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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1년 김구 "일제 시대만 못하다니…"
[해방일기] 1946년 11월 23일
1945년 11월 23일에 있었던 일로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김구 등 임시정부 제1진이 귀국한 것이고, 또 하나는 당시 최대 신문이던 <매일신보>가 미군정에게 정간당했다가 두 주일 만에 <서울신문>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이 곡절을 겪고도 <서울신문&
김기협 역사학자
2011.11.23 10:22:00
'경찰 개혁'은 엄두도 못 낸 美軍
[해방일기] 1946년 11월 21일
10월 23일에 첫 회의를 가진 조미공동 소요대책위원회(조미공위)는 임시로 만들어진 비공식 기구였다. (11월 2일자 일기) 좌우합작위원회(합작위)의 제안을 미군정이 받아들여 만든 것이었다. 미군은 진주 이래 조선 남반부의 통치권을 쥐고 있었다. 어떤 통치자든 효과적인
2011.11.21 08:16:00
소련의 성공, 미국 대사도 인정했다!
[해방일기] 1946년 11월 18일
연합국배상위원회의 미국 대사 에드윈 폴리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제출한 일본 배상 문제 보고서를 11월 17일 국무성이 공개했다. 기술적인 내용이라서 읽기에 딱딱하지만 신문에 보도된 폴리 대사의 건의 내용을 옮겨놓는다. 일본 제국의 청산 백서라 할 수 있는 이 보고서가
2011.11.18 08:23:00
북한 '흑백함' 투표의 비밀
[해방일기] 1946년 11월 16일
한국민주당이 11월 15일 기자단 회견에서 발표한 담화문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북조선에서 거행된 선거 상황을 보면 공산 계열의 각 단체 대표로 조직된 선거 위원들이 도 혹은 군과는 인연이 먼 사람을 입후보자로 인정하고 선거 전에 청년 부녀 학생들을 총동원하여 입후
2011.11.16 08:52:00
'반미좌경' 美 기자가 본 이북의 모습
[해방일기] 1946년 11월 14일
이 작업을 시작할 때는 38선 남북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한길사 펴냄)이 나올 때보다는 이북 지역에 관한 자료도 연구 성과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혀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2011.11.14 08:20:00
사기꾼과 현실주의자를 구분하는 방법
[해방일기] 1946년 11월 11일
며칠 전 일기 제목에 김규식을 '현실주의자'라고 했다. 이것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많다. 해방 공간의 중간파 정치인을 다룬 이재명의 <한국 현대사의 비극>(선인 펴냄)에는 김규식을 다룬 장에 "한 온건 지식인의 실패한 이상주의"란 제목을 붙여 김
2011.11.11 08:29:00
이승만, 美 사령관 하지와 맞서다!
[해방일기] 1946년 11월 9일
11월 7일에 군정청 공보부에서 진짜로 특별한 '특별 발표'가 있었다. 조선 주둔 미군 사령관 하지와 소련군 사령관 치스챠코프 사이에 오간 편지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양 측의 입장이 접근되어 미소공위 재개가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담은 발표였다. <자유신문&g
2011.11.09 10:26:00
현실주의자 김규식의 등장
[해방일기] 1946년 11월 7일
수도경찰청은 11월 6일에 두 개의 조치를 내놓았다. 수도경찰청에서는 경찰관의 강기 일신과 직권 남용을 적발하고자 6일부터 수도청 내에 불심 검문 제도를 창설하였다. 즉, 이것은 10반으로 편성되어 경찰서 내에서나 서외에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경찰관 전부에 대
2011.11.07 08:14:00
억압하는 민족, 박해받는 민족
[해방일기] 1946년 11월 4일
해방 후 조선,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에도 치안 불안과 물자 부족 등 어려운 문제들이 쌓여 있었다. 불안과 불만에 휩싸인 사회에서는 민족 간의 갈등이 격화되기 쉽다. 어려움을 타 민족에게 전가하려는 경향, 타 민족의 박해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경향이 일어
2011.11.04 08:13:00
잠깐 혼쭐이 난 조병옥과 장택상
[해방일기] 1946년 11월 2일
10월 16일 결성된 각 정당 시국대책간담회에는 남로당준비위 쪽 좌익과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제외한 주요 정당들이 모두 참가했다. (한국독립당(한독당)은 며칠 후부터 참가했다.) 대구에서 시작된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시국'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화
2011.11.02 10: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