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문가들이 폴슨이 발표한 구제금융안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책의 핵심은 자산정리공사(RTC)를 설립해 위기에 몰린 금융업체들의 부실자산을 매입해주는 것이다. 현재 월가(街)의 많은 금융업체들은 주택담보대출과 연결된 파생상품들이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부실화돼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지급불능 위기'에 빠져있다.
하지만 파생상품은 복잡한 설계로 인해 일단 부실화되면 정확한 가격 산정이 어려우며, 특히 시장의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는 아무도 사려들지 않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한다.
크루그먼 교수 "쓰레기에 돈을 퍼부어주는 것"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아예 이날짜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쓰레기에 돈을 퍼부어주는 것"이라며 이번 대책을 맹비난했다.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주지 않으면 금융업체들이 팔 이유도 없고, 정부가 매입해 줄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에서다.
너무 어이없는 정책이다보니, 이제는 폴슨 장관의 진짜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23일 'In bailout, economists see need for a penalty'라는 기사(원문보기)에서 폴슨 자신이 '월가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구제책에 대한 다양한 반응에는 전적으로 납세자의 부담인 백지수표를 폴슨 장관에게 준다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불편함이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IHT>는 "이번 대책에 대한 회의론에는 상당한 이유들이 있으며, 특히 폴슨 장관이 부실자산을 비싸게 주고 매입해 거대 금융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면서 "이런 회의적 시각은 누가 그 비용을 요청하는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폴슨 장관의 경력은 이번 금융위기 타개에 사령탑을 맡기에는 '원죄'가 많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세계 1위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CEO로 재임했던 2003년 35억 달러에 불과했던 골드만삭스의 파생금융상품 거래 세전 수익은 2005년 62억달러로 늘었다. 그 대가로 2006년 그가 회사에서 받은 각종 금전적 보상만 1640만달러에 달한다. 또한 지난 19일 종가 기준으로 5억2350만달러 상당의 골드만삭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하위권들은 파산과 합병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독립적인 투자은행으로 남는 것은 포기하는 대신 은행지주회사로 변신하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투자은행 산업의 종언'이라는 파국을 초래한 이번 금융위기 속에도 골드만삭스는 기업 구조 변경의 혜택을 받아 주가가 더 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폴슨, 파생상품 마구 팔아 성공한 월가 CEO 출신
또한 그는 2006년 7월부터 재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외면해 오늘날 사태를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진보성향의 워싱턴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공동소장 딘 베이커는 "현사태를 방기하고, 거의 모든 면에서 잘못한 사람의 손에 부시 행정부는 7000억 달러의 백지수표를 안겨주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런 요구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자들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엄청난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와 분노가 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폴슨의 진정한 의도는 시장의 안정이 아니라 주요 금융기관에 대한 퍼주기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매입해줄 부실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는 추세가 계속 되면서 이와 연동된 주택저당증권(MBS)와 이에 기초한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각종 파생상품이 부실자산으로 전락해, 많은 금융업체들이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지급불능의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파생상품은 금융업체와 시장의 신뢰가 상실된 상황에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쓰레기'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금융업체들이 부실자산을 처리하지 못하고 돈줄이 마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마에 겐이치 "7000억 달러는 농담 수준, 최소한 5조 달러는 필요"
도대체 적정가격이 산출될 수 있다면 이미 업체들이 알아서 시장에 팔았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매입해주려면 반드시 '프리미엄'을 얹어줘야 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마틴 베일리는 "금융업체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냥 보조금을 주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더욱 큰 문제는 과연 금융업체에 대한 퍼주기가 폴슨의 의도라면 7000억 달러라는 비용은 그저 국민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차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누리엘 루비니 교수 등 미국의 권위있는 학자들은 이미 7000억 달러로는 부족하고, 1조 ~2조 달러가 투입되어야 할 것이라는 추정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일본의 저명한 경제논객 오마에 겐이치는 전날 홍콩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미국 정부의 7000억달러 구제금융은 '농담'이나 마찬가지"라며 "부실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조달러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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