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 임시 휴전이 이틀 연장되며 가자지구 주민들의 숨통이 며칠 더 트이게 됐다. 이번 연장은 최초 협상 타결 당시 이스라엘에서 이미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장기 휴전에 대한 초석으로 읽기는 어렵지만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한 상황에서 전투 재개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 만큼 미국의 입장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27일(현지시각) 휴전 협정을 중재한 카타르 외무부 마제드 빈 모하메드 알안사리 대변인은 28일 오전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가자지구에서의 나흘간의 휴전이 기존과 동일한 조건으로 2일 연장됐다고 밝혔다. 이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언론 브리핑에서 인도주의적 교전 중지가 이스라엘 시각으로 30일 오전까지 연장됐으며 이 기간 여성 및 어린이 인질 20명이 추가로 석방될 예정이라고 확인했다. 커비 조정관은 이번 연장 뒤에도 "인질이 모두 풀려날 때까지" 교전 중지가 추가로 연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8~9명 가량의 미국인이 여전히 인질로 붙잡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4일간의 휴전 기간 중 풀려난 미국인 인질은 4살 어린이 1명 뿐이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총리실이 28일 석방될 인질 명단을 전달 받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휴전 최초 협상 타결 당시 추가 석방 인질 10명당 하루의 휴전 기간이 더해질 것이라고 밝혀 연장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휴전 4일째인 27일 하마스는 3살 어린이 2명을 포함한 이스라엘인 인질 11명을 돌려 보냈고 이스라엘은 미성년자 30명과 여성 3명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수감자 33명을 석방했다. 4일간 하마스는 이중 국적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인 인질 51명 등 총 69명의 인질을 석방했고 이스라엘은 150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해 인질 석방과 관련한 당초의 합의가 이행됐다. 석방된 이스라엘인 인질의 수가 합의보다 1명 많은 것은 하마스 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노력에 대한 응답"이라며 러시아와 이스라엘 이중 국적자 남성 1명을 별도로 석방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침공 중인 러시아는 가자지구에선 휴전을 주장해 왔다.
지난달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주로 민간인인 1200명을 죽이고 240명 가량의 인질을 가자지구로 납치했다.
가자지구 주민들, 휴전 기간 동안도 친척 주검 묻고 배급 타려 발 동동…"영구 휴전 아니면 의미 없다"
휴전 연장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의 숨통이 이틀 더 트이게 됐다. 한 달 이상 쉬지 않고 이어진 이스라엘 폭격 끝에 가자지구 당국 집계에 의하면 가자지구에서 1만4800명 이상이 숨진 뒤에야 성립된 4일간의 휴전 기간 동안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에서 난민들은 해변을 찾았다. 27일 <로이터> 통신은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 뛰어노는 가운데 이들을 지켜 보던 어른들은 흐느끼고 있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30명 이상의 가족들과 함께 데이르 알발라로 피난해 유엔(UN) 학교에 머물고 있는 아스마 알 술탄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해변에 왔다"면서도 "사람들은 쉬고 수영하고 아이들과 즐겁게 놀기 위해 해변에 오지만 우린 너무 우울하다. 해변에 있지만 울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는 곁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감싸 안았다. 북부 출신인 이들 가족은 휴전 기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스라엘군은 지상군이 포위 중인 가자지구 북부가 위험한 상태라며 난민의 귀환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띄었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27일 데이르 알발라 시장이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주민들이 트럭에서 채소를 구매하는 영상을 담았다. 또 다른 영상에서 가자지구 남부의 일부 가족들은 폐허가 된 집 인근에서 불을 피우고 대화를 나눴다.
휴전 기간 동안 주민들은 비로소 공습으로 죽은 가족과 친척들의 주검을 수습할 수 있었다. 27일 <워싱턴포스트>는 가자지구 주민 샤이마 미크다드가 지난 24일 오전 휴전이 발효되기 불과 수 시간 전 북부 가자시티에 위치한 친척집이 공습 당해 친척 15명이 숨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가자지구 전체에 통신이 끊긴 탓에 그들의 사망 사실조차 몰랐으며 휴전이 발효되고 나서야 친척과 이웃들이 이들의 주검을 수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적어도 주검을 매장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휴전이 연장되기를 바랐다.
주민들은 임시 휴전과 연장에 안도하면서도 영구 휴전을 촉구했다. 27일 알자지라는 가자시티에서 가족과 함께 지난주 데이르 알발라로 대피한 아이만 하브가 "(영구) 휴전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알아크사 병원 부지 천막 쉼터에서 머물고 있는 그의 가족 중 일부는 아침에 내린 비로 천막이 젖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난민이 넘쳐 한 천막 쉼터에서 20명 가량이 함께 생활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휴전이 필요하다"며 "천막 생활에서 수치심을 느끼며 생필품조차 타인에 의존해 살도록 강요당하느니 집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는 게 나을 것"이라고 방송에 말했다. 그의 사촌 바드르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집에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한 달 전 가자시티에서 어린 두 아이들과 피난 온 누르 사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휴전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아이가 유치원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호소한다고 방송에 말했다. 그는 피난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며 아이들의 겨울옷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휴전 협정에 따라 지난 4일간 가자지구로 더 많은 구호품이 전달됐다. 커비 조정관은 27일 브리핑에서 이날만 가자지구에 200대의 구호품 트럭이 진입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구호 트럭 진입 시작 뒤 한 달 동안 이 지역에 진입한 트럭이 약 1400대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량이 크게 늘었다. 이스라엘군 지상 작전으로 포위돼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던 가자지구 북부에도 휴전 기간 동안 150대의 구호 트럭이 진입했다고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가 밝혔다.
그러나 물량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분쟁 시작 전엔 월평균 1만 대의 구호 트럭이 이 지역에 공급됐다. <로이터>는 27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피난민 사브린 알나자르가 유엔 창고에서 밀가루를 배급 받기 위해 몇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2~3일분 밖에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전문가 "바이든 대통령 휴전 기간 중 이스라엘 공격 재개 관련 '결정의 순간'"
이번 휴전 연장은 이스라엘이 임시 휴전 협상 타결 당시 이미 열어놓은 바 있어 장기 또는 영구 휴전으로 나아갈 초석으로 읽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스라엘은 휴전 기간 동안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휴전 종료 뒤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거듭했다.
다만 하마스 쪽이 앞서 BBC 방송에 "2~4일 연장"을 언급했고 미국도 더 추가 연장을 원하는 만큼 이번 이틀 연장 뒤 또 다른 며칠 간의 연장 가능성은 없지 않아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주 분쟁 시작 뒤 세 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할 예정으로 휴전 연장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장된 휴전 기간 동안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휴전 기간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결단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휴전 종료 뒤 이스라엘의 작전 재개 땐 북부 뿐 아니라 피난민이 밀집된 남부로 지상전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어 더 많은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에 대한 반발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국내외적 반발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에서의 아론 데이비드 밀러 선임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바이든 대통령은 곤경에 처해 있다"며 "그는 하마스 박멸이라는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에 자신을 묶어 뒀지만 인도주의적 재앙이 증가하고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완화책과 출구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질 해방을 내세우는 것 또한 휴전 연장 시도 중 하나지만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재개하려 할 때 바이든 대통령에 "이스라엘이 남부에서 작전을 중단하거나 적어도 조정하도록 압력"을 가할지에 관한 "결정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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