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법무부가 오는 5월까지 21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 가운데 우리 정부와 인력교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국가 노동자에 한해 '자진 귀국 프로그램 등 일시적 귀국 조치를 통한 합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확정할 경우 총 17만 명 가량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실상의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
지난 20일부터 재발방지 대책마련,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등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 7층에서 농성 중이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30여 명은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이 이날 농성장을 직접 찾아 법무부 차원의 대책 마련계획에 대해 설명함에 따라 이날 저녁 농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편 국제 사면위원회(엠네스티) 사무총장은 29일 매우 이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직접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법무부, 17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방안 검토 중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관계자에 따르면, 법무부는 현재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안을 적절한 수준에서 수용하는 방안을 오는 5월까지 마련하기 위해 검토 중이다. 외노협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참사 이후 △재발방지 대책 마련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등을 요구해 왔다.
법무부가 고심 중인 대책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외국인보호소의 실태조사를 함으로써 심각한 인권침해로 지적돼 온 보호소 운영의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이 첫째다.
또 법무부는 이주노동자의 전면 합법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전체 20만8000여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우리 정부와 MOU를 체결한 국가의 노동자에 한해 자진귀국 프로그램을 통한 합법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시 귀국 후 고용허가제를 통한 재입국을 허용하겠다는 것. 이 대책이 시행될 경우 해당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6만9000여 명 수준이다.
이같은 고민의 일환으로 법무부의 출입국관리국장도 이날 낮 한국기독교회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아 법무부 차원의 대책을 설명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단속과 강제추방에 앞장서 왔던 법무부 관계자가 이들의 농성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아이린칸 엠네스티 사무총장 "한국 정부, 외국인보호소 근본 대책 마련하라"
정부가 이처럼 기존의 입장에서 다소 완화된 대책을 고심 중인 것은 여수참사 이후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우리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은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부스타만테 특별보고관이 여수 참사와 관련해 "이 사건은 한국이 국제 기준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29일(런던 현지시간 28일)에는 아이린칸 국제 엠네스티 사무총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외국인 보호시설의 문제점에 대해 재차 지적하고 철저한 조사와 합당한 배상을 요구했다.
아이린칸 사무총장은 이 서한에서 "여수참사 소식에 비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며 "여수 외국인 보호소는 이미 지난 2005년 2월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는 등 열악한 안전상태에 있음에도 한국 정부가 화재발생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국제엠네스티는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아이린칸 사무총장은 이어 "당국이 보호소 경비를 충분히 교육하지 않아 보호소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은 이들을 제 때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며 "더욱이 모든 사망자가 연기 흡입으로 인해 사망한 점에도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보호소 바닥이 불에 탈 때 유독가스를 내뿜은 우레탄으로 깔려 있었던 점, 살수장치(스프링쿨러)가 설치되지 않은 점 등 보호소의 시설이 대한민국의 소방법에도 위배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묵인 혹은 방조해 참사를 더 키웠다는 것.
그는 피해자들 중 일부가 현재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고 청주에 위치한 또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거나 강제출국된 점에 대해서도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공개서한을 통해 한국정부에게 직접적으로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적절한 배상 △철저한 조사 △보호소에 대한 법적인 정기 검토 △화재 예방 방침을 비롯한 긴급안전방침 절차 마련 등을 촉구했다.
"엠네스티가 2006년 이미 우려 표명한 바 있는데…"
그는 "국제엠네스티는 이미 지난 2005년과 2006년에 한국에 조사관을 파견해 외국인보호소를 조사하고 2006년 8월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는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시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엠네스티가 이미 우려를 표명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는 또 "한국 정부는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UN 기준 원칙' 및 '감금이나 투옥에 관해 어떤 형태에서든 모든 이들에게 적용돼야 하는 보호 규칙'과 같은 국제법과 기준에 따라 보호소 상황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김성호 법무부 장관에게도 서한을 보낼 예정"이라고 덧붙였으며 고용허가제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엠네스티 한국지부는 이 사무총장의 서한과 관련해 "이번 참사는 단순 화재사건이 아니라 한국정부의 미비한 외국인력정책과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안일한 처우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고사하고 참사와 관련한 의문투성이의 조사결과와 미온적인 책임자처벌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농성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일단 농성은 정리
이처럼 국제 엠네스티를 비롯한 국제 단체들이 한국 정부에게 근본적인 정책 재고를 촉구하고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섬에 따라 외노협 관계자들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30여 명은 이날을 기점으로 농성을 정리하기로 했다.
외노협 관계자는 "법무부 관계자가 이날 농성장을 찾아 이같은 내용에 대해 직접 설명하겠다고 알려 왔다"며 "전면 합법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지만 정부가 의지를 표명한 만큼 농성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농성은 일단 마무리하지만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전면 합법화를 이뤄내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책임자 처벌 및 법무부 장관 퇴진, 임금 체불 등 이주노동자 권리 구제 제도 확립 등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을 비롯한 국내 인사 583명과 17개 해외 단체, 해외 인사 54명의 연서가 공개됐다. 이들은 이 연서에서 "경찰은 이 초유의 참사를 축소, 은폐하기에 바쁘고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간 사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의 필요로 들어왔을 뿐 한국 사회의 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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