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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로 비싸게 사주기'가 금융위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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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로 비싸게 사주기'가 금융위기 대책?

[해외시각]크루그먼 "정부가 가공자산 떠안는 격"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대책의 마지막 수단이라는 자산정리공사(RTC) 설립을 추진한다는 내용까지 포함해 '종합선물세트식 안정대책' 을 발표하자 시장의 기대가 대단하다. 뉴욕증시는 지난 주말 18,19일 이틀 연속 급등세로 정부의 발표에 화답했다.

특히 RTC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라도 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인 부실자산을 제거하는 역할을 떠안는 기관으로서, 1980년대말 저축대부조합 (S&L)사태 당시 등장해 위기 확산을 진정시키는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미 RTC는 대선을 앞둔 의회의 동의가 있다고 해도 실제 설립과 운영은 새 정부의 몫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정치적인 부담이 큰 정책이기 때문이다.

RTC가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채택될 명분과 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거세다. 무엇보다 S&L 사태 당시는 예금자 보호법에 따라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으며, 부실자산도 손실의 확정이 가능한 채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RTC 설립과 운용에 반발이 적었다.
▲ 미국 정부가 사상 유례없는 금융위기 안정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과연 위기의 월스트리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로이터=뉴시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금융기관들의 탐욕스러운 투기행태에 따른 결과물인 부실자산을 납세자가 왜 떠안아야 하느냐에 대한 '모럴 해저드' 논란이 크다.

더 큰 문제는 현재 거품붕괴가 진행중인 주택가격과 맞물린 파생상품이 부실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RTC가 부실자산을 인수하려고 해도 '적정가격'을 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납세자의 돈으로 부실자산 비싸게 사주는 대책?

이런 논란에 대해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블로그에 올린 'No deal'이라는 글(원문보기)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RTC는 결코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밝혀 주목된다.

크루그먼 교수는 "납세자의 돈으로 부실자산을 훨씬 높은 가격에 사주지 않고도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한 지금까지 알려진 방식이라면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만일 '적정가격'이라는 것을 산출해 주택가격과 연결된 자산들을 정리하려고 한다면, 금융불안은 해소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역사적으로 금융시스템 구제방식은 FRB가 파산위기에 몰린 금융업체들을 인수하고 부채에 대한 보증을 한 뒤, 자산 처리에 나서는 것"이라면서 "S&L 사태 당시도 정부는 저축대부조합들을 인수하고, 예금자들을 보호한 뒤 RTC에 부실자산을 넘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재무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을 보면,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부실자산을 매입해 줌으로써 금융시스템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방식은 현재의 위기가 단지 유동성 문제이거나(그렇게 보기 어렵다), 현재의 시장가격보다 훨씬 더 비싸게 사줘야만 효과가 있다. 이것은 사실상 납세자의 돈을 금융시장에 퍼부어주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런 방식은 납세자에게 아무런 보상을 돌려주지 못하는 것으로, 공적자금이 시스템 안정을 위해 사용된다는 보장도 없이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돌아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나의 이런 지적이 틀렸기를 바라지만, 재무부는 대책을 밀어붙이기 전에 어떻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추가 구제금융 규모, 갈수록 늘어날 것'

나아가 크루그먼은 정부의 마구잡이식 공적자금 투입이 결국 파생상품이 만들어낸 거대한 가공자산을 그대로 떠안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 부실화된 파생상품은 자기자본의 수십배나 되는 빚을 져서 매입한 것들이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런 자산들은 이제 아무도 사려고 들지 않는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지급불능의 위기' 에 몰린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는 생애 최악의 위기라는 지적이 비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인수한 부실자산은 금융시스템이 일단 안정됐다고 해도 나중에 매각하기도 힘들다. 그 결과는 재정적자가 엄청나게 불어나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국가신용등급도 하향될 수 있다는 국제신용평가기관 고위관계자의 경고가 나왔고, 최고의 안전금융자산이라는 미국의 국채의 부도위험률은 독일의 국채보다도 크게 높아졌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0일자 보고서에서 10년 후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누적)는 5조3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예상치 3.6조 달러를 대폭 상향조정한 것이다.

이미 재무부는 당초 5000억 달러가 될 것이라는 추가 구제금융 비용을 7000억 달러로 늘리기 위해, 이미 국채 남발로 한도가 꽉찬 정부 부채 한도를 현행 10조6000억 달러에서 11조3000억 달러로 늘려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 등 학계의 권위자들은 추가 공적자금이 1조~2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결국 많은 나라들에게 막대한 국채를 발행한 '빚쟁이'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루비니 교수는 "미국은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해서든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에서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다른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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