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2월 22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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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석과 판석, 첨성대의 천문상수들
[김유경의 '문화산책']<27> 첨성대 ③ 송민구와 박창범의 연구
송민구의 연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첨성대의 초석과 지대석, 28,29단 정자석은 정4각형이며 몸통인 회전곡면은 원으로 되어 있다. 이로써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의 의미를 지니지만 그 기능도 둥근 몸통은 천체에 나타난 것을, 네모난 초석 지대석
김유경 언론인
첨성대와 천문의 수학 : 송민구 등의 연구
[김유경의 '문화산책']<26> 첨성대 ②
왕들이 죽으면 그 시각에 맞춰 해 뜨는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매장했다. 해는 왕을 상징하는 것이며 별은 해진 뒤에 나와 퍼져서 해처럼 비춘다. 왕이 죽은 시각에 내세로 떠나는 영혼이 실리는 북두칠성의 9성이 낮이든 밤이든 그 시각에 어디 있는지 알려면 정확한 관측을
첨성대에서 보는 별자리와 경주 고분 및 유적들
[김유경의 '문화산책']<25> 첨성대 ①
경주 여기저기 있는 수백 개 고분, 첨성대와 불국사, 안압지 등 주요유적들은 왕도 경주의 혼이나 다름없다. 대릉원 등 잘 알려진 30여 고분은 황금관과 철검 같은 보물을 품고 신분을 감싼 채 경주시내 반월성 옆에, 어떤 것들은 경주 외곽, 산꼭대기, 바닷속까지 퍼져 있다
낙안성의 아침, 금둔사의 차
[김유경의 '문화산책']<24>낙안읍성과 금둔사 ②
"술도 안 마시는데, 커피는 설탕을 많이 넣고 달콤하게 마셔야지." 낙안성의 진짜 면모는 이런 데서 나오는 듯했다. 할머니 성함은 김귀심. 과시하는 것도 없고 명랑했다.
순천장을 보고 낙안읍성으로
[김유경의 '문화산책']<23> 낙안읍성과 금둔사 ①
4만1000평의 낙안읍성 안 북쪽의 거의 절반은 동헌과 객사, 내아, 임경업장군사당, 낙민관, 자료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채워진 행정구역이다. 모두 근년에 새로 복원한 기와집 건물이라 오래된 느낌은 덜 했다. 단지 그 주변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은행
'서촌' 없이 서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유경의 '문화산책']<22> 서촌5 - 서촌을 찾는 재미, 보물과 샘물과 호랑이
서촌은 규모가 작고 조용해 이야깃거리가 적을 줄 알았다. 한데 볼수록 새로운 국면이 드러나곤 한다. 서촌을 찾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고 글은 자꾸 길어진다. 믿든지 말든지 다음의 이야기는 실화다! 박광배 시인이 실제 주인공한테서 듣고 전해준 서촌이야기 하나.
[김유경의 '문화산책'] <21>서촌 4 - 옥인동 송석원의 윤덕영 한옥
옥인동 47번지 송석원 구역에는 프랑스식 건축 벽수산장 말고 여러 채의 한옥이 있었다. 1921년 이래 지형도에 그 위치가 나오는 99칸 한옥들 및 현재 윤덕영 한옥(윤씨 한옥)으로 알려진 집 한 채는 송석원에 포함된 건물군이다. 그중 '윤덕영 한옥'은 아주 장
[김유경의 '문화산책']<20> 서촌 3 - 권력과 예술 사이, 송석원 미스터리
인왕산자락 청운동-옥인동-필운동 일대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봄철 꽃구경의 명소였다. 지금은 집들에 가려 안보이지만, 웅장한 바위와 계곡에 흐르는 물, 살구꽃 복사꽃 버들이 어우러진 풍취는 글과 그림 글씨 등 문화적 역량이 응집된 예술을 이끌어냈다.
[김유경의 '문화산책']<19> 서촌 2 - 사직단에서 정조임금이 물은 것, 그리고 예술가들
사직동에는 사직단이 있다. 조선왕조를 세우며 궁의 서쪽에 토지신과 곡식신을 받드는 사직단을 두었다. 1908년 이래 제사를 폐했다가 1988년부터 되살아나 9월 셋째 일요일마다 사직대제가 거행된다.
'서촌' 없이 서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유경의 '문화산책']<18> 서촌 1 - 영추문 앞 효자동 안쪽에서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기슭에 이르는 지역을 '서촌'이라고 부른다. 효자동 사직동 옥인동 등 15개 동네가 여의도의 절반을 좀 넘는 좁은 터에 모여 있다. 북촌 영역에 비하면 그 3분지 1쯤 된다. 대궐 서쪽의 입지인 만큼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사직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