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입법 과정에서 민주노총 위원장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길바닥 위에서 농성을 하는가 하면,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놓고는 민주노총만 빼놓고 노사정 타협을 추진해 통과시켰다.
미국을 찾아 해외투자자를 상대로 열린 '국가투자설명회'에 참석해 직접 '외자유치'에 나서기도 했고,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는 조합원 총투표라는 사상 초유의 실험으로 '노동조합의 이명박 지지'라는 빅 뉴스를 만들어냈다.
그랬던 이용득 위원장이 차기 위원장 선거에 출마 의지를 밝혀 놓고 지난해 12월 27일 돌연 입장을 바꿨다. 후보등록 마감을 나흘 앞두고 나온 불출마 선언이었다. 한국노총의 핵심 관계자들도 '뜨악'해 했다. "속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궐 선거로 한국노총 건물에 들어와 재선에 성공하고 3년 8개월 동안 위원장 자리에 있었던 이용득 위원장을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 2017년에 평가해라"
여러 '파격 행보'를 걸어 왔지만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온 일은 아무래도 '이명박 지지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최종 평가는 2017년에 가서 해달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의 정책연대는 2017년 영구 정책연대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노총 조합원의 보수적 성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가 조합원과 교감하고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나는 정책연대 과정에서 정확히 중립에 있었다"고 말했다. "조직 내부의 일부 사람이 한나라당에 가서 '박인상, 조성준, 이용득이 한 라인으로 정동영 쪽이고 이용득이 산별위원장들과 지역본부장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려 한나라당 내부 보고서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오히려 "어느 당과도 일체의 개별 접촉을 금지한 조직적 결정을 무시하고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 자신의 영달을 꾀한 사람들 때문에 '거지가 쪽박을 스스로 깨는' 셈이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이명박, 노사관계 대화로 풀자면서 전경련만 찾다니…"
'한국노총이 스스로 (정책연대를 통해 동냥질을 할) 쪽박을 깼다'는 얘기였지만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당선인 측도 한국노총의 동냥질에 응해 줄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물었더니 대뜸 이 위원장은 "이명박 당선인은 '친기업'이 아니라 '친재벌'"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이나 대한상공회의소가 아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먼저 찾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한국노총 '이명박, 서운해…')
이 위원장은 "정권 차원에서 전경련에만 힘을 잔뜩 실어주면 노사관계 파트너인 경총, 상공회의소는 전경련 눈치 보느라 노동계와 진실된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없다"며 "그러면서 대화로 풀어야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지 선언을 한 한국노총에는 인사치레조차 늦어지고 있고 약속했던 정례 정책협의회는 그 틀도 구성하지 못했지만 "아직 성급히 판단하긴 이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당선인이 과거 군사독재정권과는 다른 변화한 시대상황을 최소한은 볼 줄 아는 사람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 했다…지금이 그 때"
자신의 불출마 선언과 관련해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 했다"고 말했다. 지금이 떠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말이었다. "주변에서 지금이 내가 가장 상품가치가 높을 때라고 한다"니 당연히 지난 임기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관련 기사 : 이용득, 차기 한국노총 위원장 불출마 선언)
위원장 임기 도중 한국노총의 운동 방향으로 새로이 설정한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에 대해서도 "방향성으로 보면 90점 이상, 추진된 성과로 보면 50점"이라고 말했다. 성과가 50점이라는 것은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의 실천의 핵심인 노사발전재단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위원장은 특히 노사발전재단에 대해서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수차례 강조했다. 위원장 재임 기간 한국노총이 경영계와 정부를 설득해 만들어 낸 노사의 민간재단인 만큼 애착이 강한 듯 보였다.
"노사발전재단을 한국노총의 것으로 보는 것은 틀렸다"고 했고, "예산 문제도 청와대가 정리를 못하고 방치해두니 그 전 정권과 차별성을 못 만들어낸 것"이라고도 했으며, "이명박 시대에 우리 경제가 다음 도약을 하기 위한 노사의 경험 축적에도 노사발전재단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출마? 안 한다던 말 뒤집고 싶지 않다"
불출마 선언 이후 안팎에서는 입각설, 총선 출마설 등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여러 당에서 말들이 있지만 정책연대 과정에서 '정치권에는 안 간다'고 했던 말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설사 내가 정치를 하더라도 지역구로 가면 갔지 비례대표로는 안 간다"고 덧붙였다.
한때 조직통합 논의까지 나왔던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이 나왔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이수호 전 위원장 때를 잠깐 빼놓고는 열린 노선이 아니었다. 항상 소수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약점만 잡아 투쟁을 하는 소아적 운동 성향이 스스로를 배제시킨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 방향성은 90점 이상, 성과는 50점 미만"
프레시안 : 보궐 선거로 들어와 3년 8개월 동안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지냈다. 최근 불출마 선언으로 위원장으로서의 지위는 일단 마무리를 하게 됐는데, 지난 기간을 평가해본다면?
이용득 : 큰 줄기에서 본다면 내가 위원장으로 들어 와 노동운동의 방향을 변화시켰다고 본다. 또 그 변화된 방향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냈고, 외국 투자 자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적대적이었던 노사관계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사실 내가 위원장으로 처음 취임할 때 한국노총은 고립된 상태였다. 지금 민주노총이 자기들만의 운동을 벌이듯이 한국노총도 지난 60여 년간 그런 길로 걸어 왔다. 하지만 3년 8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노총은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로부터 고립된 그 위기에서 탈출했다.
대외적인 지위와 위치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완전히 따로 놀던 현장과 중앙이 한 몸이 됐다. 예를 들면, 각 지역본부는 한국노총의 산하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의 인준과 관계없이 자기들 나름대로 별도의 규약과 규정을 가지고 별개로 운영돼 왔다. 그런 것을 통일된 규칙으로 정리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인준을 취소시키거나 지부를 폐쇄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모범 조직들에는 그들만의 특화된 사업을 주기도 했다. 부천지부 같은 경우 지역의 고용이나 복지 영역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기도 했다.
이런 개혁의 방향이 바로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였다. 임기 기간 사회개혁적노동조합주의라는 큰 그릇에 담아 한국노총의 운동 방향과 정체성 정립을 시도했다.
프레시안 : 비록 몇 년 되지는 않았지만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에 대해 점수를 매겨 본다면?
이용득 : 방향면에서는 90점 이상이고 추진된 성과로 보면 50점 미만이다. 그동안 정부 중심으로 이뤄졌던 노사관계 정책을 민간 중심으로 이동시키자는 방향성은 시대정신과 맞다. 90점 이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 실천의 핵심은 노사발전재단이다. 민간이라면 결국 노(勞)와 사(社)인데 그 둘이 힘을 합쳐 인적자원 개발도 하고 직업훈련도 하고 노사공동 프로그램을 함께 실천하자는 것이다. 노사발전재단을 한국노총 것으로 보는 인식은 틀렸다. 한국노총만 그 중요성을 강조하니 그렇게 보일 뿐이지 경총의 것이고 상공회의소의 것이다. 민주노총이 들어오면 민주노총의 것도 된다.
문제는 그 노사발전재단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규모면에서 보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수준에도 못 미친다. 노사정위는 대화와 협의 기구이니 적은 인원으로도 가능하지만 노사발전재단은 사업실천기구다. 수백 수천의 규모로 해야 할 일을 불과 20여 명이 하고 있으니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의 성과 점수는 50점이라는 얘기다.
"민주노총, 소아적 운동 성향 버려야"
프레시안 : 지난 임기를 평가하면서 노동계의 또 다른 한 축인 민주노총과의 관계 문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때 조직 통합 얘기까지 나왔던 양대 노총이 지금은 완전히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용득 : 리더십 문제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운동조직은 특히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수호 전 위원장 시절에 조직 통합 얘기가 나왔던 거다. 물론 조직 통합은 무조건 돼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노동배재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통합은 필요하다. 기업이나 정치권에 노동계의 힘을 싣기 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노동계가 두 개의 조직으로 나뉘어서 분할 지배가 가능하도록 만든 현실에 대해서는 노동계 지도자라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어쨌든 변했다. 민주노총은 반면 이수호 전 위원장의 리더십 때 잠깐을 빼놓고는 열린 운동 노선이 아니었다. 20년 전 운동 기조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양대 노총 관계를 개선하려면 민주노총이 먼저 변해야 한다.
항상 소수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흠과 잘못만을 꼬집고 그것을 약점 잡아 투쟁만 벌이는 소아적 운동 성향이 결국 스스로를 배제시키고 우리를 소아적 조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투쟁 일변도로 주체성을 강화시킨다는 것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얘기다. 몇 꼭지만 다른 방향으로 틀면 다른 선진 사회처럼 우리 노동계가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대우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각종 현안에 대해 양대 노총이 생각이 다를 뿐 아니라 민주노총 내에서도 수십 가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노동계를 대우해달라? 비상식적인 말이다. 민주노총만 고립된 상태로 지금처럼 가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엄청난 불이익이지만 전체 노동계에도 이득이 없다. 이제는 힘을 합쳐야 한다.
"노 정권? 패션처럼 유행하던 운동권에 잠시 몸담았다고 노동을 아는 척"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와 임기 전체를 보냈다. 지난 시간을 평가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용득 : 노무현 정부에 노동계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애정의 표현이 제대로 된 방향과 올바른 행태로 나타난 적이 없었다. 각자 다 자신들이 노동에 대해서 전문가인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는 이미 바뀌었고 노동운동도 그에 따라 달라져 왔는데 말이다.
내가 28년 간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해서 그 변화를 잘 안다. 전투적 운동이 정당성을 부여받던 시절도 있었고 또 한 때는 국제 금융 통화기금(IMF)의 꼭두각기 역할을 하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맞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노동운동은 변해 왔다. 그런데 과거 패션처럼 유행하던 운동권에 잠시 몸 담았었다고 해서 자신들이 노동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노무현 정권의 문제였다.
이런 내 입장을 두고 <동아일보>에서는 "최악의 정부"라고 자꾸 유도하려고 하던데 그런 언론의 행태도 참 마음에 안 든다. 왜 최악의 정부인가. 과거 노동탄압을 일삼았던 군사독재정권도 있는데.
문제는 노무현 정권은 오히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노동운동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노사발전재단도 기예처 등 경제부처에게 완전히 방치해 두지 않았나. 2008년부터 2010년까지 500억 씩 지원하기로 해 놓고 노동부에서 기예처로 갈 때 200억으로 줄었고 그나마 기예처에서는 0원이 됐다. 청와대가 나서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도 제대로 못 했다. 정부 관료야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인 것인데 청와대가 방치해두니 그 전 정권과 큰 차별성을 못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문제들이 지난 대선에서 정책연대를 추진하게 된 근본 원인이 됐다. 노 정권 기간 '대통령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무슨 문제든 잘 안 되겠구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선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노사발전재단도 제대로 활성화시키고 노사관계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약속을 받아 노사가 직접 굵직굵직한 큰 일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는 엇비슷하게 대선이 흘러가지 않고 너무 기울어서 진행되는 바람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하고 우리가 의도했던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말았다.
프레시안 : 자연스럽게 정채연대 얘기로 넘어가보자. 새로운 실험을 두고 말들이 참 많았다. 이명박 지지를 위한 수순 아니냐는 말이 제일 많았다. 결과적으로 '총투표'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정치지형상 이명박 지지의 결론을 내기 위한 도구라는 해석이었다.
이용득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조합원들이 그런 보수적인 성향이 있다면 그 조합원들과 직접 교감하고 참여를 유도해서 변화시켜야 한다. 그냥 방치해 두면 달라질까?
2007 정책연대만 놓고 본다면 그런 비난이 맞다. 하지만 정책연대는 이번 대선에서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올해는 2017년 영구 정책연대를 위한 첫 걸음이었을 뿐이다. 물론 우리 간부들도 2007 대선정책연대에만 눈높이가 머물러 있었던 것이 큰 문제였다.
이번 단계에서는 조합원의 보수적 성향을 인정하고 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조합원들이 직접 느낄 것이다. 영화평을 하려고 해도 그 영화를 직접 봤어야 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평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 아니냐. 정책연대도 직접 참여를 해 본 사람이 다음 대선에서 이런 저런 방향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7년 정책연대만 놓고 평가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책연대 과정에서 나는 정확히 중립에 있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이번 정책연대는 '한국노총의 입장'보다는 대선 판도라는 외부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2012년이든, 2017년이든 똑같이 외부의 요건에 휘둘리게 되는 것 아닌가? 더욱이 노동조합 조직이 가장 '반노동조합적'으로 분류된 후보를 지지하는 모순을 낳았다.
이용득 : 이명박 당선인 측이 한국노총의 정책연대에 응하기로 하면서 보내 온 답변서가 있다. 그 답변서의 이행 과정을 투명하게 조합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행된 부분, 기만당한 부분을 모두 알려 현장 조합원 사이에 지속적인 담론이 형성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2007 정책연대에 대한 평가는 2010년이나 2011년 쯤 이뤄지는 것이 맞지 않나. 그 사이 5년 동안 보수 정권을 선택해서 우리가 더 기만당하고 실패한 것이 많았고 신뢰도를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면 자연스럽게 진보 진영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어쨌든 조합원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중앙의 지침은 아무 효과가 없다. 내 노동운동 경험이 그랬다. 상업은행 노조에서도, 금융노조에서도 그랬다. 금융노조 때 내가 전체 조합원을 참여시키는 총파업을 두 번이나 했다. 그런 참여 속에 진짜 평가가 나온다.
어떤 날은 하루 2000km까지 뛰면서 다닌 것도 그래서다. 전체 88만 명 조합원 가운데 51만 명이 정책연대 총투표를 위한 조합원 명부를 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숫자다. 그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그 사람들의 직접 평가가 중요하다.
50% 이상의 참여에 50% 이상의 응답에 주력했다. 노동운동에서도 이 원칙이 지켜져야 조합원의 뜻인지 아닌지를 해석하는 논란도 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가 거부해 불발된 후보자 초청 TV토론도 그래서 준비했던 것이다. 정책연대를 성공시키려는 제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재밌는 것은 내가 그 불쾌감을 표시했을 뿐인데 그걸 두고 온갖 말들이 나오더라. 내가 정동영 후보 편이라는 둥, 문국현을 밀려고 한다는 둥 각종 말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정말 어느 쪽 편이었다면 지금 그 후유증이 엄청나지 않았겠나. 내가 정확히 중립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잠잠한 것이다.
지난 대선 정책연대에서 여러 진통도 있고 여러 가지 말들이 무성할 수 있지만 2012년 정책연대 성공을 위한 기틀을 닦았다고 본다. 최종적인 것은 2017년에 가서 평가해라.
프레시안 : 총투표 직후 이명박 후보 측과 정책협약 체결식을 하면서 "진보와 보수도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인가?
이용득 : 나는 정치적 용어나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는 잘 몰라서 제대로 못 쓴다. 하지만 과거 농업국가 시절의 지주와 소작인 관계를 산업사회인 지금 그대로 가져와 설명하는 것은 안 맞는 것 아닌가.
예를 들면 남동공단에 가면 소규모 공장이 무지하게 많다. 그 곳에 일반적인 노사관계 개념에서 쓰이는 자본가 또는 경영자의 개념을 도입할 수 있을까. 그 공단의 소규모 공장 사장들은 본인들이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일한다. 과거의 지주는 본인은 호미나 괭이 한 번 들지 않고 피땀도 안 흘리고 다 착취로만 먹고 살았지만 지금 사용자는 조금 입장이 다르다.
물론 재벌은 예외이지만, 그런 사람들까지 보수라고 봐야 하나. 정치 논리에서도 산업화 시대에는 진보 정권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변화된 개념으로 보지 못하고 마르크스 자본론에 나오는 진보와 보수, 착취와 피착취의 개념으로만 보고 있어서 그런 사용자까지도 적으로 보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개념도 그렇고 진보와 보수의 개념도 혼재돼 있고 그 경계선이 매일 왔다 갔다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공하당을 분명히 진보와 보수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단지 전쟁에 대한 불분명한 입장차이 뿐이고, 우리도 남북관계 부분에서는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 두 개념을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관계로만 보고 보수와 진보의 연대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잘못 아닌가. 때로는 협력도 하고 때로는 투쟁하는 것이 맞다. 그 과정을 통해 보수도 변하고 진보도 변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보수냐 진보냐라기 보다는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친노동적'인 정권도 안 되지만 '친기업적'인 정권도 안 된다"
프레시안 : 정책연대 평가를 하면 대선 이후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인 측의 한국노총에 대한 분위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당선인은 기업들은 부지런히 만나면서도 민주노총뿐 아니라 정책연대 체결의 한 당사자인 한국노총에는 인사치레마저 하지 않았다.
이용득 : 이명박 당선인이 본인 스스로 '친(親)기업적'이라고 했지만 정말 '친기업적'이려면 '친사용자적'이어야 한다. '친사용자적'이라면 제일 먼저 경총과 상공회의소를 방문했어야 했다. 그런데 당선인은 전경련을 찾았다. 즉 '친기업'이 아니라 '친재벌'에 정확한 것이다. 이는 당선인이 노사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소기업과 간담회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 경제 구조상 중소기업이야 어떤 정권이든 관심가지는 게 당연한 거다.
인수위 쪽에서 양대 노총 위원장을 한 자리에서 만나자고 해서 내가 명확히 '싫다'고 했다. 왜 노동계만 부르나, 사용자는 또 따로 부르고? 그러니까 인수위에서 '사용자들한테는 이미 갔다'고 하더라. 가긴 언제 갔나? 재벌에게만 갔지.
이명박 당선인이 문제인지 측근들이 문제인지 모르지만, 경제를 생각한다면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노사관계인데 그런 면에서 앞뒤가 맞지 않다. 경총과 상공회의소도 불만이 있다.
나는 '친노동적'인 정권도 있어서는 안 되지만 '친기업적'인 정권도 안 된다고 본다. 노동이기주의적으로 얘기하는 말이 아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최소한 노사관계라는 개념에서 관점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도 '친노동적'인 정권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안 맞는 말이다.
특히 정권 차원에서 전경련에만 힘을 잔뜩 실어주면 노사관계의 파트너인 경총, 상공회의소는 전경련 눈치 보느라 진실된 대화와 협상을 할 수가 없다. 실제로 경총과 상공회의소는 전경련 때문에 속과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정부는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노사관계를 풀어야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정책연대가 제대로 됐다면 (이명박 당선인 측의) 이런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정책연대 과정에서 내부의 누구도 어느 당이든 일체의 개별 접촉을 금지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앙정치위원회의 조직적 결정을 무시하고 두더지처럼 땅굴 판 사람들이 있다. 내가 최근에 '거지가 스스로 쪽박을 깬 마당에 동냥질을 할 수 있나'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다. <중앙일보>는 이 말을 한나라당과의 관계에서 쪽박이 깨졌다는 식으로 썼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몇몇이 자신의 일신영달을 위해 개별적으로 땅굴을 파면서 조직의 쪽박을 다 깬 것이 큰 문제다.
내가 입수해서 본 한나라당의 내부 보고서에 보면 '이미 조합원은 50% 이상이 이명박 지지인데, 박인상, 조성준, 이용득이 한 라인으로 정동영 쪽이고 이용득이 각 산별위원장들과 지역본부장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있다. 총투표 전에 작성된 보고서였다. 우리 조직 내부 사람이 한나라당에 가서 그런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알리면서 자신의 영달을 꾀한 것이다.
"거지가 스스로 쪽박을 깨 정책연대로 동냥질하기 어렵게 됐다"
프레시안 : 정책연대는 사실 단순히 '지지 선언'을 너머 정례적인 정책 협의회 개최가 핵심 아닌가. 하지만 지난해 12월 19일 당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협의회는 열리지 못했다. 한나라당이나 당선인 측 최근 분위기는 한국노총의 존재감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인데 정책연대가 5년 동안 가능할까?
이용득 : 우리도 정책협약 이행추진단을 7일에야 만들었다. 아직 성급히 판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노사관계가 좋은 분위기가 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을 하셨던 분이니 그런 사실은 어느 정도 알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노사관계의 자주성이 박탈당한 시대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런데 과거 그 시절의 기업하던 시각만 갖고 있다면 대통령까지 됐겠느냐. 변한 시대상황을 최소한은 볼 줄 아는 사람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노총과의 정책협약 이행의 중요성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주변의 인물들이 문제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수는 있다. 한나라당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당선인은 제대로 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못 된다면, 싹수부터 문제가 있다면 깨트리면 된다. 여러 사람이 고생해서 만든 정책연대인데 장시간 서로 인내를 가지고 추진해 나가는 게 맞다. 지도부가 벌써부터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얘기가 나온 김에 이명박 시대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정권 교체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할 것으로들 얘기하는데, 이명박 시대에 한국노총의 갈 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이용득 : 노사가 중심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해법이다. 더 이상 재벌이 중심이 돼서는 안 된다. 과거 아무 것도 없던 무일푼의 시대에는 몇몇 기업을 키워 재벌을 만드는 것이 일정 부분 필요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팔 힘만 세다고 그 사람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온 몸이 골고루 건강하기 위해서는 노사에게 힘을 줘야 한다.
이미 우리 경제는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로 끌고 가기에는 규모도 너무 커졌고 민주화됐고 다양화됐다. 획일적 통제가 불가능하다. 민간의 역량 축적이 우리 국가사회 경쟁력의 주요한 척도가 되는 시대가 왔는데 문제는 민간, 즉 노사가 뭔가를 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노사관계 수준이 국제적으로 80위 권 밖인 것이다. 노사관계 수준도 경제수준에 맞게 세계 11위로 끌어 올려야 그 다음 도약이 가능하다. 권투 선수도 스파링파트너를 만들어 자꾸 무대에 서게 해야 경험이 축적되고 그 선구가 클 수 있다. 정부가 링 밖에서 아무리 얘기하면 뭘하나. 노사발전재단이 그런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차기 노동부 장관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나?
이용득 : 내가 기대하는 사람은 김문수 전 지사인데 본인이 고사할 것 같다. 김 전 지사는 노사 양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시대정신이 있는 사람이다.
"장석춘 위원장 후보, 믿을만하다"
프레시안 : 다시 한국노총 얘기로 돌아가 보자. 3선 도전을 선언했다가 후보 등록을 며칠 앞두고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용득 :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고 하지 않나. 대개 떠날 때는 상황이 최악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시기 선택을 잘못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국민 평가나 조합원 평가가 지금까지는 상당히 좋다. 떠날 때다.
또 28년을 노동운동을 하면서 모두가 다 그랬겠지만 유독 힘이 들었다. 유치장 생활만 10번 이상이고 감옥엔 2번이나 다녀왔다. 해고도 됐었고, 삭발은 8번 했고 단식도 7번이나 했다. 이제는 좀 쉬고 싶다. 물론 내가 물러나서 우리 운동이 후퇴될 상황이라면 아무리 쉬고 싶더라도 끝까지 가야하지만 지금 상황은 쉬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 : 차기 위원장으로 장석춘 금속노련 위원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인가?
이용득 : 장석춘 위원장이 내게 약속을 했다. 나 혼자에게만 아니라 임원들과 함께 약속했다. 이용득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운동 방향이 바뀌고 후퇴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안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운동 방향이 정착돼 나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석춘 위원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이용득이 길을 닦아 놨다면 그 길을 나는 달려가겠다'고 했더라. 더욱이 장 위원장은 합리적 노동운동 노선을 걸어 왔던 사람이다. 믿을만하다.
프레시안 : 위원장에서 물러선 후 거취에 대해 외부에서는 여러 말들이 나온다. 입각설이나 비례대표 출마 등 국회 진출설도 나온다.
이용득 : 우리은행의 박해춘 행장은 '해병대 장교들, 경제부 기자들, 정부 관료들, 기업 CEO들 등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이용득 칭찬을 하더라'며 지금이 내가 상품성으로 보면 최고의 가치를 가진 때라고 말하더라. 여기저기서 내 가치를 사려고 할 때 팔려주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책연대 하면서 분명히 정치권에는 안 가겠다고 밝혔다. 정책연대의 성공을 위해 신뢰부터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러 당에서 말들이 있지만, 그 말을 바꾸고 싶지 않다.
입각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물러난 이후에 한 토론회에서 내가 '노사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나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 입각설이 곳곳에서 나오는데 나는 순수 노동운동가로서 지금은 좀 쉬고 싶을 뿐이다. 아직 은행 정년도 4년이나 남았고 당장 생활 수단을 찾아야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떨어져서 여러 가지 생각도 해 보고 당분간 쉬면서 역량 축적을 하고 싶다.
설사 내가 만약 정치를 한다고 해도 비례대표로는 안 간다. 실패하더라도 지역구로 가야 하지 않나. 국회의원 뱃지를 4년 간 감투로 달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정치에 집중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지역구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 : 본인은 출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4월 총선에 대한 한국노총의 계획이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당에 관계없이 노총 후보를 낸다는 정치방침을 정했는데 한나라당과 정책연대와 모순 아닌가?
이용득 : 정책연대는 노동정책에 관련된 연대일 뿐 모든 정치적 행보를 한나라당과 함께하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과거에도 총선 방침은 항상 정당에 관계없이 각 지역본부와 산하조직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각 정당에 우리가 적극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노동계 출신이 국회에 많이 진출할수록 좋다는 것은 노사관계에 정치권이 너무 백지 상태여서 그렇다.
한 두 명이 들어가는 것보다 20~30명이 간다면 한국사회가 훨씬 성숙된 사회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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