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0일 0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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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알고 보면 혁명을 선동하는 책!
[프레시안 books] 신정근의 <동양 고전이 뭐길래?>
동양 고전은-정확히는 중국 고전이지만-콘텐츠의 보고(寶庫)다. 누천년에 걸쳐 수많은 영웅호걸과 재사들이 명멸해 갔으니 이들의 언행과 사상에선 그야말로 언제 어느 때라도 활용하고 응용할 거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문제는 나름 가치를 인정할 만한 고전이 너무 많고, 전공자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 들춰보더라도 문자를 읽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그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대한제국, 차라리 잘 망했다?!
[김성희의 '뒤적뒤적'] 윤효정의 <대한제국아 망해라>
중고교 시절 국사를 배울 때 궁금했던 것이 있다. 일제의 대한제국 합병 과정이 납득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500년을 이어온 나라가 제대로 된 전쟁 한 번 벌이지 못하고 시나브로 먹혔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도 답답하고, 어쩌면 분했던 듯싶다. 그래서 개항 이후 한국 역사에 관한 책은 어쩐지 애잔해 피하게 되었다. 소설 삼국지를 수차례 읽으면서도 제갈
건강을 위해 하루 우유 세 컵? 상식의 배신!
[김성희의 '뒤적뒤적']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솔직히 제목에 솔깃했다. 우리가 왜 동물들을 차별(?)하는지 문화심리학이나 인류학의 측면에서 조명한 것으로 기대했다. 매일 밤 요크셔테리어를 끼고 자면서 보신탕을 먹는 심리가 스스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보신탕을 스스로 찾아 먹지는 않지만 지인들과 어울리면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로 손대기는 하는 정도다. 그렇긴 하지만 보신탕을 비난하는 행위 자체는 동의
콩가루 집안, 아비 죽음 앞에서 쇼쇼쇼!
[김성희의 '뒤적뒤적'] 조너선 트로퍼의 <당신 없는 일주일>
"목적을 가지고 책을 펴고 이익을 얻고 책을 덮으라."어릴 적 집에 굴러다니던 나무필통에 새겨져 있던 구절이다. 누가 어디서 한 이야기인지 모르나 대체로 맞는 말이라 여겨진다. 왜 읽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그 속도나 역점을 두고 접하는 부분, 시각이 달라져 같은 책에서도 얻는 게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조금 거슬리긴 한다. 실용적 독서를 부추기
"정치인은 '이기주의의 화신'"! 거짓말이라고?
[김성희의 '뒤적뒤적'] 메스키타·스미스의 <독재자의 핸드북>
"정치란 정치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일." "정치의 주체는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하는 데 급급한 개인들."미국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두 명이 함께 쓴, 정치학이 아니라 정치에 관한 독재자의 핸드북(브루스 브에노 데 메스키타·알라스테어 스미스 지음, 이미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마음에 쏙 와 닿은 구절이다. 이건 공소한 정치학 교과서에서 볼
진실만 말하는 정치인, 투표함 여니 '깜짝'!
[김성희의 '뒤적뒤적'] 위르겐 슈미더의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일어 선생님의 별명은 '독일 병정'이었다. 어조나 표정 변화도 거의 없고, 쉴 틈 없이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바람에 몇몇 우등생을 제외하고는 독일어 수업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선지 독일하면 효율적이지만 딱딱하고, 엄격하다는 이미지가 얼른 떠오른다. 재미보다는 지적 탐구에 치우친 듯한 독일 문학도 이런 고정관념에 힘을 보탰다.요즘
'김어준빠'와 '강용석빠'의 불편한 공통점은?
[김성희의 '뒤적뒤적'] 캐스 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지난해부터 출판계엔 '가까 붐'이 일었다. 음, 이건 어떤 정치적 의도를 담은 비아냥이 아니다. '~가' '~까'로 끝나는 제목이 쏟아지는 현상을 두고 붙여본 이름일 따름이다. 추측컨대 인문서로는 아주 드물게 대박을 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탓으로 보이는데 편집자들의 상상력이 아쉬운 대목이긴 하다.어쨌거나 이런 유
옛 선비의 선견지명 "닭보다 못한 정당!"
[김성희의 '뒤적뒤적'] 강명관의 <성호, 세상을 논하다>
책을 읽다 보면 스스로도 '이걸 왜 읽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골랐다는 이유로 재미가 없는데도 의무감에 꾸역꾸역 읽을 경우가 특히 그렇다. 부와 명예를 얻는 데 '전혀'라고 할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책을 읽는 행위가 부질없이 느껴지기 때문이다.이럴 때면 딜레탕트, 곧 '예술이나 학문을 직업으로 하지 않고 취미 삼아 하는 사람'을 자
환경 운동, 그 불편한 진실
[김성희의 '뒤적뒤적'] 막사이너·미에르쉬의 <오해와 오류의 환경 신화>
출판 시장에도 음모론이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실없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기득권이나 체제를 비판하는, 썩 잘 쓰인 책이 절판된 것을 볼 때면 '어떤 거대 세력-이건 권력이나 금력만 뜻하는 건 아니다-이 책의 판매를 막은 것 아냐'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이를 테면 이냐시오 라모네의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원윤수·박성창 옮김, 민
전두환에겐 '짱돌' 던지면 OK, 얘랑은 어떻게 싸워?
[김성희의 '뒤적뒤적'] 유재인의 <위풍당당 개청춘>
어느 도서평론가가 글에서 스스로를 일러 '매문가(賣文家)'라 한 적이 있다. 어감이 썩 좋진 않지만 글 파는 사람이란 이야기다. 물론 흔히 연상케 되는 곡학아세(曲學阿世) 유의, 소신을 바꿔 시류에 영합하는 지식인이란 뜻은 아닐 터다. 원고료가 주 수입원인 프리랜서의 처지를 재미있게 표현한 뜻으로 이해한다.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칭하는 '가(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