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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성공, 미국 대사도 인정했다!

[해방일기] 1946년 11월 18일

1946년 11월 18일

연합국배상위원회의 미국 대사 에드윈 폴리(Edwin Pauley, 1903~1981년. 당시 조선의 신문에는 '포레'란 이름으로 표기되었다)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제출한 일본 배상 문제 보고서를 11월 17일 국무성이 공개했다. 기술적인 내용이라서 읽기에 딱딱하지만 신문에 보도된 폴리 대사의 건의 내용을 옮겨놓는다. 일본 제국의 청산 백서라 할 수 있는 이 보고서가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정세 변화에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1. 일본의 전 군수 물자 제조 공장과 전 입조 고무 알루미늄 마그네슘 공장을 완전히 철거할 것.
2. 전기·철·강철·철광·합금·광물·공작구·철도기재·상선을 공급하는 공장의 대부분을 철거할 것.
3. 수공업·고무가공·채금·기타 일본 경제 재건에 필요한 수 종 경공업을 포함한 일부 공업은 배상 요구로부터 제외할 것.
4. 수직물·인조직유·팔프·목면·지류공업의 처분은 장차로 결정할 것.
5. 전 일본 지배하에 있었던 제국 내의 일본 공업 자산을 이동하지 않을 것. 이러한 자산은 소재국에 남겨두고 그의 가격을 이들 국가의 배상 요구에 가산할 것. 미국은 이전에 피정복 영토를 착취하기 위하여 사용된 일본 내의 여하한 공장과 시설을 이들 영토에게 유리하게 이전할 수 있는가를 결정할 것이다.
6. 미국은 일본 국민이 합리적 경제를 재건하고 모든 국가와 평화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7. 이하 4종의 배상에는 반대한다.
가. 노동 배상
나. 현하 생산에서의 배상
다. 현재 물자 스톡에서의 배상
라. 일본 상사의 주식에서의 배상
8. 군사 당국이 파괴 또는 해체할 수 있는 공장은 완전 철거의 범위에서 제외할 것.

배상을 조속히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余와 余의 동료가 조사한 결과 방치와 포장의 곤란으로 일본 내의 대량의 물자가 파멸되어 가고 있다. (<서울신문> 1946년 11월 19일자)

폴리는 석유 사업가로서 민주당 재정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트루먼과의 각별한 친분을 발판으로 1941년에 유럽 지원 정책 렌드-리스(Lend-Lease)의 석유 담당관으로 임명되었고, 트루먼 취임 후 배상위원회 대사로 임명받았다.

폴리의 건의 내용을 보면 제1-2항에서 군수산업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중공업 부문을 일본에서 없애려는 방침을 알아볼 수 있다. 제3-4항을 보면 소비재와 경공업 부문만 살려주려는 뜻이다. 제5항은 조선의 일본인 재산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12월 1일자 <경향신문>에는 일본에 남겨둘 선박 톤수와 부문별 공장 규모까지 밝힌 <일본 배상 청서> 내용이 보도되었다. (☞바로 보기)

폴리의 보고 중 더 재미있는 내용도 있다. <동아일보>에는 11월 24~26일 두 차례에 걸쳐 <뉴욕 헤럴드 트리뷴> 기사를 옮겨 실었는데, 당시 조선 사정에 대한 폴리의 시각이 담겨 있다.

"구라파에서 미소 양 진영의 대변자들이 서로 야단을 하고 있는 판에 이곳 극동 한 모퉁이에서는 두 개의 정치 경제 계열 사이에 맹렬한 시합이 진행되고 있다. 구라파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피폐한 수천만 민족이 언론, 선거, 기업의 자유를 내포하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채택할는지 그렇지 않으면 이와 전연 다른 민주주의적 견해를 견지하는 공산주의로 나아갈는지가 문제이다.

사상의 대상이 극동에서 가장 선명하게 들어나고 있는 곳은 조선일 것이다. 여기서 전개되는 사상전이야말로 미국이 전 아세아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결정하는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소련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소련식 방법이 인민의 최대 행복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직면한 환경은 공산주의를 시작하는 데 유리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전쟁 전까지 조선의 근대적 경제 기구의 97퍼센트가 왜정의 손에서 운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전부 인민위원회로 이책되었으니 공산주의의 실천은 탁상공론만이 아니었다.

(…) 이 배상 계획은 다행히 채택되었었다. 금년 5월에 대통령의 지령을 받아서 기술진과 함께 조선과 만주를 시찰하여 일본의 과잉 생산 시설을 어찌하면 가장 적절하게 이곳으로 이관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였다.

만주에서 발견한 것은 소련군 철퇴 전에 감행된 공업 시설의 대량 이전과 파괴였다. 이곳 공업 발달은 적어도 한 세대 이상 후퇴된 감이 있었다.

소련 점령하의 북조선은 이와 반대로 하등 약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여기서는 공업을 회복시키는 데 소련이 무척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많은 공장은 소군 감독 하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노동자 손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그중 약간은 완전조업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경제는 충분한 발전을 아니 배상의 완전한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 미소 양역(兩域)으로 분단된 38선을 볼진대 일목요연하다. 남북의 자재로운 물자 교류가 허락된다면 배상으로서 이전되는 생산 시설에 자극을 받아서 조선 경제의 건전한 발달을 기대하여도 좋을 것이다.

원수의 이 장벽을 철폐하도록 余는 동맹국인 소련을 설복하려 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초지를 굽히지 않았다. 한 일은 결단코 해야만 하니까.

그동안 우리는 북조선에서 소련 친구들이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소련의 인생관을 북조선 인민들이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 우리들의 인생관을 남조선 민중이 용납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다.

소련식 인민위원회의 손으로 거대한 토지 개혁이 수행되고 있다. 이곳 공업 시설을 조직 운용하기 위하여서는 제일급의 기술자가 소련으로부터 파견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북조선인들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주 정권의 형태를 정비하고 있다.

우리들의 인생관이 세계 인류에게 최대 행복을 준다는 것을 확신할진대 우리들은 감연히 그 시합에 응하여야만 할 것이다. 余는 소련 국민에 대하여 모든 우호감에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합법적이며 평화적인 수단 방법으로써 소련이 그 지지자를 획득한다는 것은 소련이 가진 천부의 권리인 동시에 우리도 또한 동일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소련이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소련을 설복하여 철폐할 수 없는 38선 장벽이라면 차라리 우리 구역 내에서 미국 민주주의만이 전후 세계의 다난(多難)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야만 한다. 조선에 필요한 생산 시설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배상의 형식으로써 일본으로부터 이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의 공업을 부여하며 확장하기 위하여 위능(爲能)한 기술자와 행정인을 파견하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설교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하여 우리들의 사상을 가르치자.

이리하여 연합국이 보장한 조선인의 자유스러운 선거권 행사의 시기가 온다면 그들은 병립해 온 두 가지 사상 계열을 신중 음미할 것이다. 조선인이 자주적으로 채택할 사상이야 말로 조선인에게 가장 많은 안전과 행복과 자유를 부여할 것이다."

대통령의 친구로서 민주당 전당 대회 의장까지 맡은 거물 정치인인 만큼 책임 회피에 급급한 군정 담당자들과는 얘기를 꺼내는 틀이 다르다. 폴리 대사의 정치사상을 구체적으로 살피지는 못했지만, 민주당 실력자로 활약한 이 석유 사업가의 경력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 인물의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받아온 반공 교육 내용과 다른 점 몇 가지를 주의해서 살펴야겠다. 해방 조선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소련이 조선에서는 산업 시설 약탈을 하지 않고 산업의 유지와 발전을 효과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다는 사실. 덕분에 이북 지역에서는 실업 문제도 해결되고 자주 정권의 형태도 정비되고 있었다는 사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국은 미국 나름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써서 소련과 공정한 경쟁을 벌이자는 것이 폴리의 주장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일본 산업 시설을 배상 형태로 들여오고 기술자와 행정가를 파견해서 경제 번영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행간을 살펴보면 폴리는 미군정이 소련군에 비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그 이유가 합법적이고 평화적이지 못한 방법을 쓰는 것, 그리고 기술자와 행정가를 충분히 파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종속 관계에나 마찬가지로 남한의 미국에 대한 종속에는 채찍과 당근의 두 측면이 있었다. 남한 내지 조선 전체의 미국에 대한 종속을 바란다는 점에서는 폴리도 맥아더와 차이가 없었다. 차이는 당근을 중시하느냐, 채찍을 중시하느냐에 있었다. 완만한 경쟁을 통해 자발적 종속을 유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폴리는 국제주의 전통을 보여준다. 일본의 산업 부활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 것도 물론 국제주의 입장이다.

일본의 전쟁 배상은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을 통해 1951~1952년간에 확정되었다. 폴리 대사가 작성했던 청산 백서에 비해 일본에게 매우 관대한 조건으로 낙착되어 경제 대국으로서 부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국 외의 연합국이 가진 불만을 미국이 대신 나서서 충족시켜 주기까지 했다.

1946년 말까지 미국의 공식 정책은 폴리 보고서에 나타난 것처럼 소련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일본을 죽이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뒤집힌 것이다. 그 사이에 냉전이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인용한 신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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