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명박과 한국노총의 '이상한' 연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명박과 한국노총의 '이상한' 연대

정책연대인가 총투표를 빙자한 줄서기인가

한국노총(위원장 이용득)이 끝내 주요 후보들 가운데 가장 '반노동조합' 성격이 강한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합법적인 범위에서 남은 대선 기간 적극적 선거 운동"도 약속했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7층 회의실에서 열린 양쪽의 정책협약 체결식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일부 한국노총 관계자들만 '죽을 상'이었을 뿐, 산별노조 대표자 및 지역본부 의장들과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관련 기사 : 한국노총 조합원 총투표, 이명박이 41.5%로 1위)

정책협약 체결식은 "이명박 후보 당선의 결의를 모아 힘찬 박수"로 끝이 났고 양 측 관계자들은 이 후보의 번호인 2번을 의미하는 V자를 단체로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 차례에 걸쳐 "정책연대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던 이용득 위원장은 이날 "한국노총은 진보운동세력이고 한나라당은 정통보수이지만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는 "차기 5년은 노사정이 세계에 유례 없는 화합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다짐했고 이용득 위원장은 "설사 반노동자적 인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명박 후보의 그런 인식을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를 통해 바꿀 것"이라며 "자신 있다"고 했지만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용득 "이명박의 반노동조합적 성격, 우리가 바꾼다"
▲ 한국노총(위원장 이용득)이 끝내 주요 후보들 가운데 가장 '반노동조합' 성격이 강한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합법적인 범위에서 남은 대선 기간 적극적 선거 운동"도 약속했다.ⓒ연합뉴스

이명박 후보는 이날 한국노총을 찾아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할 수 있게 돼서 매우 보람 있게 생각하고 큰 의미를 두고 싶다"며 이용득 위원장의 리더십을 추켜세웠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은 이념적으로는 실용주의적 보수이지만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진보보다 더 개혁적으로 우리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어 "항상 선거는 지지자와 반대자가 있지만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선거 때는 갈라졌지만 총투표가 끝났으니 승복이라는 미덕을 발휘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정통 보수 정당이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다면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그 인식을 바꿔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책연대의 의미"라고 말했다.

지도부의 책임 떠넘기기로 예고됐던 '이명박 지지'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는 충분히 예고됐던 일이었다. 대선 지지 후보를 조합원 총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은 얼핏보면 김형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대로 "노동운동사 최초의 대단히 민주적"인 것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도박'이었다. "조합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도부는 '조합원 총의'에만 무게를 실었을 뿐, 현장 조합원들에게 판단 기준이 될 근거 제공에도 무력했다. 단지 후보별로 보내 온 장문의 정책질의 답변서만을 공개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사회 분야를 놓고 진행하려 했던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도 이명박 후보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 총투표가 한국노총의 정책적 색깔이 가미된 '의미 있는' 선택이 되기보다는 '인기 투표'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총투표에 참가했다는 한 조합원은 "뭐 때문에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전화가 오기에 평소 지지하던 후보를 찍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볼성사납게 됐다"
▲ 정책협약 체결식은 "이명박 후보 당선의 결의를 모아 힘찬 박수"로 끝이 났고 양 측 관계자들은 이 후보의 번호인 2번을 의미하는 V자를 단체로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었다.ⓒ연합뉴스

더욱이 한국노총은 지나치게 후보 범위를 제한해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세 후보만을 놓고 총투표를 벌였고 현장 조합원의 선택의 폭을 줄여 놓았다. '지지율 10%'라는 조건에 걸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중잣대' 논란도 나왔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민노당 책임자들의 '반(反)한국노총 발언'을 문제 삼아 사과를 요구했지만 정작 수 차례에 걸쳐 "정치노조, 강성노조를 없애겠다", "우리나라처럼 비효율적이고 불법적이고 극렬한 노동운동을 하는 곳은 없다" 등의 '반(反)노동조합 발언'을 해 왔던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 요청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명박 후보는 현대 그룹 재직시 노조 파괴 공작에 연루된 의혹도 제기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이런 이 후보의 전력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한국노총의 이 같은 선택에 대해 "볼성사납게 됐다"고 평했다.

"'무슨 정책'을 연대하나?…실현 가능성은? '제로'"

양 측은 이날 체결한 정책협약 협정서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당선될 경우 재임 기간 동안 한국노총 10대 정책요구 및 회원조합 정책요구 답변서에서 밝힌 공약을 반드시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를 위해 양 측은 정례적인 정책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노총의 이 위험한 실험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봤다. 한 전문가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면 한국노총과의 관계가 부드럽긴 하겠지만 한국노총의 요구를 경영계의 요구에 비해 우선적으로 들어줄 확률은 거의 없다"며 "한국노총의 짝사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는 정책연대 과정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 60세 정년보장법 제정, 퇴직연금제도 개선 등의 한국노총의 정책요구에 대해 '수용'이나 '적극검토' 등의 입장을 밝혔지만 얼마만큼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

과거 '친노동자적'인 경력으로 인정받았던 인권 변호사 출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노태우 정권에 이어 가장 많은 노동자를 구속시킨 상황에서 '노동탄압' 전력을 가진 후보의 "협정서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수준의 약속을 믿을 수 있냐는 우려인 셈이다.

"더욱이 차기 정권이 양대 노총 가운데 그래도 대화가 가능한 한국노총을 제외하고 정책 결정을 할 수야 없겠지만 어차피 그건 지지하든 반대하든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이 전문가는 "후보들 간 정책 토론이 제대로 된 것도 아니고 공약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던 만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국노총 조합원의 성향을 보면 충분히 결과가 예상됐던 일이었던 만큼 총투표를 빙자한 줄서기"라고 혹평했다.

한국노총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 이 전문가는 "보수와 손을 잡은 만큼 최대한 자체 조직 실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과거에는 그래도 '조합원의 실리'였다면 이제는 '한국노총 조직 내지 지도부 실리'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하기도했다.

민주노총 "자기 정체성 스스로 부정하고 전체 노동자 모독한 행위"

한편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공식 지지하기로 한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민주적 절차를 가장해 정당성 없는 자신들의 선택을 합리화하려 했다"며 "노동자 조직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를 우롱하고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어 "한국노총 조합원조차도 다수가 동의하지 못하는 바, 지도부가 다시 한 번 전체 조합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정책연대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