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이는 사 남매 중 맏딸입니다. 두 살 아래 여동생, 그보다 한 살 아래 쌍둥이 남동생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있습니다. 동생들은 엄마 아빠보다 첫째 언니, 누나를 무서워할 정도로 혜원이는 집안 내 군기반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어느 무리에 있든 리더 격이었습니다. 수련회, 체육대회 때면 친구들과 장기자랑을 했는데, 안무를 알려주는 건 모두 혜원이 몫이었습니다.
"혜원이가 집안에서는 무게만 좀 잡았지, 조용한 편이라 존재감 없는 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애가 학교 가면 주도적으로 바뀐다니까 '우리 애가 그런 면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역시 부모가 자식을 다 알진 못하나 봐요."
엄마 아빠는 혜원이가 집에 있나 없나 모를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얌전한 편이었던 탓도 있지만, 워낙 잠을 많이 자서 그렇다고 합니다. "24시간을 한 번도 안 깨고 내리 자는 잠퉁이였다"며 아빠는 혀를 내두릅니다. 일요일에 친구들이 혜원이네 집까지 와 깨우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간 적도 많을 정도입니다.
잠도 많고, 행동도 느릿느릿해서 지어진 혜원이의 별명은 '거북이'입니다.
"친구들이 되게 답답해했대요. 느린 데다가 애가 너무 바르니까. 밤 11시, 12시면 아무도 안 보니까 횡단보도 그냥 건널 법도 하잖아요. 그런데 혜원이는 파란불이 아니면 절대 안 건넜대요. 지각인데도 꼭 신호 지키고."
얌전하고 바른 학생일 줄만 알았던 혜원이가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출 정도로 끼가 많은 아이였다는 게 엄마 아빠는 무척 신기합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혜원이의 꿈은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혜원이가 방송국에서 일하면 꼭 만나고 싶어 했던 연예인은 그룹 '블락비' 지코입니다. 팬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열혈 팬이었습니다.
"지코가 장례식장에 와서 저랑 거의 한 시간 반을 얘기했어요. 그 친구 어머니까지 상복 입고 찾아오셨더라고요. 이 친구가 나중에 컴백할 때 노래 부르다가 누구 이름을 불러서 '전 여자친구 아니냐'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알고 보니 세월호 아이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혜원이 생각한 거겠죠. 많이 고맙더라고요. 저까지 팬이 되어서 그 친구 기사도 많이 찾아봐요."
"과자 하나도 전화하고 사 먹던 아이… 돈 다 쓰라고 줄걸"
혜원이네는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혜원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8년 넘게 밤마다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엄마 아빠의 사정을 아는 혜원이는 교통비를 아낀다며 도보로 40~50분 되는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녔습니다. 엄마 아빠는 밤마다 늦은 귀가를 하는 딸이 안쓰럽기도,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니까 눈치가 보였는지, 과자 하나를 사 먹으려고 해도 전화를 했어요. 수학여행 갈 때 '아디다스' 바지 사달란 얘기도 힘겹게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대학 보낼 때 준다고 모아놓은 그 돈이 너무나 억울한 거야. 다 쓰라고 줘버릴걸."
수학여행 가면서 혜원이가 받은 용돈은 5만 원, 그중 혜원이가 쓴 돈은 고작 2000원이었습니다.
"과자라도 많이 사 먹고 가지…."
못 해준 게 많은 엄마 아빠는 혜원이가 남기고 간 용돈이 서글픕니다.
사고 후 6일 만에 찾은 혜원이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내 딸인데, 만지기가 무섭더라고요. 검안실에서는 손도 못 만져보고, 염하기 전에 겨우 만져봤어요."
혜원이 물건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혜원이를 보내던 날, 물건도 함께 하늘로 보냈습니다.
"혜원이 흔적 보면 힘들어서…. 그런데 너무 빨리 정리했나 싶기도 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안산 근교 하늘공원에 잠들어있지만, 혜원이는 서울 동작구에 있는 달마사에 있습니다. 단짝 세영이를 외롭게 혼자 둘 수 없어서입니다. 세영이와 혜원이는 알아주는 '절친'이었습니다. 세영이가 혜원이를 따라 단원고에 들어갈 정도로요. 혜원이가 받은 선물, 편지에는 세영이가 준 것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아이들 생전에는 일면식 없던 두 아이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서로 알게 됐습니다.
"같은 동네 사니까 지나다니면서 서로 한두 번 본 적은 있을 텐데 뭐 하는 사람인지, 우리 애 친구네 부모인지 알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 일 겪고 나서 보니 '그 사람이 그 애 엄마였어?' 이렇게 되더라고요. 애들 덕에 부모들끼리 알고 지내게 됐죠. 이걸 애들한테 고마워해야 할지…."
"그리움이 이렇게 아픈 건지 몰랐어요"
둘째 혜빈이는 '언니가 못다 한 일들 내가 하겠다'며 단원고에 들어갔습니다. 혜빈이는 7반 희생자 상호의 동생 해연이와 같은 반입니다.
"동생들이 별로 힘든 내색을 안 하더라고요. 저는 애들이 어려서 큰 충격이 없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스스로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거더라고요. 자기들끼리 의지하고. 생각보다 애들이 강하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오히려 엄마 아빠가 문제지…."
3반 유가족 대표를 했던 아빠는 사고 직후엔 워낙 정신이 없던 터라 혜원이 생각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1년여가 다 되어가자, 예전엔 애를 써도 기억 안 나던 혜원이와의 일들이 이제야 조금씩 생각납니다.
"대리 운전할 때 밤에 단원고 근처 가면 혜원이한테 연락이 와요. '아빠 봤다' 이러고요. 그럼 저도 '나도 너 봤다' 이러고…. 그리고 제가 많이 갈궜거든요. 혜원이가 리액션이 재밌었어요. 덤비고 그런 게 귀여워서. 뽀뽀해달라고 하면 맏딸인데도 해주고. 나머지 애들은 아무리 해달라고 해도 안 하는데…. 이런 소소한 것들이 떠올라서 괴로워요."
어느새 몸도, 마음도 지친 아빠는 최근 다른 부모님께 반대표 역할을 넘겼습니다. 통증 없는 아픔. 아빠는 숨을 쉬는데도 숨이 막힌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난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애들 생각도 해야 하고, 나도 우리 어머니한테 자식이니까 살아야 해서 버티지만 정말 자신 없어요. 당구 치거나 그렇게 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더라고요. 너무 혜원이가 보고 싶어서. 저는 그리움이 이렇게 아픈 건지 몰랐어요."
아빠는 몸도 편치 않습니다. 예전에 왼쪽 다리 고관절 수술을 해서 오래 걷기 힘든 몸인데도 아빠는 딸 생각에 반 대표까지 맡아 국회며 광화문을 돌았던 탓입니다. 다시 수술을 해야 하지만 아빠는 아직은 수술대에 오를 수 없습니다.
"아프다고 수술받는 것도 미안해요. 그래도 전 술 담배는 안 하니까 썩어 문드러질 일 없을 거고…. 아직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니까, 혜원이 생각하면서 좀만 더 참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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