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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에겐 '짱돌' 던지면 OK, 얘랑은 어떻게 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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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에겐 '짱돌' 던지면 OK, 얘랑은 어떻게 싸워?

[김성희의 '뒤적뒤적'] 유재인의 <위풍당당 개청춘>

어느 도서평론가가 글에서 스스로를 일러 '매문가(賣文家)'라 한 적이 있다. 어감이 썩 좋진 않지만 글 파는 사람이란 이야기다. 물론 흔히 연상케 되는 곡학아세(曲學阿世) 유의, 소신을 바꿔 시류에 영합하는 지식인이란 뜻은 아닐 터다. 원고료가 주 수입원인 프리랜서의 처지를 재미있게 표현한 뜻으로 이해한다.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칭하는 '가(家)'를 자처하는 것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때로는 저울질하는 글을 쓰는 것이 주업이기 때문이다.

매문을 위해선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부지런한 책 읽기'만으론 충분치 않다. 변기에 앉아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활자 중독' 증세를 보인다 해도 그렇다.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경제학이든, 과학이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소화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온갖 책의 가치를 재단하는 것이 지난함을 지나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나와바리'를 갖는 것보다 범용성이 쓸모가 많기에 손닿는 대로 읽고, 쓴다.(그런 점에선 필자의 글을 읽는 이들에겐 늘 미안함을 느낀다.)

이렇게 '시장'을 의식한 수동적 책 읽기가 주류를 이루지만 그 와중에 개인적 취향 혹은 수준에 맞는 '행복한 독서'가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때 언론사 입사를 꿈꾸다가 공사(公社)에 입사한 사회 초년병이 쓴 이 책이 바로 그렇다. 기성 세대에 관한 통렬한 야유로도 읽히고, 번뜩이는 삶의 통찰로도 읽히는 이 책은 우습고, 아프면서 기특하다.

무릇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 의무감에서 또는 일삼아 책을 읽기란 오래 할 일도 아니거니와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 재미란 것이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는 슬라보예 지젝이나 들뢰즈의 책에서 얻기도 하고 누구는 추리 소설에서 얻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책의 으뜸 덕목은 재미라고 믿는다. 그래야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고, 교훈도 세상을 보는 눈도 그런 뒤에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너끈히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시니컬하면서도 천연덕스러운 문체에 담아낸 것이,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홍은택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덕분이다.

"팀장님은 휴가다. 부장님은 오전 내내 뒤에서 새로 구입하신 핸드폰으로 영화 감상 중이다. 차장님은 학부모 회의 좀 다녀오겠다며 일찌거니 나가셨다. 뒷자리 위원님은 원래 자리에 거의 안 계신다. 어디서 낮술을 드시고 계실지도 모른다. 제기랄, 어른들이란…"

▲ <위풍당당 개청춘>(유재인 지음, 이순 펴냄). ⓒ이순
지은이는 이런 회사 사무실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꿈꾼다. 졸리고 지루한 회의 시간에 '팀 강아지가 과년한데 이제 시집을 보내도 될 것인가'를 안건으로 상정할 수도 있고, 간부 회의에서 모욕을 당하고 온 팀장이 노조에서 경고 받을 걱정 없이 자유롭게 욕하며 화풀이를 할 수 있고, 자신은 개를 챙겨주면서 근무 평점이 올라갈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런 지은이에게도 백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졸업 후에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장수생'이기도 했다. '농구공-배구공-야구공-퍽-테니스공-셔틀콕 중에서 빠른 순서대로 논하라'는 식의 알거나 모르거나 사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통점밖에 없는 '상식' 문제들을 공부하던 시절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아무 것도 될 게 없어 '누구의 여자친구'라도 되고 싶었던 시절. 사회는 완전히 자유를 주는 척 하지만 막상 선택권은 제한되어 있어 일종의 취업 비슷하게 안락한 생계보장형 남자친구를 사귀던 시절을 고백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애초 목표와 다르다고 해도, 그렇게 특별하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삶은 내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깃대를 잡은 방향과는 어긋나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사에 취업을 한다. 그리고 "내가 받고 싶은 걸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눠주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찌질한' 연애를 접는다.

그렇게 하고 들어간 직장. 지은이는 깨닫는다. 조직의 일원이 된다 함은 자기가 가진 시간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서 회사에 바쳐야 한다는 뜻이라는 걸. 시간뿐만이 아니라 의지와 목소리, 감정까지도 조직을 위해 써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 것에 동의해야 하고 이해가지 않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원치 않는 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도.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의미 없는 발표를 하고, 업체 간에 있지도 않은 우정을 장담하고, 술기운을 빌려 텅 빈 이야기를 나누고, '갑질'을 하던 원청 회사 과장님에게 하청 회사의 '을 처지' 부장님이 기껏 하는 센 소리가 "그동안 수고했어"란 반말조 치하에 그치는 사회 혹은 회사. 원치 않는 노조 집행부 일원이 되어 비정규직 권익 옹호 문제를 제기했다가 면박을 당하고, 맑은 고딕체와 휴먼 명조체 중에서 맑은 고딕체를 선택하고, 지난주 매출액에서 이번 주 매출액을 빼는 큰 의사 결정을 하는 말단 행정직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지은이에 따르면 오늘날 20대들이 대의에 시들해진 건 선악 구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386세대의 말투를 빌리면 "노동자 착취 구조는 견고해졌지만 범인은 없다"는 식이란다.(그는 여기서 '이명박? 이명박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를 좀 과대평가하는 것'이라 비꼰다.) 적이 모호해졌으니 분노를 배우는 건 어렵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자신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범인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무능하여 이 회사에 들어온 자신? 아니면 경쟁하지 않으면 도태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전두환에게는 짱돌을 던지면 되지만 신자유주의랑은 어떻게 싸워야 되는지 묻는다.

출판계에선 '청춘'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아부인지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를 내용을 담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몇몇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한데 정작 청춘의 육성을 담은 책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청춘의 고단함은 사회 구조 아니면 기성세대 탓이라고 해서 개인의 책임은 도외시하거나,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며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과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식이다. 분노하거나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청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 아닐까. 자신은 이런저런 어려움을 딛고 이만큼 성공했다고 자랑하거나, 자신은 쏙 뺀 다른 모든 기성세대-도대체 이건 몇 살부터인지 모르겠다-의 잘못으로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고민, 그들의 생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은 귀한 대접을 받아도 좋다. 설사 이 책 역시 어쨌든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의 배부른 소리라 할지라도, 시간이 흘러 헌책방에 틀어박힐지언정 고전 대접은 절대 못 받을지라도 그렇다. 젊은이가 그린 우리 시대 생생한 자화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직장 초년병을 비롯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어른'들이 읽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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