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0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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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치매 나타난 달이…"
[김유경의 문화산책] <47> 삼화령에서 내려오다
3월 중순, 경주 남산 삼화령을 오르게 되었다. 이곳의 연화좌대를 보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산에서 제일 높은 494미터 높이 고위봉과 금오봉을 잇는 삼각지점의 고개란 위치가 연화좌대를 보러 갈 특별한 명분이었다. 월성 안팎을 연결하는 월정교를 끼고 가서 천관사 터를 지나고 서출지까지 온 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남산의 한 중간쯤 되는 곳, 삼화령까지 가장
김유경 언론인
포석정의 느티나무
[김유경의 문화산책] <46> 포석정의 느티나무
포석정은 남산의 서쪽 끝자락에 있다. 포석사라는 사당(祠堂; 제사지내는 곳, 절이 아님)이 있었다고 하는데 돌 수로와 함께 지금은 고사한 당산나무 고목과 얼마전 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올리던 돌 제단도 있지만 경주시대와 연관지을 유적은 아니라 한다. 포석정 수로는 여기 숲 가운데 지표면에 단단한 화강암 돌 63개를 조각해 이었다. 동서 긴축은 10
경주의 상징 '알천'에는 돌 233개가 놓인 징검다리가 있다
[김유경의 문화산책] <45> 경주 알천과 안압지(월지)
현대에 와서 월지에 신라 때와 달라진 것이 생겼다. 신라시대 월지 입수의 근원은 경주 북쪽 알천(북천)의 물이 분황사를 거쳐 월성 주변의 해자를 채우고 월지로도 흘러들었다. 그 후 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며 농경지 등으로 북천의 물줄기가 점점 막혀가고 1975년 북천(알천)이 발원하는 곳에 덕동호가 건설된 뒤에는 자연의 물길이 더 메말라 버렸다. 보조 수
통일신라 최전성기 기운이 담긴 경주 안압지(월지)
[김유경의 문화산책] <44> 안압지의 7세기 입수시설
경주 월성 대궐에 딸린 연못 월지(月池)(안압지(雁鴨池))는 문무왕 때인 674년 생겨났다.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기운을 담아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심오한 조경의 정원까지 갖춘 화려한 못이다. 현대에 복원된 4730평 넓이의 연못은 어느 방향에서도 한눈에 전체가 다 조망되지 않아 여기에 지어진 전각의 명칭은 임해전(臨海殿)이다. 효소왕(697), 혜공왕(
15대 심수관 "한국과 일본의 가교로 등대 같은 역할을"
[김유경의 문화산책] <43> 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⑤
15대 심수관 '한국과 일본의 가교로서 부동의 등대 같은 역할하겠다' 조선 도공의 후손으로 일본 가고시마 미야마에서 사쓰마 도자기를 제작해온 심수관가의 15대 심수관(大迫一輝; 오사코 가즈테루)씨가 18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부친 14대 심수관 추모회에 왔다. 한일협력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 과거 14대 심수관(1926-2019)과 교분을 나
단성사와 아리랑; 영화와 노래의 탄생
[김유경 문화산책] <42> 영화 100년 ②
충무로에서 종로 방향에 걸쳐있는 오래된 몇 개의 극장을 본다. 그 중 종로3가, 묘동에 위치한 단성사는 1907년 창설된 한국 최고의 극장이다. 헤이그 회담에 특사가 파견되고 고종이 일본의 협박으로 순종에게 양위하던 해이다. 1971-2005년간 단성사 상무를 지내면서 단성사 100년 기록을 정리한 조상림씨(84)의 회고는 한국 영화 파노라마를 눈앞에서 보
'스틸맨'의 귀한 영화사진들로 보는 충무로의 역사
[김유경 문화산책] <41> 충무로와 스틸맨의 영화사진들①
현대매체로서 영화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올해로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았다. 1919년 10월27일 단성사에서 연극공연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영상 장면이 포함된 ‘의리적 구토(仇討;원수와 싸운다는 뜻)’상영이 첫 번째 한국 영화로 공식 인용된다. 배우 김도산이 감독, 주연한 일본극의 번안으로 계모와 재산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 줄거
마지막 본 남원성 삼층탑과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
[김유경의 문화산책] <40> 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④마지막
도공들이 남원성을 떠난 이래 400년이 흘렀다. 1998년 서울에서는 ‘400년 만의 귀향-심수관가 도예전’이 열리고 도공 후손들의 땅 미야마에서는 계속 이어지는 도자기 가마에 남원을 근원으로 한 불을 당기는 작업과 그들 선조가 마지막 본 남원성의 삼층탑을 제막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김유경의 '문화산책' 보기 "당길 조상님의 사발부터 사쓰마 도자기까지 40
'백세청풍' 탁본 - 13대 심수관이 만든 조선의 기억
[김유경의 '문화산책'] <39>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③
심당길 사발(히바카리)이래 심수관 집안에 나이테처럼 쌓여간 ‘조선의 기억’ 중에는 ‘백세청풍’ 글자로 된 병풍도 있다. 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①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② 13대 심수관, 심정언(沈正彦)에 대한 일화가 많았다. 교토대학을 나온 그는 젊어서 조선 황해도를 여행했다. 해주에서 ‘백세청풍(百世淸風)’을 큰 글자로 새긴 돌비석을
심수관가의 도자기와 옥산신사
[김유경의 문화산책] <38> 조선도공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②
14대 수관, 심혜길은 와세다 대학을 나와 정치인의 의전비서로 일했다. 이 기간 중에 '교육 없이 문화는 없다' 하여 가고시마 산골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막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대대로 교육을 중시해 한어훈몽(韓語訓蒙) 이라는 한글 책을 통해 '책을 잘 닐럿냐(읽었느냐)' 는 말로 책을 가까이 할 것을 가르쳐 왔다. ☞ 14대 심수관과의 만남 1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