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 나흘간의 임시 휴전이 전쟁 개시 7주 만인 24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7시 발효됐다. 휴전 개시가 지연된 동안 이스라엘군은 공습을 강화했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수색 중인 가자지구 최대 병원 알시파 병원장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협상 당사자 간 신뢰가 없는 가운데 휴전 시행이 하루 미뤄진 뒤 이날 예고된 시각 직전까지도 실제 시행 여부를 두고 현장엔 긴박감이 감돈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24일 휴전 개시가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자지구에서 박격포 소리가 계속 들렸고 공습도 진행됐다며 "이스라엘군이 마지막 순간까지 가자지구 내부에서 작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스라엘 남부 스테로트에서 전했다. 방송은 휴전 개시 불과 15분 전에도 전투가 계속되며 가자지구 하늘에 연기가 피어 올랐다고 덧붙였다.
BBC는 이날 휴전이 발효된 오전 7시 이후에도 가자지구에서 15분 가량 간헐적으로 폭발음이 들렸지만 이후 20분 가량은 무기 발사나 박격포, 폭발, 전투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휴전이 성립돼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휴전 개시 1시간 뒤에 보도했다. 스데로트에서 보도한 미 CNN 방송도 오전 7시 18분께 가자지구에서 중화기 발사음이 멎었고 휴전이 발효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휴전 이행 시기가 관측보다 미뤄지며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행을 담보할 제3자가 현장에 없는 상황에서 시행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22일 나흘간 임시 휴전과 인질 50명 석방 협상 타결이 발표된 뒤 하마스 쪽이 23일부터 휴전이 개시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이스라엘 쪽이 24일 이전엔 인질 석방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며 휴전 협상 발효 일정이 적어도 하루 지연됐다. 이후 23일 협상을 중재한 카타르 외교부가 휴전 시작 시각은 24일 오전 7시, 인질 석방 시각은 같은 날 오후 4시께로 발표하며 일정이 확정됐다.
휴전이 발효되며 가자지구 주민들의 얼굴엔 7주 만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선 공습을 피해 대피했던 주민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이 이어졌다.
다만 북부에서 온 피난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자지구 주민들을 향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가자지구 북부는 위험한 전쟁 지역으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에서 칸유니스로 대피한 난민 모하마드 메크빌은 BBC에 휴전으로 인해 "매우 행복"하지만 "우리 북부 주민들은 폭격으로 인해 뿌리 뽑혔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이 연장돼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 주민 칼레드 로즈는 휴전 발효 전날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휴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잠을 자는 것이다. 계속되는 폭격에 지쳤다"며 휴전으로 "영혼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은 휴전이 주민들이 폭격으로 사망한 사랑하는 이들을 애도하고 실종된 친척과 친구를 찾을 수 있는 첫번째 기회라고 설명했다.
휴전 기간 동안 구호 물품 반입도 증가할 예정이다. 알자지라는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잇는 구호 물품 반입 통로인 라파 검문소 대변인이 24일에만 230대의 구호 트럭이 가자지구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를 보면 협상 중재를 도운 이집트는 휴전이 성립되면 가자지구로 매일 구호품을 실은 트럭 200대, 13만 리터의 경유 등이 반입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엔(UN) 집계에 의하면 분쟁 전 가자지구에 월 평균 1만 대의 구호 트럭이 진입했음을 감안했을 때 적은 양이지만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1일까지 반입된 트럭이 1399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주로 민간인인 1200명을 죽이고 240명 가량을 납치한 뒤 식량 및 연료 반입 금지를 포함해 가자지구 완전 봉쇄를 시작했고 지난달 21일부터는 구호품 일부 반입을, 이달 15일부터는 연료 일부 반입을 허용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억류한 인질은 이날 오후 4시부터 나흘에 걸쳐 석방될 예정이며 24일 석방될 13명의 명단이 확정돼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고 CNN이 전했다. 방송은 201명의 인질 추정자 명단을 작성한 인질 가족 단체에 따르면 인질 중 39명이 18살 이하고 44명은 성인 여성, 29명은 65살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알자지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이날 석방될 예정인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 39명의 명단을 전달 받았다고 24일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협상 타결을 알리며 인질 10명 추가 석방 때마다 하루 휴전이 추가된다고 밝힌 바 있어 추가 석방에 대한 희망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번 휴전이 분쟁 종식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국제 사회가 기대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쪽은 이번 전투 중단은 일시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23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 "짧은" 임시 휴전이 끝나면 최소 두 달 간 "강도 높은" 군사 작전이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휴전 하루 지연된 사이 인도네시아 병원 등 공습 강화…알시파 병원장 구금
휴전 발효를 앞두고 이스라엘군은 수색 작전 중인 알시파 병원장을 체포했다. 23일 이스라엘군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 지휘통제소로 이용됐다는 것을 가리키는 명백한 증거에 따라 알시파 병원장이 체포돼 ISA(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의 심문을 받기 위해 이송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는 해당 병원의 전기와 자원을 이용해 지하에 광범위한 테러 땅굴망을 구축하고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전날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 부지 지하라며 화장실, 주방, 에어컨 등이 갖춰진 땅굴 영상을 공개했다. 다만 해당 땅굴 영상에서 무기 등은 보이지 않았고 땅굴 출구 밖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2일 유엔 구급차 호송단과 함께 이스라엘군이 진입해 수색 작전을 벌이고 있는 알시파 병원 환자들을 남부로 대피시키던 모하마드 아부 살미야 알시파 병원장 및 몇몇 의료진을 이스라엘군이 검문소에서 데려가 구금했다고 밝혔다.
이슬람권 적십자 격인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이날 알시파 병원에서 190명에 이르는 환자와 부상자 및 그들이 보호자를 적신월사 구급차 14대, 유엔 버스 2대 등의 차량을 통해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이 수 시간 동안 검문을 벌여 대피에 거의 20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적신월사는 이 과정에서 칸유니스 의료센터장 아우니 카탑이 체포됐다며 우려룰 표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카탑 체포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BBC는 아부 살미야 병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를 이스라엘군에 문의한 결과 알시파 지하 상황에 관련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데려간 것"이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방송에 이번 구금이 아부 살미야 병원장이 하마스의 일원임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며 그가 기소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국제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휘통제소가 은폐돼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 15일 환자 수백 명과 수천 명의 피난민이 몰려 있는 알시파 병원을 급습해 일주일 넘게 수색 작전을 벌이고 있다. 병원은 국제법의 특별한 보호를 받지만 무기 저장고, 군사 관측소, 전투 부대와의 연락소 등 "적에게 유해한 행위"에 이용됐을 경우엔 보호가 중단된다. 이스라엘군은 연일 병원 진입을 정당화할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휴전이 하루 지연된 사이 공습도 강화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23일 오후 기준 24시간 동안 공중, 땅, 바다에서 공습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알자지라 방송는 이스라엘군이 휴전 발효 수 시간 전에 가자지구 북부의 또 다른 병원인 인도네시아 병원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24일 이 병원 설립을 지원한 인도네시아 자선단체 긴급구조위원회(MER-C)의 사르비니 압둘 무라드 회장이 밤새 이스라엘군이 전차(탱크)를 동원해 병원을 공격해 병원 1층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매우 심각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국장인 무니르 알부르쉬도 방송에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여성 1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방송은 병원이 운영을 중단했지만 여전히 550명 가량의 환자와 200명 가량의 의료진, 1500명 가량의 난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스라엘은 인도네시아 병원 또한 하마스 테러 기반 시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 중이다. 방송은 인도네시아 병원 및 인근 외에도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및 인근, 남부 칸유니스 등에도 폭격이 가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은 23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하마스 해군 사령관 아마르 아부 탈랄라를 제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알자지라는 하마스가 잠수부 이외에 해군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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