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휴전 협상 이행일이 당초 관측보다 하루 이상 지연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행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인질 가족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를 보면 22일(이하 현지시각) 밤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차지 하네비는 총리실을 통한 성명에서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라며 "석방은 양 당사자 간 원래 합의에 따라 시작될 예정이며 금요일(24일) 이전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앞서 무사 아부 마르주크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은 휴전 협상이 23일 오전 10시 이행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행일이 하루 이상 지연된 것이다.
<하레츠>는 이스라엘 정치 소식통이 협상 이행 지연은 하마스가 아직 석방할 이스라엘 국적 인질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양쪽의 이행 조건 충족을 보장해야 하는 카타르 쪽의 비준도 미뤄졌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어렵게 성사된 휴전 협상이 시작부터 삐걱거림에 따라 실제 이행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대두된다. <하레츠>는 이번 협상이 "집행 매커니즘 부족과 현장에 독립적 감시단 부재로 인해 특별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하마스에 납치돼 가자지구에 5년 간 억류된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의 2011년 석방 협상에 관여한 이스라엘 평화운동가 게르숀 바스킨은 영국 BBC 방송에 두 당사자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서로를 신뢰할 이유가 없다"며 이번 협상이 "매우 깨지기 쉽다"고 평가했다. 그는 "잘못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보장은 없고 무엇이든 협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현장에 이행을 담보할 제3자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2014년 분쟁 때도 일단 휴전 동의 뒤 조건 미충족을 이유로 24시간도 안 돼 다시 서로에 대한 로켓 공격 및 공습이 이뤄지며 휴전이 불발된 바 있음을 상기시켰다.
다만 협상이 당장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쪽은 인질 50명과 교환할 자국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 후보 300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협상이 이행된다면 이 중 150명이 풀려나게 된다. BBC는 명단 분석 결과 이 중 40%가 18세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에이드리엔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22일 밤 성명을 통해 "협상은 합의됐고 합의된 채로 남아 있다. 당사자들이 특히 첫날 이행을 위한 수송 최종 세부사항을 작업 중"이라고 강조하며 "이행이 금요일(24일) 아침부터 시작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협상 이행 예정일이 미뤄짐에 따라 추가 협상 및 휴전 연장에 대한 기대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이스라엘 총리실은 협상 타결을 발표하며 인질 10명을 추가 해방할 때마다 전투 중지 기간이 하루 늘어날 것이라고 밝혀 휴전 연장에 대한 기대를 키운 바 있다. 이날 팔레스타인 당국자도 <로이터> 통신에 팔레스타인 수감자 150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인질 50명을 석방하는 이번 합의와 동일한 조건의 협상이 이달 말 반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사될 경우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240명 가량의 인질 중 100명이 풀려나고 7000명 가량으로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중 300명이 석방된다. 이스라엘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인질 가족들은 희망 섞인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지속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협상 타결이 발표된 뒤 거의 하루가 지나도록 가족들이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청소년 조카가 지난달 7일 하마스에 납치된 엔겔 리치는 22일 매체에 "기분이 어제, 그저께와 같거나 더 좋지 않다. 우린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토로했다. BBC는 이행 지연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질 가족들에 대한 끔찍한 타격이라는 것"이라며 협상 타결을 50일 가까이 기다려온 "그들은 다시 한 번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유엔(UN) 및 아랍 국가들은 이번 임시 휴전이 적대 행위 완전 중단을 위한 초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이살 빈 파르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은 22일 "좋은 소식이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일 뿐"이라며 "휴전으로 이어지는 연장된 교전 중단의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튀르키예(터키) 외교부도 22일 성명을 내 합의를 "긍정적 발전"으로 평가하며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이 현재의 분쟁을 가능한 빨리 완전히 종식시키고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향한 과정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번 합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이지만 훨신 더 많은 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인질 송환을 위한 일시 교전 중단 뒤 전쟁을 끝낼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전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구호단체들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규모에 비해 나흘 휴전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뉴욕타임스>와 미 ABC 방송을 보면 프랑스에 기반을 둔 의료구호단체 세계의 의사들 국장 조엘 웨일러는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서는 4일이 아니라 4주로도 충분하지 않다며 이번 협상을 인도주의적 접근으로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자지구로 들어간 지원 물자가 현지 의사들에게 전달되는 데만 3~4일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북부 포위 남부 라파 검문소를 통해 들어오는 구호가 북부로 전달되기 어려운 가운데 구호 단체들은 연료 부족으로 인해 4일 휴전 기간 동안에도 북부에 충분한 구호 물품이 들어갈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22일 오전 휴전 협상 타결이 발표된 뒤에도 이스라엘 공습은 계속됐다. 알자지라는 22일 런던을 방문한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교장관이 이날 아침에도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에서 "할아버지부터 손자녀까지" 52명으로 구성된 한가족 전체가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남부 칸유니스 지역에서도 주거용 건물 등에 대한 공습이 계속됐다고 덧붙였다. 22일 BBC는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이 인질 석방이 24일 이후로 연기됨에 따라 휴전도 연기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편 22일 이스라엘군은 지난주 진입을 감행해 국제적 비난을 산 가자지구 북부 알시파 병원 수색을 통해 새로운 하마스 기반 시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병원 인근에 위치한 화장실, 주방 등이 갖춰진 땅굴을 영상을 통해 공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스라엘군은 땅굴 전기가 알시파 병원 전기 공급망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고 영상에 무기 등이 드러나 있지 않아 군사적 사용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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