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분의 3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폭우가 쏟아지며 주민들이 공습과 더불어 전염병 위기에 처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의 또 다른 병원인 인도네시아 병원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 내부에선 극우 정치인들이 인질 가족들에게 호통과 막말을 쏟아냈다.
20일(이하 현지시각)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비상대응국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가자지구의 공중 보건 위기가 "우리가 겪고 있는 부상 및 병원 위기와 같은 수준으로 접근하기 시작할 수 있다"며 수천 명의 부상자, 밀집된 난민 등이 공중 보건 위기와 결합해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가자지구의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리고 있는 폭우, 물과 식량 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도 폐렴 등 질병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였던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북부 대피령으로 인해 남부로 주민이 몰리며 밀집도가 더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주 이스라엘이 남부의 일부 지역에도 대피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옴에 따라 밀집 정도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난민 보호소의 밀집도도 심각하다. <뉴욕타임스>(NYT)의 위성 이미지 분석에 따르면 거의 한 달 반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 북부 건물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전체 주민 230만 명 중 170만 명이 난민 생활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90만 명 가량이 154곳 이상의 유엔 팔레스타인난민보호기구(UNRWA) 쉼터에서 보호 중으로 쉼터가 과밀해지며 평균적으로 700명이 샤워실 1개, 150명이 화장실 1개를 공유 중이다.
밀집은 호흡기 질환, 설사 등 각종 질병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0월 중순부터 약 한 달 간 가자지구에서 7만 건 이상의 급성 호흡기 감염, 4만4000건 이상의 설사 사례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월평균 2000건 가량의 설사 환자가 보고됐음을 감안하면 증가폭이 급격하다.
최근 이 지역에 많은 비까지 내리며 천막에서 지내는 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수 범람으로 인한 질병 확산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1200명 이상을 죽이고 240명 가량을 인질로 납치한 뒤 이스라엘은 물, 식량, 연료 반입까지 금지하는 전면 봉쇄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담수화 시설과 하수 처리 시설 작동이 어렵게 돼 가자지구에선 거리에 미처리 하수가 흐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쪽은 지난달 21일부터 물, 식량, 의약품을 실은 구호 물자 소량 반입을, 이달 15일부터는 연료 소량 반입을 허용했지만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UNRWA는 20일에도 "가자지구에 폭우가 내리고 있고 대피소는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소셜미디어(SNS)에 토로했다. 토마스 화이트 UNRWA 가자지구 국장도 소셜미디어에 연료가 처리 시설을 절반 가량 가동할 만큼 밖에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거리엔 하수가 계속 흐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UNRWA 학교에서 대피 중인 오사마 사크르(33)는 "오염되고 담수 처리되지 않은 짠 물을 마신 아들이 설사를 앓고 있지만 약을 구할 수 없고 약을 구한다 해도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어 아이들이 계속 그 물을 마셔야 한다고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호소했다. 그는 "결국 내 아이들 중 한 명을 (오염된 물로 인한) 중독으로 잃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인도네시아 병원 내부에서 발포해 대응…병원 향해 포격 안 해" 주장
지난주부터 가자지구 최대 병원 알시파 내부에 진입해 수색 작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이 20일 가자지구 북부의 또 다른 병원인 인도네시아 병원을 전차(탱크)로 포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병원 내부에서 먼저 공격이 있어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20일 새벽 병원이 이스라엘 전차 공격을 받아 1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병원 내부에 있는 팔레스타인 언론인 아나스 알샤리프는 방송에 이스라엘 전차가 병원 정문 뿐 아니라 병원 인근 다른 곳들에도 배치돼 있으며 "병원 안에서 포격을 받고 갇혀 있는 상태"라고 증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인도네시아 병원 수백 미터 이내에서 이스라엘 탱크 여러 대가 병원을 향해 이동하는 영상의 위치를 확인했고 수십 명의 환자들과 피난민들이 머물던 병원 건물 2층이 포격 당했다고 병원 직원 2명이 증언했다고 전했다. 이 병원엔 최소 500명의 환자와 수천 명의 피난민이 모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NN을 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관련 성명에서 "간밤 가자지구 인도네시아 병원 내부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병원 밖에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을 향해 발포했다"며 "이에 대응해 이스라엘군은 적의 포격 특정 발원지를 직접 겨냥했으며 병원을 향해 포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는 20일 성명을 내 공격자를 특정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병원이 공격당한 데 대해 "경악했다"고 비판했다. 기구는 지난달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격이 164회,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171회 기록됐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극우 의원들, 인질 가족에 "고통 독점권 없다" 고성…외신 "하마스 지도자, 전투 중단 합의 거의 도달 밝혀"
한편 인질 일부 석방 합의가 가까워졌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에서 극우 의원들이 인질 가족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쳐 논란이 됐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CNN을 보면 20일 이스라엘 의회 국가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 소속 알모그 코헨 의원은 인질 가족들이 해당 정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이들에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과 폭언을 쏟아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이끄는 오츠마 예후디트는 현재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겨냥해 테러리스트를 처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인데 인질 가족들은 이 법안이 인질 석방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요구한 하마스를 자극해 인질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청문회에서 하마스에 아내와 딸이 납치된 시민 헨 아비그도리가 청문회에서 해당 법안에 반대하며 "아랍인을 죽이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유대인을 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발언하자 코헨 의원은 "당신은 고통에 대한 독점권이 없다"고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또 다른 오츠마 예후디트 의원 리모르 손 하르 멜렉도 인질 가족들에게 "당신들이 다른 가족들을 침묵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고함을 질렀다. 앞서 이 정당의 또 다른 의원이자 의회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인 츠비카 포겔은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스라엘 국가보다 하마스를 대표하는 것"이며 인질 가족들이 하마스에 조종돼 법안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시사하며 매도했다.
인질 석방 및 교전 일시 중지를 위한 협상은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21일 <로이터> 통신은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보좌관을 통해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이스라엘과의 "전투 중단 합의에 거의 도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하마스 당국자 이자트 알리쉬크는 이날 알자지라에 이번 협정에 휴전, 가자지구 전역에 구호 트럭 전달, 부상자를 다른 나라로 이송해 치료하는 내용 및 하마스가 억류하고 있는 이스라엘 여성과 어린이 인질을 해방하고 이스라엘 내 수감돼 있는 여성과 어린이를 석방하는 내용도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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