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이 23일 외환은행 매각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됐다.
이로써 지난 5개월 동안 각종 추측과 루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하게 된 경위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의혹 제기, 론스타가 거둘 차익에 대한 과세 문제 논란,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 간의 상호비방, 론스타의 교묘한 '가격 부풀리기' 전략에 대한 비난여론 등으로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외환은행 매각의 1단계가 일단락됐다.
다음의 2단계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국민은행이 실사팀을 외환은행에 파견해 현장실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론스타와 최종 가격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실사 및 가격협상 과정에서 국민은행과 론스타가 난항을 겪을 경우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양 측의 거래의지가 강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민은행이 2단계도 무사히 통과하면 남은 마지막 관문은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사전심사'를 통과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돌발 변수'로 남아있는 것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잃어 매각 자체가 무효화될 일말의 가능성이다. 2003년에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된 경위, 특히 매각 당시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경영진, 금융감독 당국자들이 모의해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외환은행'…국내선 부동의 '리딩뱅크', 국외선 세계 60위 '글로벌뱅크'**
국민은행은 외환은행과의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면 국내시장에서 부동의 '리딩뱅크' 자리를 굳히게 됨과 동시에 자산규모에서 세계 60권에 드는 '글로벌 뱅크'로 거듭나게 된다. 합병 후 자산규모는 198조 원에서 271조 원으로, 점포수는 1103개에서 1447개로, 임직원 수는 2만6273명에서 3만3531명으로 뛰어오른다.
이에 따라 올해 초부터 시장점유 확대를 위해 상호비방도 마다하지 않는 영업전쟁을 벌여 온 은행업계에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M&A가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현재로서는 '마켓 메이커'의 자리를 거머쥐게 된 국민은행이 시장을 주도하고 업계 2~4위인 신한-조흥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이 뒤를 쫓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국민은행의 강정원 행장은 국내시장에서 영업을 확대하는 것보다 외환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3일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됐다는 발표에 앞서 강 행장이 국민은행 사내방송을 통해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지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으로써 국민은행은 국내시장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뱅크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한편 이에 앞서 22일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자 미국 주가 내림세의 여파로 약세로 출발했던 주식시장은 잠시 반등세로 돌아서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국민은행의 주가는 장중 사상최고 수준인 7만8700원까지 급등했다가 종가로는 1.60% 하락한 7만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국민은행 '독과점 논란'의 장애물 잘 뛰어넘을까**
국민은행이 실제로 외환은행을 손에 넣으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여럿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큰 장애물은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이 시장에 독과점을 일으키는 불공정거래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논란이다.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을 합병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2005년 9월 말 기준으로 총자산은 22.%, 총수신은 25.2%, 총여신은 23.8%, 점포수는 21.2%, 영업수익은 25.2%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경쟁에서 밀려난 하나금융지주 등은 국민-외환은행의 시장점유율이 총자산 31.9%, 총수신 32.4%, 총여신 33.4%, 점포수 27.5%, 영업수익 35.8%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수치상의 차이가 나는 것은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농협, 수협, 수출입은행 등 5대 특수은행을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시장참가자'로 보고 계산에 넣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것이다.
한편 국민은행보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되기를 바랐던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외국환업무를 기준으로 한 시장점유율을 문제 삼고 있다. 현재 외환은행과 국민은행의 외국환업무 점유율은 각각 46.4%, 10.5%다. 따라서 양사가 합병될 경우 외국환업무 점유율이 50%를 넘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결합 사전심사'를 통해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M&A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게 된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점유율은 심사요건 중 하나일 뿐"이라며 "점유율뿐 아니라 다른 요건들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점유율 외에도 신규진입 여건, 기업결합에 따른 기업 및 산업 전체의 효율성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심사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어떻게 론스타의 마음을 훔쳤나**
국민은행이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하나금융지주와 DBS를 제치고 론스타에 의해 '간택'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국민은행과 론스타 둘 다 기업인수합병(M&A)의 관행인 비밀유지약정(CA)에 따라 구체적인 계약내용에 대해서는 발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는 갖가지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론스타가 국민은행이 제시한 '대금지급 방법'에 끌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은행, 하나금융지주, DBS가 론스타에 제시한 외환은행 인수대금은 모두 6조 원대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자체조달 자금이 많고 자금조달 구조가 단순해 인수자금을 가장 빠르게 조달할 수 있는 국민은행이 선택됐다는 것이다.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입한 경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감사원의 감사 등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론스타는 하루라도 빨리 외환은행을 매각하고 국외로 빠져나가야 하는 처지다. 따라서 DBS는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발목이 붙잡힐 가능성이 많아 경쟁에서 밀렸고, 하나금융지주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자금조달 구조를 제시해 탈락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지난 21일 금감위가 나서서 "DBS의 대주주 적격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국민은행의 독과점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발언으로 '교통정리'를 해줌으로써 론스타의 국민은행 선택을 촉진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그동안 "외환은행의 매각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음에도 막판에 은근히 국민은행을 밀어준 셈이다.
***론스타의 차익은 4조5천억 원…과세는 사실상 불가능**
한편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매각을 통해 거둘 수조 원의 차익에 대해 전혀 세금을 물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논란이 되고 있다.
23일 국민은행은 공시를 통해 외환은행 인수의향서에서 제시한 잠정 인수가격은 주당 1만5400원이라고 밝혔다. 이 가격에서 계약이 성사되면 지난 2003년 1조3800억 원을 들여 외환은행 지분 3억2585만1715주를 사들였던 론스타는 주식거래 차익만 3조6349억 원을 거두게 된다.
또 론스타는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 등의 지분 중 9090만 주에 대한 매수청구권(콜옵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예상되는 콜옵션 가격은 8500원 수준으로, 론스타가 이 콜옵션을 행사해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 등에서 지분을 사들인 다음 이를 국민은행에 1만5400원에 되팔면 5000억 원 이상의 추가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 인수 당시 1190원에 달했던 원/달러 환율이 현재 980원 대로 급락한 데 따른 환차익으로 약 2460억 원을 더 벌어들일 수 있다. 이를 종합하자면 론스타가 거둘 수 있는 총수익은 4조5000억 원에 달한다.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래 매달 평균 1000억 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에 따라 론스타가 주식양도를 통해 거둔 차익에 대해서만큼은 원천징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에 대한 과세가 가능하려면 최소 세 가지의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국제조세조정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돼야 하고, 이 개정안이 발효될 7월 1일까지 외환은행의 매각이 완료되지 않아야 하며, 외환은행의 법적인 대주주가 거주하고 있는 벨기에가 조세회피지역으로 지정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외환은행의 주인, 해외자본에서 국내자본으로…**
외환은행 인수전은 지난해 11월 1일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에 대한 '지분매각 제한'이 해제된 다음부터 본격화됐다.
지난해 11월 9일 하나은행의 김종열 행장이 외환은행의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고, 일주일 뒤인 16일 국민은행의 강정원 행장도 인수 의사를 내비쳤다. 인수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외국계 은행인 도이치방크, DBS, HSBC 등이 침묵을 지키면서 '국민-하나'의 2파전으로 판도가 굳는 듯했으나, 인수제안서 제출 마감일인 지난 3월 13일 DBS가 전격적으로 인수전 참여를 선언하면서 '국민-하나-DBS'의 3파전으로 재편됐다. 그러나 결국 승리의 여신은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써 지난 1967년 정부가 한국은행의 외환관리과를 독립시켜 외국환 전문은행으로 설립했던 한국외환은행이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외환은행은 지난 40년 동안 외환과 무역금융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지키며 최초의 온라인 보통예금 취급, 최초의 신용카드 업무, 수출입은행의 독립, 대북 금융업무 진출 등과 같은 숱한 기록을 남겨왔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최대주주가 한국은행에서 외국계 자본인 코메르츠방크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고, 그 후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넘어갔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국내자본인 국민은행의 수중에 떨어지게 됐지만 대신 '외환은행'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다만 외환은행 직원들은 국민은행이라는 새로운 주인 밑에서 그대로 직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23일 국민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공식 발표를 한 뒤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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