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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만 말하는 정치인, 투표함 여니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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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만 말하는 정치인, 투표함 여니 '깜짝'!

[김성희의 '뒤적뒤적'] 위르겐 슈미더의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고등학교 1학년 때 독일어 선생님의 별명은 '독일 병정'이었다. 어조나 표정 변화도 거의 없고, 쉴 틈 없이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바람에 몇몇 우등생을 제외하고는 독일어 수업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선지 독일하면 효율적이지만 딱딱하고, 엄격하다는 이미지가 얼른 떠오른다. 재미보다는 지적 탐구에 치우친 듯한 독일 문학도 이런 고정관념에 힘을 보탰다.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독일 작가의 책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빈스 에버르트 지음, 조경수 옮김, 이순 펴냄)나 <간은 할 일이 많을수록 커진다>(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지음, 박인숙 옮김, 은행나무 펴냄) 같은 책이 그런 예다. 물리학을 전공한 경영 컨설턴트이자 과학 유머 공연을 하는 카바레티스트(<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나 의사이자 코미디언(<간은 할 일이 많을수록 커진다>)이 유머에 지식을 녹여냈는데 알차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제목을 보면 언뜻 사회학이나 심리학 책인가 싶은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장혜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신문 기자가 40일 동안 거짓말을 않고 살아보기로 결심한 뒤 겪은 일을 정리한 에세이집인데 인생 자체가 소재라는 점이 위의 책들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위르겐 슈미더 지음, 장혜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시작은 신문사 편집회의였다. 한 주 동안 TV 보지 않기에서 전기 없이 살아보기, 현금과 신용카드 없이 살아보기 등 다양한 기획 기사 아이디어 중 지은이가 이를 선택한 것이다. 어떤 사람도 거짓말을 않고는 살 수 없으니 코미디 쇼보다 황당한 아이디어라고 회의에서 묵살당한 것을 지은이가 파고 든 것이다.

지은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 4.8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 아, 물론 여기엔 "좋은 아침"이라든가 "오늘 차림이 멋진데" "언제 밥 한 번 먹자" 등 마음에 없는, 인사치레도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는 극단적인 솔직함을 실천하자는 '래디컬 어니스티(radical honesty)'라는 운동도 있단다. 네 살 이상의 인간은 100퍼센트가 거짓말을 해본 경험이 있으며, 그런데도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반면 인간관계에서 정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0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어쨌든 40일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거짓말을 않기로 한 지은이의 모험이 순탄할 리 없다. 죽마고우의 연인에게 그의 여성 편력을 알려줬다가 얻어터지기도 하고, 세금 신고를 솔직하게 하는 바람에 추가 납세를 하게 되어 아내의 눈총을 사기도 한다. 편집 회의에선 자신을 깔보는 동료에게 "병신!"이라 큰 소리치고, 포커 판에서는 자신의 패가 무엇인지 일일이 알려준다.

상황 자체만으로도 우스꽝스럽지만 지은이의 시니컬한 문체가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머니는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모토에 따라 사신다. 물론 내 존재의 지난 29년은 '예수라면 어떤 짓을 하지 않았을까'에 따라 산 삶이었다. 그 결과는 부모님 얼굴에 쓰인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을까'라는 표정이었다."

이런 대목도 있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오래오래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결혼 서약은 기대 수명이 서른 살이었고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이 고작 15년을 넘지 않았을 때 도입된 규칙이다. 독일에선 무기 징역형을 선고받은 죄수들도 적지 않은 숫자가 15년만 지나면 석방되지 않는가"라고.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웃고 넘길 이야기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지은이가 문학과 철학, 영화를 넘나들며 사유를 전개한 덕에 오히려 생각해 볼 대목이 수두룩하다.

"농담은 세 번째로 좋은 위장입니다. 두 번째로 좋은 것은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가장 좋고 확실한 위장은 적나라한 진실인 겁니다."

이건 막스 프리슈의 소설에서 인용한 것인데 지은이가 "개나 물어갈 아이디어"인 포커 판에서도 진실만 말하기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은 진리다. 지은이는 자기 패를 다 이야기하고도 상대편이 긴가 민가 하는 바람에 판이 끝날 때까지 아주 조금밖에 잃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포커 판에서 정직하겠다는 건 선거 판에서 정직하겠다는 것보다 더 한심한 짓"이란다. 이걸 보고 '선진국이니 뭐니 해도 정치판, 정치인은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란 위안을 얻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끌벅적한 우리 정치판에서도 욕망과 포부가 뒤섞이고, 꿈과 망상이 어우러진 온갖 화려한 수사가 오가고 목청들이 갈수록 높아질 터다. 바로 이런 전략을 실천하는 것이지 싶다.

이런 게 위인들의 지혜를 빌린 것이라면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도 있다. 지은이는 또 편집국에서 완벽하게 편견을 버리고 동료의 기사를 평가하여 그들에게 말해주기로 결심하고 동료들의 기사를 분류한다. 그 결과 자신이 정직한 게 아니라 불공정한 인간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 좋게 평가하던 동료들의 기사가 '잘 쓴 기사'에 몰려 있고, 개인적 친분이 없는 동료의 글은 나쁜 기사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이 "엉덩이의 곡선과 능력을 동일시했던" 여기자를 찾아가 "매력과 능력을 헷갈렸던 예전 같으면 좋다고 했을 그의 기사가 끔찍했다"고 이야기해준다. 결과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지은이는 40일간의 프로젝트를 비교적 무난하게 보낸다. 적어도 책에 따르면 그렇다. 주위 사람들에게 싸가지 없는 인간이니 왕재수니 하는 말을 듣기 했지만 이혼을 당하지도, 직장에서 쫓겨나지도, 치명적인 상해를 입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지은이는 "정직은 이럴까 저럴까 하는 생각이 아니다. 정직은 용기와 배려를 요한다. 정직은 기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기술이란 게 '래디컬 어니스티'를 창시한 브래든 블랜튼의 조언이지 싶다. 블랜튼은 지은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짓말 하는 건 괜찮다며 "당신이 겁내고 있다고, 그래서 정직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사람들한테 말하세요. 진실을 말하면 어떻게 될지 결과가 두렵다고"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기자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기사를 위해 이런저런 사실들에 화려한 포장지를 두르는", 사실을 전한다는 핑계로 사실 만날 뻥만 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자괴하는 지은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 아닐까.

유쾌하면서도 남다른 통찰력을 담은-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적어도 내 소감은 그렇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시인 에른스트 하우슈카의 인용문이다. 그가 그랬다. "진실을 듣고 싶어 하는 자에겐 과연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물어보아야 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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