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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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악들을 베어버리는 칼'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5장 폭군의 몰락 <26>
사위가 캄캄해지면서 바람은 그치었지만 이따금 눈송이가 나붓나붓 내리었다. 낮처럼 눈발이 거세게 흩뿌릴 기미는 아니었다. 초설은 방문 밖에 서서 갖바치와 조광조가 나누는 얘기를 엿듣곤 했다. 그러한 그녀의 머리와 어깨에 눈송이가 점점이 얹혀졌다가 스러지곤 했다.
정찬주 소설가
이 패악의 시대에 순리를 따라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5장 폭군의 몰락 <25>
갖바치가 사는 마을은 낙산 산자락을 따라 초가들이 꼬막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십 여 호가 될까 말까 했다. 거친 눈발이 멈춘 탓인지 눈에 덮인 초가들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였고, 홑바지를 입은 아이들은 동네 어귀에서 눈싸움을 하고 있
"무엇이 영화로우며 무엇이 슬픈가?"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5장 폭군의 몰락 <24>
남산을 내려온 조광조와 김식은 평평한 길에서 말을 탔다가 눈길이 미끄러웠으므로 다시 말에서 내려 걸었다. 남산을 오르내린 탓으로 허기가 졌으나 몇 잔 들이킨 술기운의 힘으로 흥인문(興仁門) 쪽을 향해 갔다. 함박눈은 세설로 변해 떡가루를 흩뿌리듯 내리고 있었다.
'목숨과 바꾸어도 좋을 그 무엇'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5장 폭군의 몰락 <23>
연산주가 백성들에게 주자가례를 비웃듯 3년상을 금지시켰지만 조광조는 부친을 용인의 심곡리에 안장한 후, 상례에 따라 묘소 밑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첨사(僉使; 종3품 무관) 이윤형(李允泂)의 딸인 한산 이씨를 맞아 결혼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남편 조광조
폭군 밑에 빌붙어 연명하는 기생충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5장 폭군의 몰락 <22>
하늘의 도22 하늘의 道<22> 제 5장 폭군의 몰락 우의정 허침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입궐하지 않았다. 성종 때 세자인 연산군을 가르쳤던 시강관을 지낸 인연으로 승승장구하여 우의정까지 올랐으나 늘 명치끝에 무엇이 들어앉은 듯 편치 못한 그였다. 어제는
도학의 강은 어디로 흘러가나?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4장 소인배의 나라 <21>
김굉필이 사약을 받고 사사 당했다는 소식은 곧 능주 땅에도 전해졌다. 먹고 살기 힘든 양인들은 관심이 없었지만 능주의 향교 교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특히 정여해의 제자들은 스승의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굉필과 정여해는 한 스승 밑의 문인이자 도
"큰 비를 만나도 밖이 젖을 뿐"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4장 소인배의 나라 <20>
하늘의 도20 하늘의 道<20> 제 4장 소인배의 나라 최충성이 서울 소식에 밝은 것은 그곳이 원래 선대로부터 살았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리산 산자락의 끄트머리쯤인 남원 땅에 일찍이 내려와 전라도 사람처럼 사는 것은 하늘에 순종하는 농사일이 성정에 맞
증오의 불길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4장 소인배의 나라 <19>
연산주의 두 눈에는 증오의 불길이 타올랐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복수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연산주는 정전의 마루바닥을 쿵쿵 소리 내어 밟고 다니면서 내시의 우두머리인 종 2품의 상선 김처선(金處善)을 불렀다. "처선이 있느냐. 어서 활을 가져오너라." 여닫이문
죽음에 이르러서도 말을 고치지 않는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4장 소인배의 나라 <18>
하늘의 도18 하늘의 道<18> 제 4장 소인배의 나라 연산주 10년(1504) 3월 20일. 정여창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지 소인배들의 득세를 걱정하며 이날부터 곡기를 끊었다. 한 알의 곡식과 한 모금의 물마저 입에 넣기를 거부했다. 도학자로 살아온 자신을 단 한순
주검 같은 밤을 지키는 이름 없는 수많은 별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3장 天道가 무너진 땅 <17>
하늘의 도17 하늘의 道<17> 제 3장 天道가 무너진 땅 정여해는 중풍 기운이 심해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잠시 눈을 붙였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깐 동안 스쳐간 낮꿈에서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들이 해망산 아래로 내려와 정여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