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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민이 옷, 죽을 때까지 입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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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민이 옷, 죽을 때까지 입을 거예요"

[고잔동에서 온 편지<10>] 단원고 2학년7반 나강민 학생 이야기

강민이네 집은 새집입니다. 강민이에게 더 좋은 방을 마련해주고 싶어서 아빠가 지난해 4월 14일 계약한 집입니다.

"평일에는 직장 다니니까 주말에 강민이 데리고 새집 구경시켜주려고 했는데"

강민이는 결국 새집, 새 방을 보지도 못한 채 아빠 곁을 떠났습니다. 아빠는 강민이가 집을 잃고 헤맬까 봐, 분향소와 하늘공원 강민이 자리에 새집 주소를 적은 종이를 놓아뒀습니다.

▲아빠가 강민이 책상 위에 놓아 둔 강민이 사진. ⓒ프레시안(서어리)

이 집에 사는 이는 아빠 혼자입니다. 강민이네 부모님은 강민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이혼했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는 고모가 채워줬습니다.

"강민이가 14일에 수학여행 갈 준비하면서, 고개를 푹 숙여서 한숨을 쉬더라고요. 수학여행 가는 걸 엄마가 도와주기로 했는데 엄마가 바빠져서 만나지는 못하고 돈만 줬나 보더라고요. '왜 우리 엄마 아빠는 싸워서…" 이러더라고요. 강민이는 엄마 아빠가 다시 같이 살기를 바랐죠."

▲강민이 어렸을 적 사진 뒷면에 아빠가 적어놓은 강민이 이름 뜻, 출생 시간. ⓒ프레시안(서어리)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입니다.

"엄마 아빠가 싸우지만 않았으면, 옛날 집에서 계속 살았으면 강민이가 단원고에 안 갔을 텐데… 엄마도 죄책감에 시달리나 보더라고요."

강민이는 중학교 때까지는 엄마를 자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엄마와 친해진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입니다.

"강민이가 엄마 없이도 착하게 잘 크는 걸 보고 엄마가 고맙고 미안해서, 그때부턴 아들을 친구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고 그러더라고요. 같이 살진 않아도 강민이 엄마가 아들한텐 정말 잘했어요. 센스도 있어서 옷도 예쁜 것, 비싼 메이커만 사다 입히고, 용돈도 많이 주고. 강민이도 엄마를 무척 좋아했고요."


"엄마 없는 강민이, 불쌍해서 혼도 못 내고 키웠어요"

엄마 대신 강민이를 10년 넘게 키운 고모는 엄마 없는 강민이가 안쓰러웠습니다.

"강민이가 어렸을 때 저랑 같이 자는데 저를 엄마로 착각했는지 더듬더듬 제 배랑 가슴을 만지더라고요. 강민이 안고 많이 울었어요. 어린 게 얼마나 엄마가 생각났으면 그럴까. 우리 애들은 잘못하면 때리고 욕하면서 키웠는데, 강민이는 혼도 못 냈어요. 초등학교 때도 학부모 행사 때마다 제가 가면 강민이가 좋아가지고 '고모, 고모' 하면서 엎어져가면서도 뛰어오던 게 생각나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고모는 강민이를 막둥이 아들로 생각하고 키웠습니다. 항상 강민이 손을 잡고 돌아다녀 동네 사람들이 '늦둥이를 봤느냐'고 했습니다. 아빠보다도 강민이와 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던 고모는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애가 철이 들면서 저랑 대화도 많이 했어요. 친목회 갈 때마다 제가 '강민이가 철 들어서 나랑 말동무를 해줘서 좋다'고 그렇게 자랑했는데. 가끔 집에서 혼자 강민이 대학 보내고 군대 보내면 난 어쩌나 이런 걱정을 했는데 강민이가 영영 가버렸어요."

고모 음식을 좋아했던 강민이를 위해 고모는 주말마다 강민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하필 강민이가 사고 나기 바로 전 주말엔 친목 모임이 있어 강민이를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강민이가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살 뺀다고 3개월간 운동하면서 잘 안 먹었거든요. 4월 들어서부터 제대로 먹기 시작했는데 맛있는 것도 못 줘서 제가 그게 너무 한스러워요."

고모는 강민이가 없는 매 순간이 괴롭습니다.

"출근할 땐 둘이 언제나 같이 나가서 511번 버스를 탔어요. 아이들이 학교 교복 입고 버스에서 서 있는 거 보면 다 강민이 같고…"

▲강민이가 수학여행에 가져갔던 고모가 싸준 물건들. 고모는 수건, 속옷들을 여러 번 빨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강민이가 등을 못 밀어주니 사우나도 못 가요"

고모네 가족은 올해 안산을 떠나 멀리 이사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모 꿈에 나타난 강민이 때문에 고모는 강민이네 집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했습니다.

"강민이가 꿈에 나와서 '고모, 우리 아빠 어떻게 하라고' 하면서 아빠한테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강민이가 자기 아빠 지켜주라고 하는데 어떻게 다른 데로 가요."

강민이는 평소 끔찍이도 아빠를 챙겼습니다. 치킨, 피자를 주문해 먹을 때 아빠가 없어도 아빠 몫을 꼭 남겨뒀습니다.

▲재작년 아빠 생일에 아빠와 강민이가 찍은 휴대폰 사진. ⓒ프레시안(서어리)
"재작년 제 생일에 제가 야간 근무여서 아침에 자고 있는데 이 자식이 케이크를 사 와서 막 저를 깨우더라고요. '아빠 생일파티 해야지' 하고요. 부스스 일어나서 파티하고 사진 찍었죠."


181센티미터의 거구였던 강민이는 아빠 표현에 따르면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놈'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가 강민이 방으로 가서 강민이 옷 벗기고 고추 만지고 '배방구'도 하면서 깨웠어요. 그리고 제가 뽀뽀하면 강민이도 뽀뽀해주고 그랬어요. 아빠 장난을 잘 받아줬어요."

아빠에게 강민이는 그냥 아들이 아닌 인생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아빠는 강민이와 같이 사우나를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나 강민이 간 후로는 등 밀어줄 사람이 없어 가지 못 하고 있습니다.

"회사 친구들이 저를 엄청 부러워했어요. 제가 '딸 둘 있으면 뭐하냐. 등 밀어줄 사람 하나 없지 않으냐'고 놀렸는데, 이제 그런 얘기도 못 해요."

지난해 업무에 복귀한 아빠는 직장에서도 강민이 생각에 울컥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초반에는 일하다가 화장실 가서 울고 나오고, 지금도 일하면서도 휴대폰으로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사진을 봐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계속 강민이 옛날 사진 보고요. 아빠가 잘 못 해줘서 미안하다. 엄마 아빠 때문에 네가 고생했구나. 이런 생각 많이 하죠."

'엄마 아빠한테 가자' 잠수부 얘기에 뭍으로 나온 강민이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던 덕분인지, 강민이는 5월 8일 어버이날에 엄마 아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사고 23일 만이었습니다.

"5월 5일이 강민이 엄마 생일이라 엄마가 팽목항 등대 가서 '강민아 엄마 생일인 줄 알지'라고 리본에 써서 묶어놨는데도 그날 안 나와서 '자식이 의리 없다'고 욕했거든요. 그러고 다시 8일에 가서도 '카네이션 달아주라'고 리본에 썼더니 그제야 나오더라고요."

▲강민이와 아빠의 '카카오톡' 대화 창. '통신 안 잡히니까 이따가 전화할게요'가 강민이의 마지막 말이었다. '알쌈'이라는 아빠의 답장에도 강민이는 답이 없다. 아빠는 사고 이후 '사랑하는 아들아 낼 꼭 아빠하고 껴안고 뽀뽀하자. 사랑해'라고 보냈다. ⓒ프레시안(서어리)
강민이가 물 밖으로 나올 때 아빠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 있습니다. 강민이는 물 속에서 친구 근영이와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둘을 떼어놓으려 해도 떨어지지 않아 잠수부가 '엄마 아빠한테 가자' 하니 그때서야 서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강민이가 먼저 뭍으로 올라오고, 근영이도 강민이 바로 뒤를 따랐습니다.

"그 얘기 듣고 전 웃었어요. 아 우리 강민이는 그럴 만 하다고요. 친구들을 워낙 좋아했으니까요."

강민이는 친구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강민이 성격이 원체 서글서글한 편이기도 하지만, 강민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 된 건, 아빠, 고모 덕도 큽니다. 강민이가 친구들과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면 아빠도 일 마치고 찾아가 강민이 친구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야식도 든든하게 사준 건 물론이고, 종종 친구들 용돈을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고모는 항상 집에 놀러 오는 강민이 친구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강민이네 집은 '배고프고 갈 데 없으면 오는 집'이었대요. 토요일은 그냥 모텔이었어요. 대여섯 놈이 날마다 와서 냉장고를 털다시피 했어요. 김치 맛있다고 옥상에서 맨날 삼겹살에 김치 구워먹고. 나중엔 눈치가 보였는지 먹을 걸 알아서 사오더라고요."

"아들 옷 다 해질 때까지 입을 거예요"

친구들이 하도 자주 와 집이 지저분해지는 통에 고모는 강민이 방에 헌이불만 놨습니다. 강민이에게 새 이불 한 번 주지 못한 게 속상해 고모는 최근 강민이방에 새 이불을 사다 뒀습니다.

"강민이 나오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짐도 올라왔어요. 제가 양말, 수건, 팬티 세 개씩 챙겨줬던 게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거 세 번씩 빨아다가 보관해놨어요. 마이만 안 나왔는데, 마이는 새로 하나 맞춰줬어요."

남들은 '뒤늦게 무슨 소용이냐'고 하지만, 그게 부모 마음, 고모 마음입니다. 빨리 물건을 태워 보내라는 주변 이야기를 따라 강민이 물건을 거의 태우고 난 뒤라, 강민이 물건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다 태우고 몇 개 남겨둔 강민이 검은색 점퍼를 매일매일 입고 다닙니다.

"이 옷 다 해질 때까지, 죽을 때까지 강민이 생각하면서 입을 거예요."


▲강민이가 생전 입던 점퍼를 착용하고 강민이 방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강민이 아빠와 고모. ⓒ프레시안(서어리)

▲강민이의 학교 책상.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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