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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부시 치하 구제금융, 더 많이 망가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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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부시 치하 구제금융, 더 많이 망가질 것"

[해외시각]"차기 美행정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 감당해야"

역시 지난달 29일 구제금융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미국 하원 의원들 중 상당수는 '어른'이 아니었다. 불과 나흘만에 사실상 거의 비슷한 법안을 놓고 다시 열린 3일(현지시간) 하원 표결에서 57명(민주당 32명, 공화당 25명)의 의원들이 반대에서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 결과 가결 정족수 250명을 훌쩍 넘긴 찬성 263 대 반대 171로 구제금융법안이 통과됐다. 지난번 하원 부결 사태는 '할리웃 액션'이었을 뿐이라는 의혹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다. 당시 워싱턴 정가에서는 반대표를 던진 일부 의원들은 11월 4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지역구 민심을 의식해 서민 편에 서서 고민하는 척한 것이며, 국가보다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시급한 법안 처리만 늦춘 것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게다가 이번 구제금융안 자체가 월스트리트의 신용 위기 해소책이라기보다는 금융업체들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지혈제'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0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구제금융안 초안을 처음 제시한 직후부터 '싹수가 노란 실행불가능한 법안'이라고 혹평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 방안이 하원을 통과하기 직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 방안이 하원을 통과하더라도 이후의 상황은 벼랑 끝'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해 주목된다.

다음은 'Edge of the Abyss'라는 이 글(원문보기)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이 의회에서 통과됐지만, 월가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로이터=뉴시스

3주 전인 지난달 초순까지만 해도 미국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태인 것은 분명해도 파탄지경은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했다.

또한 금융시스템은 경색되고 있지만, 전면적인 붕괴 상황은 아니며, 월스트리트의 혼란이 메인스트리트에 그렇게 큰 충격을 주고 있지 않다는 주장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난달 중순 이후 금융과 경제 관련 뉴스는 정말 끔찍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허약하고 혼란스러운 지도부와 함께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나쁜 소식들의 물결은 지난 9월14일부터 시작됐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를 파산시키고도 사태를 수습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은 틀렸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투자자들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었다. 금융시장은 한 번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수는 없는 늪으로 변하면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금융경색이 메인스트리트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도 늘어나고 있다. 이미 중소기업들은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히고 있다. 고용과 산업생산 지표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이전부터 미국의 경제가 지난해부터 위축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듯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얼마나 상황이 나쁜가? 웬만해서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전문가들이 종말론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을 정도다. 채권전문가이자 파워 블로거인 존 잰슨은 "현재의 금융 상황은 프랑스 혁명기의 공포 정치에 해당한다"고 말했고, 거시경제 전문가 조엘 프라켄은 "경제가 벼랑 끝에 걸려 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벼랑 끝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야 할 사람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스웨덴 방식 있건만..."

손질을 거듭한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기를 나도 바란다. 또 부결되면 패닉이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 말은 경제가 재무부의 실책으로 인해 볼모로 잡혔기 때문이라는 말과 같다.

이 법안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재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1년이 넘도록 심각한 문제에 시달려왔다. 따라서 시장 붕괴 상황에 대비한 치밀한 사전대응방안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폴슨의 이번 계획은 분명히 당황하며 급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도 재무부 관료들은 이 계획이 어떻게 작동 가능한 것인지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들 자신도 뭘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이라도 실시되지 않으면 시장의 패닉은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나도 이 방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책을 찾기 위해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시간이라도 있는 것일까?

1990년대 초 스웨덴 정부가 실시했던 방안, 즉 금융시스템을 부분적, 일시적으로 국유화하는 대책은 이번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훨씬 좋은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또한 부진한 소비지출과 고용을 자극할 경기부양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 대책은 감세 정책의 마술에 의존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돈을 지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재정이 바닥한 주와 지자체들이 최악의 순간에 지출을 줄이고 있는데, 이런 곳에 우선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가 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차기 행정부가 취임하기까지는 4개월 정도 남았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망가질 수 있고,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차기 행정부의 경제팀은 취임 첫날부터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및 경제 위기를 처리해 나갈 처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젠 주 정부들도 구제금융 요청 신세로 전락

크루그먼 교수의 진단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주 정부도 구제금융의 손길을 기다리는 신세로 속속 전락하고 있다. 10월 들어 캘리포니아 주에 이어 매사추세츠 주가 잇따라 연방정부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이들 주는 부족한 예산을 채권을 발행해 마련하려 해도 단기 채권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월가의 금융기관처럼 연방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미 전역에 걸쳐 캘리포니아와 매사추세츠 이외에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구제금융안은 '지혈제'로서도 즉효를 발휘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 스스로도 4일(현지시간)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행정부가 가능한 한 신속히 움직이겠지만 구제금융에 따른 혜택이 즉각 피부에 와 닿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부실 채권 매입을 위한 평가 작업에만 적어도 몇 주가 걸릴 것"이라면서 이번 방안이 신속한 신용 위기 해소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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