마도 발칙하다고 상대가 생각할 화법이다. 그 구전되는 이야기를 나는 L 의원에 대한 태도를 직접 목격하였기에 모두 사실일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김 여사가 보통 여성이 아니구나, 현대판 황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구나 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김봉숙씨를 처음 만난 것은 68년. 을지로 입구 옛 미 대사관 뒤에 있던 오픈 살롱 '발렌타인'에서이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던 나는 우연히 갔다가 김 여사의 미모와 세련됨에 놀랐다. 손님도 박정희 대통령 말고는 모두 들렸다는 이야기가 날 정도여서 정일권, 장기영, 김종필, 김택수씨 등등··· 대한민국 명사록에 나오는 면면들이다.
공화당의 중진 K 의원은 김여사가 더 젊었을 때 처음 보고는 한국에 이런 미인이 있느냐 하고 놀랬다고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복을 입은 모습이 아마 경회루와 그 연못에 어울렸을 것이다.
'죽으면 살리라'의 저자인 독립운동가 안이숙여사의 남동생인 안신규(安新奎)씨는 민족일보 감사를 지냈다고 옥살이를 했는데, 김 여사는 그 안신규씨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가끔 초청하여 대접했다. 혁신계 인사인 박진목, 송지영, 윤길중씨 등도 단골이었는데 특히 청곡 윤길중씨는 드러내놓고 김 여사에게 구애하였다. 국회부의장 때는 김 여사가 강남에 '황실'을 개점하자 엄청나게 큰 화분에 큰 글자로 '국회부의장 윤길중'이란 띠를 매어서 보냈다. 모두에게 당당히 알리려는 것이다.
김 여사가 더욱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는 H씨가 주간지에 '나의 가출선언'이라고 기고를 하며 사랑고백을 하여서이다. 둘은 간통죄로 쇠고랑을 찼고 그후 결혼을 했으며 1년쯤 후 이혼을 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것도 하나의 단편소설 같은 사랑이야기다.
술집은, 특히 살롱은, 그 가운데서도 오픈 살롱은 주인 마담의 미모, 품위, 재치등이 중요하다. 마담의 분위기가 그 집 분위기가 되는 것이며, 그 분위기에 끌려 손님들이 모이는 것이다.
미모를 놓고도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미인이다. 이쁘다. 애교가 있다. 청초하다 등으로 표현하지만, 예를 들어 영어에는 그 표현 방법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김봉숙 여사는 Pretty보다는 Beautiful에 가까운데 보조개가 하나 있어 Charming하기도 하다 할까. 고향은 진남포 근처라니 여기에도 남남북녀가 해당되는 것일까.
90년대초 그 김 여사가 행방을 감추었다. '황제'이후 안 보이는 것이다. 단골 주당들이 궁금해하고 가끔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살롱의 여왕 소리는 들었지만 돈은 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이 크고 마음씨 좋아 일본어 표현으로 '기마에'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돈을 벌었지만 좋아하는 남성의 사업에 꼬라박곤 하였다는 것이다.
행방불명 된 지 5년여 지났을까, 드디어 소식이 전해졌다. 소스는 강신옥(姜信玉) 변호사. 전부터 법률문제가 있으면 강 변호사에 상의하고 의뢰하고 하였다는데 그 때 아마 작은 법률문제가 있었나 보다. 살롱의 여왕은 그동안 신학공부를 하고 지금은 어엿한 전도사로서 중국 길림성에서 조선족사회를 상대로 선교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한다. 중국당국이 금지하고 있으나 종교적 열성으로 금압을 무릅쓰고서의 선교다.
가끔 일시 귀국해서는 강 변호사와 친했던 교수를 연락하여 식사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기독교윤리에 철저하다.
김 여사에게 돈은 없어도 다른 위안은 있다. 아들이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 한참 뜨고 있는 록가수이다. TV에서는 아직 못 보았으나 대학가 주변에서 K가수의 포스터를 가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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