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2월 22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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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과 혁명검찰 시절
<인물 탐구> 군인 박창암 <중>
朴蒼巖은 1961년 5.16 혁명주체의 한사람이었다. 인사동 다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박창암등 대령 몇이 모여 조용히 먹으니 주인이 ‘매우 점잖다’고 좋아하며 중국요리도 시켜다 주었다. 1961년 5.16군사혁명을 의논하던 중이었다. ‘ 5.16정도라면 철학이 있어야 했다.’ 장
김유경 언론인
독립ㆍ통일 지향하다 철저한 반공군인으로
<인물 탐구> 군인 박창암 <상>
6.25 한국전 당시 특수부대 지휘관이었고 5.16군사혁명 주체의 일원으로 혁명검찰부장을 지낸 박창암(朴蒼巖,1921-2003) 예비역 준장이 2003년 11월 10일 작고했다. 향년 82세로, 최근의 뇌졸중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박장군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
곁에서 본 최태영 선생
민족과 함께 책과 더불어 103년, 최태영 <4ㆍ끝>
내가 선생을 알게 된 것은 1999년 초 박창암 장군을 따라 세뱃길에 동행하면서부터였다. 최태영 박사는 박 장군이 장도빈 선생과 더불어 존경해 마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때 老 지식인의 맑은 기상과 서가의 오래된 책들, 그리고 두분이 주고 받는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아 나
단군ㆍ환인ㆍ환국 - 민족사를 찾아서
민족과 함께 책과 더불어 103년, 최태영 <3>
일인들이 쫓겨가 이젠 일을 한국인 뜻대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둔한 미군정은 한국인을 전혀 신임하지도 알지도 못했다. 패전 일인들한테서 학교를 접수하는 자리에 한국인 아닌 미국이 내세운 일인들이 와서 접수하는 것을 보고 그는 절망했다. ‘나는 미군
신사참배ㆍ일본어상용도 거부
민족과 함께 책과 더불어 103년, 최태영 <2>
13세때 서울에 와 영어시험을 치르고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언더우드가 세운 이 학교는 시설이 서울의 여느 학교보다 좋아서 학생 1인당 현미경이 한 대씩 있었고 계단식 교실에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장지영 선생에게서 국사를 배웠다. 장 선생은 ‘기자조선은 사대주의의
삼일만세운동의 유일한 생존자
민족과 함께 책과 더불어 103년, 최태영 <1>
사람이 1백세를 넘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1백세를 넘긴 나이에 연구와 저술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에 그런 인물이 있다. 최태영(崔泰永) 선생이 그 분이다. 최태영 선생은 1900년 3월 28일(음력)생으로 올해 1백3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