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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행 배에서 뭐 할지 상상하던 아들이…"

[고잔동에서 온 편지<6>] 단원고 2학년7반 이수빈 학생 이야기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 아이. 엄마는 집안 장손인 수빈이가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 엄마의 걱정이 머쓱할 정도로 아무 탈 없이 쑥쑥 성장한 수빈이는 해마다 학교에서 체육 과목 상장을 쓸어모았습니다. 고1 체육대회 계주에서는 '역전의 용사'가 될 정도로 잘 달렸고, 축구부에서도 알아주는 명 플레이어였습니다.

"중학교 때는, 어린 게 벌써부터 배에 왕(王)자를 새기고 싶다면서 킥복싱 학원도 다녔어요. 삼 개월 정도 됐었나, 학원 다녀와서 윗옷을 훌렁 벗더니 '엄마 나 왕자 만들었다' 하면서 보여주더라고요."

멋지게 자라나던 아들 모습이 생각났는지,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커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빈이가 어렸을 적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들. ⓒ프레시안(서어리)
▲수빈이의 '단원FC' 유니폼. ⓒ프레시안(서어리)

"수빈이 이름으로 된 통장, 어떻게 해지해요"


수빈이는 7반 반장입니다. 수빈이는 공부도 참 잘 했습니다. 체육이 부전공이었다면, 주전공은 수학이었습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수빈이는 수학 공부하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새벽 네 시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풀던 아이였습니다. 계산 머리가 좋은 수빈이는 회계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빨리 학교 졸업해서 회계사 사무실 다니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렇게 빨리 회사 다니고 싶어?' 하고 물어보니, 저한테 뭐 갖고 싶냐고 되묻더라고요. 제가 채소 심게 땅 사고 싶다고 했더니, '돈 벌면 엄마한테 땅 사줄게' 하더라고요."

'계산 왕' 수빈이에게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은 '짜수'였습니다. 좀 짠돌이였던 터라, 짜다의 '짜', 수빈이의 '수'를 붙여 '짜수'가 된 겁니다.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매점 가서 뭐 사 먹는 게 이해가 안 됐대요. 수빈이는 군것질 할 돈을 안 쓰고 다 통장에 모아뒀어요. 세뱃돈도 다 통장에 넣어놓고, 꼭 만 원씩만 빼서 썼어요."

수빈이 칫솔 하나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수빈이 이름으로 된 통장도 해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에서는 사망신고하기 전에 해지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시간 날 때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못 가겠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없애요…."

▲수빈이 통장. ⓒ프레시안(서어리)
▲화장실 벽에 나란히 꽂힌 네 식구의 칫솔. 엄마는 수빈이 칫솔을 아직 버리지 못한다. ⓒ프레시안(서어리)

"버스 떠나던 날, 1반부터 10반 애들 다 봤었는데…"

많은 아이들이 이젠 영영 제주도를 볼 수 없게 됐지만, 수빈이는 제주도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수빈이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가면 공부만 할 거라며 '올해까지만 가족여행 가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때 네 식구가 다녀온 곳이 바로 제주도입니다. 그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 줄, 엄마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나눠준 수학여행 안내문을 보니, 코스가 우리가 다녀온 데랑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수빈이가 '에이, 똑같은 데인데 가야 하나' 이러더라고요. 그래도 워낙 친구들 좋아하니까 간 거였거든요."

2년 전 가족여행과 다른 점은 친구들과 간다는 것, 그리고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빈이가 수학여행 가기 얼마 전에 TV에 나오는 여행 쇼프로그램을 봤어요. 제주도 편이었는데, 배를 타고 가더라고요. 거기서 폭죽 터뜨리고 그런 걸 보더니, 배에서 친구들이랑 뭐 할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더라고요."

사고 하루 전날인 4월 15일, 엄마는 인천항으로 가는 수빈이와 친구들을 학교 운동장에서 배웅했습니다.

"다른 반 대표 엄마들이랑 애들 빵이나 음료수 해줄까 했는데, 학교에서 그건 안 된다고 해서, 그럼 배웅이나 해주자 해서 버스 떠날 때 손 흔들어줬거든요. 1반서 10반까지 아이들 얼굴을 다 봤어요. 그 장면이 정말 생생해요.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수빈이가 친구들한테 받은 친구들 증명 사진. ⓒ프레시안(서어리)

수빈이는 사고 보름만인 5월 1일, 214번째로 나왔습니다. 이즈음부터는 시신 손상이 더러 있던 터라, 부모님이 직접 시신 확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으로만 옷 몇 개 보고 수빈인 것 같아서 아빠를 보냈는데, 아빠가 아니라고 터덜터덜 걸어오더라고요. 그런데 다음날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수빈이가 나왔다고요. 수빈이 이름이 워낙 많으니까, 7반 이수빈 맞느냐고 다시 물어봤어요. 아빠가 제대로 확인을 했으면 빨리 올라올 수 있었는데, 야속해서 아빠한테 막 화를 냈죠."

나중에 보니 팔에 박힌 점, 축구를 해서 발톱이 빠진 발가락 모두 수빈이 신체 특징이었습니다. '지금 안 보면 난 미칠 것 같다'며 엄마는 국과수 직원을 조르고 졸랐습니다. 후들거리는 몸을 추스르고 검안실에 들어가 본 수빈이는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같이 간 제주도 가족 여행. ⓒ프레시안(서어리)


새 옷보다 형 옷을 더 좋아한 동생 수현이

수빈이에게는 세 살 터울의 남동생 수현이가 있습니다. 언제나 형처럼 되고 싶다며, 형을 롤모델로 삼았던 착하고 귀여운 동생입니다.

"수현이는 형아 양말이랑 팬티까지 다 입어요. 제가 새 옷을 사줘도 수현이는 수빈이 옷을 달래요. 보통 애들은 형 옷 안 입고 새 옷 입는다고 하는데요. 그 정도로 형을 좋아했어요."

수현이는 안산 시내 곳곳에 걸린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현수막들을 싫어합니다. 누가, 무엇을 기억할 거냐고 묻습니다. '어차피 형아 생각하는 사람은 엄마랑 아빠랑 나뿐'이라고 합니다. 엄마는 그래서 수현이에게 '수빈&수현' 글씨를 새긴 반지를 맞춰줬습니다.

"반지 주면서 '나중에 엄마 아빠 없어도 너는 형아를 기억해야 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화를 내더라고요.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런 얘기 왜 하느냐고요."

수현이는 '형아'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다른 세상에 있는 거라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엄마 아빠를 다독입니다.

"가끔 보면 수현이가 침대에 파묻혀 있더라고요. 뭐하냐고 물어보면 '오늘따라 형아가 보고 싶다'고 가끔 그렇게 한마디씩 내뱉어요. 엄마랑 아빠가 워낙 형을 그리워하니까 표현을 못 할 뿐이지, 저도 얼마나 형이 보고 싶겠어요."

엄마 아빠가 보름간 진도에서 형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수현이는 안산에 홀로 남았습니다.

"수현이는 진도에 오고 싶어 했는데 오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 아빠들 다 정신없고, 사복경찰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눈에 담게 하기 싫었어요. 형 있던 데 하도 가고 싶다고 하길래, 그럼 올해 5월 1일에 다녀오자고 했어요."

▲수빈이 동생 수현이가 수빈이 납골당 방명록에 쓴 편지. ⓒ프레시안(서어리)

"새벽마다 소리 지른 애 아빠 이해해주는 주민들 덕에 버텨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는 방식은 한가족이라도 제각각입니다. '형아는 다른 세상에 있을 뿐'이라며 담담히 스스로를 달래는 게 동생 수현이의 방식이라면, 삼보일배, 서명운동, 간담회 참석 등 각종 세월호 현장에 나서는 것이 엄마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슬픔을 쓸어내리는 방법은 울고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나고 몇 달간 동네 창피해서 나가질 못했어요. 애 아빠가 밤마다 새벽마다 베란다 문 열고 하도 소리 지르면서 우는 통에…. 특히나 술이 좀만 들어가면 늘 그랬어요. 그러면 당신한테도 안 좋고, 수현이한테도 보기 안 좋다고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말린다고 되나요, 그게. 그래서 많이 싸웠죠."

한없이 울며불며 슬픔을 토해내던 아빠는 지난 겨울부터 차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르고 민폐를 끼쳤는데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시더라고요. 다 저희 마음 아시는 거겠죠. 정말 너무 고맙더라고요. 이렇게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나마 힘이 되고 버틸 수 있어요."


▲수빈이의 교실 책상. ⓒ프레시안(서어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삼보일배를 했던 수빈이 엄마(왼쪽).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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