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쳐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배재고가 구호를 선창한 학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하기로 결정하는 등 학생들에 대한 추가 징계 절차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징계에 더해 학생선수 육성 문화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운동만 잘하면 된다"며 경기 성적만 신경 쓴 결과 학생선수들이 인권감수성과 역사 의식 등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환경이 유지되는 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 조롱·모욕, 늘상 벌어지는 일…학생 선수 교육 환경 무너졌다"
우선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응원 문화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벤치 멤버나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상대 선수를 조롱해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만드는 행위는 야구 경기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라며 "이 같은 행위를 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눈치를 주기도 하는 문화다 보니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배재고 사태에 대해서도 "누구라도 선수들에게 '상대에게 너무 심한 조롱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더라면 이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이 벌어지고 난 뒤 상황에 대해 "지도자들이 학생 선수들의 구호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누구도 선 넘는 구호를 제지하지 않은 것은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선수를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 무너져 내렸다는 성토도 나온다. 경기 출전이나 훈련이 있으면, 학생선수들이 수업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게 하고 있으며, 체육계가 최저학력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학생선수들을 기초교육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학교체육회 소속 이병호 교사는 "학생선수들이 시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를 나오지 않고도 출석을 인정하는 제도가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허용 일수가 늘어나면서 선수들의 학교생활이 더욱 소외됐다. 그러니 인성, 학업 등 기본소양 교육은 말로만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이 교사는 체육계 협조 없이 교육계의 노력만으로는 학생선수의 기본소양을 기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선수들은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프로선수 진출을 목표로 하는데, 이와 직결된 선수 등록, 대회 참가 등 절차를 체육계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경기장에서 선수의 행위 전반을 관장하는 주체도 코치진과 감독"이라며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학교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체육계가 차별과 혐오를 막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건 아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체육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하고, 인권침해 방지 예방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체육지도자는 2년마다 윤리 및 인권 의식 향상을 위해 스포츠윤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행 제도를 통해 체육인들의 인권감수성 함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함은주 스포츠인권연구소 사무총장은 "인권감수성은 반복적인 교육과 실천, 미디어 리터러시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면서 길러지는 건데, 현재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인권교육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뤄져 실제로 인권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단호한 징계, 철저한 조사 필요…각계 머리 맞대고 근본적 대안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단호한 징계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먼저 배재고 학생들에게 내려진 6개월 출전정지가 중징계인 것은 사실이나,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납득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3학년 등 시합 성적이 입시와 연결되는 학생선수들의 경우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됐기 때문에 출전정지 6개월은 매우 강한 중징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학생들이 공공연히 발언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심각한 문제"라며 "학생 개개인을 봤을 때 안타까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근절할 수 있는 정도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과한 징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 교수 설명처럼 해외에서는 혐오·차별 발언을 한 선수들에게 강한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 농구대회에서 백인 비율이 많은 우승팀이 라틴계 중심 상대팀에 멕시코 전통 음식을 던졌다가 우승을 박탈당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유소년 선수들이 메신저에서 흑인 선수들을 조롱했다가 소속팀에서 방출당했다.
함 사무총장도 "이번 사태 관련자에 대해 (문제의 심각성이) 각인될 정도의 조사 절차와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학생선수들을 관리하는 최종 관리자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이런 사안이 반복되지 않도록 체육계와 교육계, 인권단체가 함께 숙의해 지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체육계가 '상호 존중'이라는 스포츠맨십을 다시 성찰해 성숙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상대를 비난한다고 스포츠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 프로스포츠에서는 오타니 등 상대를 존중하는 선수도 많이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정작용이 일어나고 학원 스포츠가 그 자체로 교육적인 활동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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