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4일 05시 02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北이 살해한 '탐정' 양근환의 정체는?
[해방일기] 1946년 12월 16일
최능진의 파면 이후 그와 조병옥-장택상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 대한 제3자의 개입은 보도된 것이 거의 없다. 조병옥-장택상을 옹호하는 측과 규탄하는 측이 이미 명확하게 갈라져 있어서 굳이 의사 표시의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례적으로 혁신탐정사라는 조
김기협 역사학자
2011.12.16 10:11:00
선진국이 된 독일 vs 후진국이 된 한국
[해방일기] 1946년 12월 14일
1943년 11월 창설된 운라(United Nations Relief and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의 전후 활동을 1946년 8월 22일자 일기에 소개했다. 그 이름의 "United Nations"는 '국제연합'이 아니라 전쟁 중의 '연합국'을 가리킨 것이다. 연합국의 전쟁 피해 회복
2011.12.14 10:43:00
쪼개지는 한나라당, 이미 예고된 일!
[해방일기] 1946년 12월 12일
입법의원 민선 당선자 3인(조소앙, 문도배, 김시탁)과 관선 임명자 5인(조완구, 엄항섭, 여운형, 장건상, 홍명희)의 취임 거부를 12월 7일자 일기에서 이야기했는데, 12월 10일에 또 한 사람이 관선 의원 취임을 거부했다. 인민당의 염정권이다.
2011.12.12 10:34:00
이승만이 김구를 압도한 비결은?
[해방일기] 1946년 12월 9일
12월 4일 서울을 떠난 이승만은 이튿날 맥아더를 만난 뒤 미국으로 떠났다. 정병준은 하지가 굿펠로에게 보낸 편지(1947년 1월 28일)를 근거로 이승만과 맥아더의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맥아더는 시간이 없다며 이승만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지만, 이승만은 동경에서 하루
2011.12.09 10:06:00
입법의원 구성의 우여곡절
[해방일기] 1946년 12월 7일
입법의원 관선 의원 명단이 12월 7일 오전 발표되고 12월 12일 개원 예정이 알려졌다. 미군정 당국자들은 지난 6월 "입법 기관"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11월 초 개원을 목표로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10월 중 전국적 소요 사태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강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2011.12.07 11:49:00
미국통 최능진, 결국 총살당한 까닭은?
[해방일기] 1946년 12월 5일
조미공동 소요대책위원회(조미공위)의 활동에 관한 하지의 성명서가 12월 5일에 나온 것은 11월 2일자 일기에서 소개한 바 있다. 조미공위를 지지하는 내용이지만, 바로 그 전날 경무부 수사국장 최능진이 파면된 일로 보아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생각도 붙여 썼다. 조미공
2011.12.05 08:13:00
고구마·비스킷 낼름! 이런 서울 시장도 있었다!
[해방일기] 1946년 12월 2일
12월 1일부로 철도 운임이 두 배로 인상되었다. 1킬로미터당 3등 여객 운임이 40전이 되어 부산까지 182원, 목포까지 172원이 되었다. 5월 1일에 종전 운임의 두 배로 인상되었던 것이 7개월 만에 다시 두 배로 인상된 것이다(<서울신문> 1946년 11월 27일자).
2011.12.02 08:32:00
"백범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해방일기] 1946년 11월 30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엊그제(11월 28일) 정판사 사건 판결이 나왔습니다. 검찰의 구형대로 이관술, 박낙종, 송언필, 김창선의 네 사람에게 무기징역, 그 밖의 6인에게 15년 또는 10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범죄 사실에 대해서도 의혹이 많지만, 검찰과 법원이 주장하는 사실 그대로라 하더
2011.11.30 07:56:00
이승만의 진실, 타의 추종을 불허한 '돈 욕심'
[해방일기] 1946년 11월 28일
1945년 10월 17일, 이승만 입국 이튿날 하지는 기자 회견장에 이승만을 앞세우고 수행하듯 따라 들어왔고 이승만을 헤드테이블 중앙에 앉혔다. 며칠 후(10월 20일) 연합군 환영회에서는 이승만을 "조선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로 소개하고 이승만의 연설 동안 부동자세로 시립
2011.11.28 08:10:00
立地를 잃어버린 여운형과 백남운
[해방일기] 1946년 11월 25일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결당 대회가 11월 23~24일 양일에 걸쳐 관훈동 시천교당에서 열렸다. 첫날 발표된 "합당 경과 보고"는 지난 8월 이래 3당 합당 과정의 곡절에 대한 남로당의 공식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제 국내 모든 정세는 민주 세력의 단결을 무조건적으로 요
2011.11.25 14:4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