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보는지 알지 못하고 보았다. 순진하고 천박한 구경꾼으로 TV 앞에 앉아 있었다."
단원고 2학년 8반 재영이 엄마, 아빠가 고잔동 거리에 걸어둔 노란 현수막에 적혀 있는 글입니다. 1년 전 그날, 재영이 엄마는 일터에서 친척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인터넷을 봐."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괜찮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이야기했지요. 재영이는 가라앉는 세월호의 앞쪽에 타고 있었습니다. 배 안에 설치된 CCTV 카메라에 재영이가 잡혔습니다. 침착한 표정이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모습입니다.
남아 있는 이들이 기억하는 재영이는 차분하고 총명한 아이였습니다. 컴퓨터를 좋아했고, 잘 다뤘죠. 훗날 구글 연구원으로 일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도 탐독했었죠.
재영이의 방에는 재영이가 직접 조립한 컴퓨터가 있습니다. 이상하죠. 그날 이후, 컴퓨터가 작동을 멈췄습니다. 고쳐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재영이가 워낙 아끼던 거라서요.
두루 넓게 사귀는 사람이 있고, 속을 털어놓은 친구와 깊이 사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영이는 후자였습니다. 조금 내성적이던 재영이는 중학교 시절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많이 활발해졌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재영이는 신발을 바꿨습니다. 어릴 때 평발이었거든요. 그래서 교정용 신발을 신고 다녔는데, 교정이 끝나면서 편안한 신발로 바꾼 거죠. 발걸음이 편해지니까 아이는 학교생활이 더욱 즐거웠습니다. 그게 수학여행 떠나기 얼마 전입니다.
재영이도, 엄마도 단원고등학교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른바 특목고, 자사고는 아니지만,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으니까요. 재영이는 "책상 위에 지갑을 둬도 안 없어진다"고 말했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성적도 많이 올랐습니다. 사교육에 기대지 않고, 친구들의 멘토 역할도 잘 하면서 얻은 성적이라 엄마는 더 기뻤습니다.
인터뷰 내내 강아지가 짖었습니다. 재영이가 아끼던 '강산이'입니다. "형 어딨니"라고 하면 재영이에게 뛰어가던 '강산이'는 이제 갈 곳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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