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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점심 카레라이스 기다리던 소녀는 왜…"

[고잔동에서 온 편지 ②] 단원고 2학년 10반 이단비 학생 이야기

이제는 종영된 SBS <심장이 뛴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단비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입니다. 단비 엄마 전영옥 씨는 "연예인들이 소방관 복장 하고 나오는 프로"라고 기억합니다. 지난해 4월 15일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단비는 배 안에서도 친구들과 이 프로그램을 볼 거라고 말했습니다.

단비의 꿈은 응급구조사였습니다.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죠. 의사도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뛴다>를 좋아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단비라는 이름은 큰엄마가 지었다고 합니다. 단비는 사촌들과도 잘 지냈지요. 하지만 이제, 단비 엄마는 친척들과 만나는 자리가 부담스럽습니다. 지난해 추석은 집에서 보냈습니다. 이번 설에는 당일 새벽에 내려가서 금방 올라왔습니다. "할머니가 우실 것 같아서 미리 못 갔다"고 단비 엄마는 이야기합니다.

▲ 지난해 초에 찍은 이단비 학생 사진. 주민등록증에 넣을 목적으로 찍었다. 하단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청이 발급한 '명예 주민등록증'이 있다. ⓒ프레시안(성현석)
단비는 조용하면서도 밝은 소녀였습니다. 씩 웃는 미소가 늘 입에 걸려 있었죠.

40분 정도 걸리는 등굣길을 친구와 걸어 다녔습니다. 그 친구도 단비와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지던 1997년에 태어나, 고교 2학년까지 자라는 동안 단비가 크게 속을 썩인 기억은 없다고 합니다. 병치레가 유난했던 것도 아니고요. 음식 투정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뭘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도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게 있으면 돈을 달라고 하는 식이었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노스페이스' 자켓을 사달라고 한 적은 있다는 군요. 하긴, 그때는 그게 중·고등학생 교복이었죠.

"그래도 자라면서 한번쯤은 단비가 크게 말썽을 부린 적이 있지 않았을까요?"

기자가 던진 질문에, 단비 엄마는 씩 웃고는 말문을 엽니다. 아마 단비도 저렇게 웃었겠지요. 단비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아빠는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자고 왔다 네요. 그게 가장 큰 말썽이었다고 합니다. 사춘기의 절정인 '중2', 단비는 그렇게 조용히 넘겼습니다. 아, 남자 친구도 사귀었죠. 중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인데, 고등학교에 가서 일 년쯤 사귀었습니다. 남자 친구 이야기,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 모두 엄마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가수 '케이윌'과 '휘성'을 좋아했다 네요.

▲ 단비의 어린 시절이 담긴 낡은 사진.ⓒ프레시안(성현석)
"큰 애가 어릴 때는 형편이 어려워서요." 단비는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에 많이 다니지 못했습니다. 단비가 참사 얼마 전까지 다니던 학원은 얼마 전에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원생들 가운데 여럿이 세월호 희생자였습니다.

단비 아빠는 직장이 멉니다. 새벽 여섯 시에는 집을 나서야 제때 도착합니다. 밤 열한 시께 집에 돌아옵니다.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서, 전에는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 지냈습니다. 주말에만 집에 있었고요. 단비 아빠는 원래 술을 잘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주 반병은 마셔야 잠이 듭니다. 아빠가 자꾸 핼쑥해지는 게 엄마는 걱정스럽습니다. 모두, 지난 1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단비네 집을 찾아갔던 지난 6일, 방 안에선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습니다. 종편 방송인데, 뉴스 자막이 계속 지나갔습니다.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는 심경이 어떨까', 차마 물을 수 없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흘끔 거리는 기자에게 단비 엄마가 먼저 말합니다.

"이젠 뉴스에 많이 안 나오니까요. (제 입장에선) 세월호가 잊히는 게 힘들지만, (다른) 시민 입장에서는 자꾸 그 뉴스가 나오면 힘들겠죠."

"단비도 속이 깊은 아이였을 것 같아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단비가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엄마는 단비의 방을 청소했습니다. 아이가 방을 비운 틈에, 그간 묵은 먼지를 털어내려 했던 거지요. 쓰레기통도 비우고, 옷을 빨았습니다. "빨래하지 말 걸." 단비의 숨결이 닿았던 옷을 세탁한 게, 엄마는 후회스럽습니다. 그날 이후 단비의 방은 계속 비어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단비의 방에는 급식 식단표가 붙어 있습니다. 4월 16일부터 사흘간은 볼펜으로 가위표를 쳐 두었습니다. 단비가 그랬다고 합니다. 수학여행 기간에는 급식을 못 먹는다는 뜻이지요. 이 또래 아이들에게 급식 식단은 최대 관심사입니다. 빨간 색으로 밑줄을 쳐둔 날도 있네요. 4월 21일, '카레라이스' '파인애플' '순대국' '비엔나 케찹 볶음'. 다음 날은 '소불고기'와 '비빔라면'에 빨간 밑줄이 쳐져 있습니다. 단비가 기다렸던 음식인 모양입니다. 빨간 밑줄이 참 많습니다.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어요"라던 엄마 말이 맞나 봅니다.

월요일 점심 '카레라이스'를 기다리던 이 소녀는 왜 방에 돌아올 수 없었던 걸까요?

▲단원고 2학년 10반, 이단비 학생의 책상. ⓒ프레시안(최형락)

▲ 단비의 유품. 다른 유품들은 아직 바다에 잠겨 있다. ⓒ프레시안(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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