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한국노총의 총선 대응과 관련해 대다수 전문가는 "실체 없는 실익이라는 명분 때문에 한국노총이 스스로 목을 죄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노총의 '자기 배반'이 결국 스스로의 발등을 찍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책 연대 일관성" 명분으로 정리된 '총선 방침'
한국노총은 12일 오전 2008년 첫 중앙정치위원회를 열고 총선 방침을 결정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중앙정치위원회에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인을 지지한 연장선에서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전폭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 조직 출신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 조직 출신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밀어주기로 했다. 설사 한국노총 출신이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더라도, 같은 조직 출신을 무시하고 한나라당 후보를 배타적으로 지지하겠다는 것.
당초 이날 중앙위원회에서는 3가지 총선 대응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방안, △정당과 무관하게 지역별, 산업별로 한국노총 출신 후보를 지지하는 방안 △1안·2안을 적절히 섞어 한나라당 지지를 기본 방침으로 하되 한국노총 후보에 대해서는 비한나라당 후보라 하더라도 지지하는 방안 중 첫 번째 안을 선택했다.
박영삼 한국노총 대변인은 "장시간 토론이 이뤄졌지만 표결 없이 1안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아닌 당 후보를 지지해 한나라당이 정책연대를 이행하지 않을 명분을 줘서는 안 된다 것이 첫 번째 안이 선택된 가장 큰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중앙정치위원이 "한나라당 올인은 위험하다", "공기업 민영화 얘기가 흘러나오는 만큼 한나라당 지지를 천천히 결정하자"는 의견을 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총선 한나라당 지지' 결정을 거부한 이들은 없었다. 드러내 놓고 2안을 지지한 중앙정치위원이 없었던 것은 이를 보여준다.
한나라당 후보에게만 후원금, 인력 지원키로…다른 당 출마자는 '모르쇠'
한국노총-한나라당 총선 공조는 곧바로 확인됐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당선자는 이날 오전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강재섭 대표를 만나 "이번 총선에는 한국노총과 친노동자(후보)를 강력히 배려해주기 바라며 한국노총 추천 지역구의 사람들을 배려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경제살리기에 주축으로 동참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 프렌들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노총 프렌들리를 얘기하고 싶다"면서 "정부와 한나라당, 한국노총이 잘 맞아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화답했다. 강 대표는 "이런 정신을 살리기 위해 총선 공천심사위를 구성할 때 한국노총의 추천을 받아 노총이 원하는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구성했고, 국민 눈높이에 맞게 심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고 배려를 약속했다.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4월 총선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한국노총 출신은 모두 20명이다. 이 가운데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한 한국노총 출신 인사는 김성태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이용범 한국노총 전 사무처장, 이화수 한국노총 전 경기본부 의장 등 11명이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조성준 전 노사정위원장 등 6명, 민주당으로 출마를 희망한 사람은 정환석 전 에스콰이어캐주얼 노동조합 위원장 1명이다. 천영세 의원과 박창완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지도위원은 민주노동당 공천을 준비해 왔다.
한국노총 출신 후보끼리 경합을 벌이는 지역도 있다. 경기 군포와 경기 성남 중원에서는 한국노총 출신들이 서로 다른 당 후보로 추천을 희망하고 있고, 서울 구로 을은 한국노총 출신 2명의 인사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당초 한국노총은 이날 중앙정치위원회에서 총 3곳의 지역구 경합자 처리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총선방침 자체가 한나라당 후보만을 지지하기로 결론이 남에 따라 경기 군포와 경기 성남 중원의 문제는 논의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만 두 후보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하는 서울 구로 을의 경우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복수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길어야 1년 가면 다행인데 노동자의 자기배반 2탄을 내다니…"
이런 한국노총의 총선 대응 방침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이명박 당선인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천명하며 '친기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는 '경제 성장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며 노동계에 '협조'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 당선인은 지난 1월 민주노총과의 간담회를 하루 전에 파기하는 소동을 벌임으로써 노동계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를 드러내기도 했다.
많은 노동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한국노총이 한나라당에 '올인'을 결정한 것은 점점 더 노동자로부터 스스로 멀어져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실리 앞에 아무런 원칙도 기준도 없는 결정"이라고 혹평했다.
김 소장은 "이명박 정부가 이미 노동 배제 전략을 선택한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내세운 명분, 즉 정책 협약의 이행이라는 '실리'가 과연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한국노총과 이명박 정부의 관계는 길어야 1년 가면 다행"이라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한국노총의 잇따른 '한나라당 지지 선언'이 이후 노동계에 미칠 영향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과연 이 당선인이 한국노총의 정책 요구안을 정말 들어주겠냐"며 "결국 아무 실익도 얻지 못하고 앞으로 노정 관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용득은 "2012년에 평가해달라"지만…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수적인 노동조합이 보수적인 정권과 손을 잡는 것은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한국노총은 자신의 정책적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놓지 않고 한나라당과 연합만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고용창출을 내는" 이 당선인의 '비즈니즈 프랜들리' 정책이 한국노총의 정책이라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의미한 정책연대라는 평가인 셈이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나라당 지지 선언과 관련해 "2012년에 최종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평가의 시간은 의외로 빨리 올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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