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가 국민은행, 하나금융지주,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중 어느 곳을 외환은행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택할지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고위 실무자가 DBS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적격성을 갖추었는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동시에 국민은행의 독과점 여부는 논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론스타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택하는 데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한 경위에 대해 검찰의 수사와 감사원의 감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론스타로서는 큰 차익을 남기면서도 금융당국에 뒷덜미를 잡히지 않는 '잡음 없는 거래'를 성사시켜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금감위 실무자 'DBS엔 문제 있고 국민은행엔 문제 없다"**
금융감독위원회의 박대동 감독정책1국장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DBS의 대주주 적격성 시비에 대해 "DBS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초과지분 취득을 위한 승인신청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공식적으로 검토할 문제"라면서도 "외환은행의 인수를 희망하고 있는 DBS의 경우 실무적 차원에서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DBS의 대주주(지분율 28%)인 테마섹은 국내법상 '비금융주력자'로 분류돼 있다. 향후 금융당국이 이런 사유를 들어 DBS를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떨어뜨리면 론스타는 다시 우선협상대상자를 물색하고 재협상해야 한다.
또 박대동 국장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예상되는 독점 논란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현행 공정거래법상 독점의 기준은 단독으로 시장점유율 50% 이상인데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을 인수해도 이와 같은 기준에 저촉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총자산 국내 1위(197조 원)인 국민은행이 자산규모가 73조 원에 이르는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이 40%에 육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독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DBS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할 자신 있다"**
DBS는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되기도 전에 금융당국이 '대주주 적격성'에 대해 시비를 걸고 나온 데 대해 내심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발언에 개의치 않고 외환은행의 인수를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21일 DBS의 방효진 한국대표는 금감위 실무자가 DBS의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 "금감위 실무진에서 나온 것으로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라며 "금감위에서 최종 판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으로, 비금융주력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자신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일 "DBS가 아니면 투쟁도 불사하겠다"며 DBS에 대한 강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던 외환은행 노조는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되기도 전에 금융당국 간부가 의견을 '슬쩍' 흘린 데 대해 거세게 반박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21일 성명서를 내어 "우선협상 대상자의 선정이 임박한 시기에 자신의 말대로 실무의견에 불과한 주장을 금감위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방법으로 표명한 것은 '국민은행 밀어주기' 의혹이 사실이 아니냐는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금융당국으로부터 사실상 '시장지배력의 확대를 문제 삼지 않겠다'라는 신호를 받은 데다 'DBS의 탈락 가능성'이라는 덤까지 얻은 국민은행은 금감위 실무자의 발언을 반색하면서도 '아직은 더 기다려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원래 DBS와 연합해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다 단독인수로 돌아섰던 하나금융지주는 말을 아끼고 있다. 업계는 DBS의 대주주인 테마섹이 하나금융의 지주이기도 한데다 국민은행의 독과점 논란이 해소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금감위 실무자의 발언이 하나금융에 그다지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나금융은 국민은행의 독점 논란과 관련된 금감위의 발언에 원론적인 수준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하나 2파전?…국민은행에 대세가 기울었다는 분석도**
업계는 'DBS의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고, 국민은행의 독점 논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금감위 실무자의 발언이 나오자 이를 DBS가 탈락한 것으로 해석하고 사실상 외환은행 인수전이 '국민은행-하나금융'의 2파전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하루라도 빨리 외환은행을 매각하고 국외로 빠져나가야 하는 론스타가 대주주 적격성 시비에 휘말린 DBS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DBS를 선택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논란으로 예민해진 금융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이번 금감위 실무자의 발언으로 외환은행 인수전이 국민은행에게 확실히 유리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높은 인수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DBS가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데다 금융당국이 국민은행의 약점인 독점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가 '금감위 관계자의 이번 발언은 사실상 국민은행을 밀어주는 행위'라고 보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금감위, 론스타가 빨리 손 털고 도망가게 도와주는 건가?**
일각에서는 하필 론스타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작업이 막바지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금감위가 이렇게 이례적으로 '강한' 신호를 '슬쩍' 흘려보낸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번 금감위 실무자의 발언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더 신속히 매각하고 국외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이제 론스타는 금융당국이 차후에 어떤 법적 결정을 내릴지 고민할 필요 없이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 중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한 쪽을 택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법적 시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에 따른 독과점 여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단할 사항인데도 금감위가 굳이 국민은행의 독점 논란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의 김병배 시장감시본부장은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다는 언급을 금감위에서 했다면 그것은 월권행위"라고 말했다.
심지어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금감위가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하는 데 공모했다는 의혹이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신속히 팔고 '손을 터는 것'이 금감위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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