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빈 자리가 생겼다. 집안 어디에선가 늘 들리던 노랫소리가 사라졌다. 주인 없는 빈 방, 문을 열면 벽에 걸린 청색 자켓과 줄무늬 티셔츠가 보인다. 그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가족들을 맞는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유예은 학생이 이 방의 주인이다.
지난해 4월, 아버지 유경근 씨의 표현대로 예은이는 "너무나도 긴 수학여행"을 떠났다. 배 멀미엔 생강이 좋으니 챙겨주라는 아빠의 이야기에, 엄마는 딸의 여행가방에 생강사탕 한 통을 넣어 보냈다. 수학여행 때 가지고 갔던 캐리어와 그새 녹슬어버린 철제 사탕상자는 방으로 돌아왔는데, 방의 주인은 돌아오지 못했다.
"예은이가 과일을 엄청 좋아했어요. 학교 다녀오면 밥보다 과일 달라고 할 정도로…. 이제 집에 과일이 항상 남아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 4일, 4.16기억저장소의 개인기록수집팀과 함께 안산시 선부동의 예은이네 집을 찾았다. 어머니 박은희 씨가 과일을 깎아 내오며 긴 한숨을 내쉰다.
"예은이 생일이 10월15일인데, 셋째 생일은 10월14일이에요. 그래서 우리집은 딸이 넷이어도 생일파티를 일년에 두 번 밖에 안했어요. 쌍둥이 언니들은 친구들 불러다 2층에서 놀고, 동생 친구들은 아래층에서 놀고…그래서 10월이 가장 신나는 달이었는데…이젠 말도 못 꺼내죠."
예은이는 딸 넷의 '딸 부잣집'에서 쌍둥이 둘째로 태어났다. 예은이와 함께 방을 쓰던 쌍둥이 언니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방을 옮겼다. 사춘기의 자매가 그렇듯, 옷이나 화장품 문제로 투닥투닥 다투곤 했던 언니는 예은이가 떠난 뒤 많이 힘겨워했다고 한다.
"예은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에, 하은이한테 후리스 한 벌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안 빌려줬거든요. 예은이 그렇게 되고 나서, '내 옷 다 줄테니까 빨리 오라고…'. 그렇게 소리지르고 울던거 생각하면…"
예은이 생각만 할 수 없는 엄마는, 남은 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또 가슴이 시리다.
예은이의 꿈은 가수였다. 처음엔 10대 아이들이 한 번 씩은 꾸는 꿈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열정이 대단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한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했을 때 지원서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보컬 학원에 등록했을 때'라고 쓸 정도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한 아이였다.
"사실 제가 봤을 때 노래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정말 노력파였어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하는 그런 아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부끄러울 정도로…"
엄마는 "예은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이라며 상자 안에 보관한 보컬 학원 수강증을 꺼내 보였다.
예은이의 물건들 중엔 유독 악보가 많았다. 따로 모아둔 파일엔, 각 대학의 연극영화과 입시 요강과 각종 연예기획사에 대한 정보를 문서로 출력해 정리해놨다. 엄마는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이루지 못한 딸의 꿈이 더 아프다.
"이렇게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었는데…그런 애들이 그렇게 다 허무하게…"
엄마는 모든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쌍둥이 언니와 같은 학교를 보내지 않고 단원고에 보낸 것이, 안산에 이사를 온 것이, 수학여행을 보낸 것이.
그리고 모든 것이 미안하다. 지난해 10월 예은이의 생일, 아빠 유경근 씨는 페이스북에 딸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썼다.
"예은아, 아빠가 많이 망설이다가 말을 거네….
예은아…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17년 동안 정말정말 자랑스러운 딸로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
영원히 예은이 아빠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아빠가 가장 필요할 때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
아직도 4월16일이라서 미안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매일 쓰러져서 미안해.
모든 게 다 미안해.
안산으로 이사 와서 미안해.
단원고등학교에 보내서 미안해.
수학여행 못 가게 할 걸 그러지 못해 미안해.
학교 앞에서 헤어질 때 커다란 과자상자 못 들어다 줘서 미안해.
그때 꼬옥 안아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할 걸 그러지 못해 미안해.
전화 왔을 때, 거기서 빨리 나오라고 말하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아빠가 예은이 아빠여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 못난 바보 멍청이 아빠의 딸로 다가와 준 예은아, 사랑해.
오늘은 예은이만을 위해 생일 초 18개를 따로 준비했어. 힘껏 불어 줄 거지?
예은아, 허락해준다면 예은이 보러 추모공원에 가보려고 해.
다 밝혀내고 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약속 못 지켜서 정말 미안해…."
온전히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을 지난 1년의 시간,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귀 닫은 세상을 향해 싸워야 했던 아빠다. 각종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모두 밝힐 때까지 예은이 보러 추모공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던 아빠다.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고, 딸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려고 삭발까지 한 아빠다. 지키기에 너무나도 힘들었던 그 약속을 깬 것이, 또 한없이 미안한 아빠다.
아빠는 결국 예은이의 생일 때 추모공원을 찾지 못하고 성탄절 전날이 되서야 예은이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가수 꿈 위해 찍어준 프로필 사진, 그게 영정이 될 줄은 몰랐는데…"
예은이네 집 거실엔 환하게 웃고 있는 예은이의 사진이 걸려 있다. '끝까지 밝혀줄게'. 엄마와 아빠가 거리에서 들었을 노란색 피켓도 함께 놓였다. 그렇게 가족들은, 예은이와 매일 마주한다.
사진은 세월호 참사 2달 전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이다. "가수 하려면 프로필 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비싸지만 찍어준 사진이었다고 한다.
"그 때는 어색하기도 하고, 비싸서 좀 망설였는데…지금은 찍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은이가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게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지…"
늘 '괜찮아'라고 말했던 아이
"예은이가 가장 많이 하던 말은 '괜찮아'였어요. 정말 착하고 순한 그런 애였어요."
딸의 사소한 습관을 얘기하며, 한 때는 일상이었던 딸의 말투와 버릇을 이야기하며 엄마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엄마가 파일 속에서 성적표 한 장을 꺼내 보여준다. "얘가 이런 애에요, 시험 잘 못 보면, 성적표 뒷면에 편지 써서 주는…"
성적표 뒷면에 쓴 짧은 편지엔 "우선 이번 시험 망쳐서 미안하구…ㅋㅋ"로 시작해 '제일 못본 수학'부터 성적이 낮은 여러 과목에 대한 귀여운 '변명'과 함께 앞으로의 공부 계획이 담겼다. 마지막엔 '기말은 더 잘 볼게~♡ 사랑해♡'라는 애교도 잊지 않았다.
기억저장소 활동가들이 가져온 스캐너 두 대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개인기록수집팀 활동가 이해리 씨가 예은이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을 넘겨보다 혼잣말을 하며 빙그레 웃는다. "예은이가 이 때, 참 행복했구나."
그렇게 이 참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이의 흔적을 통해 실제로는 만나본 적 없는 아이들과 만난다.
사진부터 일기장, 성적표와 자주 쓰던 물건 하나하나까지. 그렇게 저장된 기억들은, 안산 기억저장소에 켜켜이 쌓여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로만 호명되는 304명의 차가운 숫자 안에, 304개의 꿈이 있었고, 그 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엄마 품으로 돌아오기 전, 꿈에 먼저 온 예은이
예은이는 수학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선 지 열흘 만인 4월23일, 그렇게 타보고 싶다고 했던 헬리콥터를 타고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미리 예매한 뮤지컬 <캣츠>의 공연 날짜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사고가 나고 쌍둥이 언니가 너무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안산에 있었는데, 예은이가 그날 나올 걸 알고 있었어요. 22일 밤에 꿈을 꿨는데, 하얀 옷을 입은 예은이가 사거리 모퉁이 과속방지턱 위에 앉아 있는거야. 커다란 여행가방 들고 거기에 앉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예은이가 나오겠구나…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주일 만에 씻고, 머리도 감고, 밥도 먹고…준비하고 있었는데, 애 아빠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우리 예은이 찾았다고."
예은이를 데리고 안산으로 올라 온 뒤 엄마는 그토록 기다려 왔던 딸의 얼굴을 다시 봤다.
"저는 찾고 난 후에 바로 예은이 얼굴을 못 봤어요. 애들 아빠가 예은이 얼굴이 상했다고, 못 들어가게 해서…그런데 입관 전에 봤는데, 정말 피곤해서 고단하게 잠들어 있는 그런 모습이더라고요.
예은이가 잠귀가 밝아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금세 일어나는데, 가끔 피곤할 때 세상 모르고 자는 그 표정이 있어요. 저는 그 표정을 알잖아요. 그런 표정이었어요. 저한테, '엄마 나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담담하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오던 엄마는, 바다에서 올라온 캐리어 속 물건을 매만지다가 이내 무너진다. 사고 후에도 남은 아이들 때문에 눈물을 삼켜야 하는 날이 더 많았다는 엄마는, 수학여행 때 가지고 갔던 예은이의 옷가지 위에 엎드려 한참 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다시 벚꽃 피는 계절이 왔는데…"
예은이의 책상 위엔 친구들이 보낸 편지와 함께 수학여행에 앞서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이 놓여 있다.
"배 타는데 여기에 안전 수칙 하나도 안 나와 있어요. 지시에 따르라는 말만 나와 있고…."
17년이란 너무 짧은 시간을 부모 곁에 머물다가 간 딸. 가슴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부모는, 그래서 '우리 애가 왜 죽었는지만 알게 해 달라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딸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걸고 쉼 없이 걷고,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거리에서 잠을 잔다. 그렇게라도 해야, 예은이를 만났을 때 조금은 덜 미안할 수 있을거란 엄마 아빠의 마음이이다.
예은이는 그렇게나 좋아했던 3반 친구들과 함께 서호 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안산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즈음, 그 벚꽃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꽃사진을 찍고 긴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다. "다시 벚꽃이 피는 게 무섭다"는 엄마의 마음을 또 흔들어 놓기라도 할 것처럼,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다시 4월이 왔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한 달여 전, 단원고 교정에서 촬영한 2학년3반 아이들의 영상. 회색 후드 상의를 입은 긴 머리의 소녀가 예은이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학생 7명은, 모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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