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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선택한 한국노총…당신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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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선택한 한국노총…당신의 자화상"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30> 한국노총의 선택, 대한민국의 선택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노총은 지지율 40%를 넘는 구 독재 권력의 계승자로 구성된 친자본, 친시장 노선의 첨병에 서 있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반면에 민주노총은 지지율 2~3%에 묶여 고전하는 노동자·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 정당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분열상은 한국 민주주의가 또 한 번의 고비를 넘어주길 고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특히 한국노총의 선택은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에 집착해, 이해 대변의 착종 상태를 초래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내부 민주화에 관심을 쏟으면서, 결국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의 길, 노동운동 본연의 길을 훼손시키는 결과다. 절차적으로 완벽하면 배가 산으로 가도 되는 것인가?

나는 적어도 지난 1980년대 말에 한국노총이 박종근 위원장을 선출한 후 과거 어용 노조로 국가 권력에 굴종했던 역사와 단절을 하고 노동자의 대표 조직으로 거듭나고자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변신하고자 노력해온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아 왔다. 일각에서 "아직도 어용"이라고 단언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매번 국가, 자본과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따가운 눈총을 주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심 그런 선택 안에는 자칫 모험주의적인 함정에 빠져 '선명하되 실속은 없는' 정치 투쟁이 담지 못하는 실용적 성과를 담아 한 걸음이라도 더 현실을 바꿔보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호의적으로 해석하곤 했다.
▲ '이명박 지지'라는 한국노총의 선택은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에 집착해, 이해 대변의 착종 상태를 초래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한국노총의 수장인 이용득 위원장이 노사발전재단을 제안하고 추진할 때, 그가 평소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던 빔 콕(Wim Kok) 총리가 이끌었던 네덜란드식 노사 관계의 제도적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재단(Labor Foundation)'을 떠올린 것도 이런 사정 탓이었다. 내심 노사가 주도하는 선진국형 노사 관계의 구축을 위한 씨앗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여겼다.

한국노총을 아직도 '엘로 유니온(yellow union, 황색노조)'이라고 인식하고 199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노·사·정 대화의 활성화를 보고 "이거 '국가 조합주의(state corporatism)' 아니냐고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유럽 내 노사 관계 연구자에게 "한국노총은 1990년대 이후 자정의 노력을 보이고 있어서 더 이상 그렇게 볼 수 없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하향식(Top-down) 비민주적인 조직 운영의 관행을 탈피하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절차를 존중하는 운영, 그리고 종래의 노동운동으로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해외에 나가 투자자를 설득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려는 일종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가까운 선택도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려는 남다른 능동성이 조금 지나쳤을 뿐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와 창조적 파괴가 오묘하게 (혹은 교묘하게) 결합해 마침내 조직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한나라당과의 정책 연대를 통해 노동운동의 이해를 실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관용과 인내를 동반한 시선만으로 이 조직의 행보를 바라보기가 힘겹게 되었다.

배가 물위에 떠 있는 한 천천히 가기도 하고 뒤로 가기도 하고 또 빙글빙글 돌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와 산으로 가겠다는데 그 어떤 배경 변수도 그런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힘들다.

노동조합과 이익단체의 정치적 선택에 관한 세계 사회과학계의 연구를 보면, 대중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이 (사용자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선택을 할 경우 그것은 '내부 논리'와 '외부 논리'의 모순적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내부 논리는 다른 말로 구성원 논리, 조합원 논리(logic of membership)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외부 논리는 영향 논리(logic of influence), 환경 논리, 즉 조직이 처한 환경에서 조직 전체 내지는 조직이 대변하는 사회 세력 전체의 이해 증진을 위한 선택 논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한국노총의 선택은 내부 논리만 놓고 봤을 때, 민주주의의 강화를 통한 조직 내 응집과 그 과정을 통한 지도부의 힘을 강화하려는 의중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조직 내 응집을 강화하려는 시도만으로 조직 전체가 외부를 향한 타당한 방향을 찾지 못했다. 엉뚱하게 가장 반노동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후보, 정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내부 논리에 치중하다가 외부 논리에서 노조가 지향해야 할 합리적 핵심까지 이탈해 버린 형국이다. 아무리 노조 민주주의의 발전을 들먹거릴지언정 과거 햇볕과 양달만을 좇아오던 어용 노조 시절 한국노총의 모습으로 오히려 후퇴시키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박종근, 박인상, 이남순 그리고 얼마 전 이용득까지 행여 절차를 소홀히 한 카리스마적 선택을 했을지언정, 그들의 지도력 하에 한국노총이 일정하게 사회 민주화에 적응해 가려는 노력을 한 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다. 이제 그러한 카리스마적 선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카드를 뽑았으나, 결론은 카리스마적 선택보다도 못한 결과를 내 온 것이다.
▲ 한국노총의 이번 선택은 내부 논리에 치중하다가 외부 논리에서 노조가 지향해야 할 합리적 핵심까지 이탈해 버린 형국이다. 아무리 노조 민주주의의 발전을 들먹거릴지언정 과거 햇볕과 양달만을 좇아오던 어용 노조 시절로 오히려 후퇴시키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연합뉴스

한국노총이 이번 선택을 한 배경 지형은, 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 유권자의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다. 민주주의가 '공정한 절차'를 통해 '민(民)이 강해지고 주인(主人)이 되는 길'을 지향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난 10년간 절차적 민주주의의 팽배와 실질민주주의의 빈곤간의 불균형한 성장에 고통을 겪었다.

절차적으로 민주주의가 강화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사회경제적인 이해가 적절하게 대변되는 구조와 대안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올 겨울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적극적 선택(positive choice)'이 아니라 누가 싫어서 하는 '소극적 선택(negative choice)'에 집착하고 있다.

소극적 선택에의 집착은 이해 대변의 착종까지도 불사한다.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이라는 식의 한나라당의 속빈 슬로건은 이러한 대중들의 심리에 그대로 영합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대중의 표면적 지지가 압도적인 이 상황을 유권자들의 '소극적 선택'이 초래한 '이해 대변의 착종' 상태라고 이해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의 계속된 성숙을 위해 필요한 작업은 '적극적 선택'을 하는 유권자들이 다수가 되도록 만들고, '착종된 이해 대변 구조'를 제자리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논리와 외부 논리 간의 간극, 혹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강화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약화를 초래하는 선택으로 이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을 해소하는 방안이 찾아져야 한다. 고전적인 의식화 모델 내지 소통 모델은 이 시대에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그 방법이 정도(正道)가 아닐까 싶다.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고 교육하는 과정을 통해 과연 그들의 '사회적 이해'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누가 그 이해를 대변하는지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는지에 대해 판단력을 신장시키는 일상화된 소통구조를 강화하는 일 말이다.

이것은 다음 정권 하에서도 계속해서 한국판 민주화의 여정이 또 한 고개를 넘어 주기를 고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야 할 몫이며, 바로 그러한 실천을 둘러싸고 갈등과 논쟁이 더욱 치열하게 형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도 자신이 기반을 둔 노동대중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바로 그 자리에 나서서 이번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겸허한 성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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