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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백남기 부검은 '영국' 톰린슨 부검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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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백남기 부검은 '영국' 톰린슨 부검과 다르다

[프레시안 뷰] <동아> 송평인 칼럼에 반론한다

10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백남기 씨와 이언 톰린슨"이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칼럼의 주요한 내용은 G20 정상회의가 열린 2009년에 경찰의 곤봉에 맞아 사망한 톰린슨 씨의 경우 부검을 통해서 경찰의 과실 치사에 대한 무혐의가 밝혀졌으니 백남기 씨에 대한 부검 영장도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가기 : "[송평인 칼럼]백남기 씨와 이언 톰린슨")

이 칼럼은 백남기 씨의 죽음이 법적 다툼이 된 사안이기 때문에 부검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것은 백남기 씨에 대한 부검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외 사례를 들고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칼럼은 반론이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며, 또한 반드시 반론되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반론

1) 칼럼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국 검찰은 경관이 불필요한 무력을 행사했다며 과실 치사(manslaughter)로 기소했다."

그렇습니다. 영국 경찰은 처음에는 사건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 심장마비로 발표했지만, 관련 동영상이 공개되자 사건 발생 10일 만에 녹화된 화면과 증언 등을 통해 폭력을 행사한 경찰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경관이 불필요한 무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과실 치사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이 과실 치사에 대해서는 경관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과실 치사 여부를 밝히는 과정에서 직무 수행에 적합하지 않은 행위를 한 점이 인정되어 중대한 비행으로 파면되었습니다. 사망자가 간질환을 앓고 있어서 외부의 충격에 대해 보통 사람보다 취약하다는 사실을 경관이 몰랐기 때문에 치사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이지만, 폭행한 행위 자체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과실 치사는 아니지만 중대한 업무상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 재판 과정을 통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백남기 씨의 경우, 당일 진압 과정에서 살수차의 운용과 관련해 규정에 어긋난 사실이 여러 차례 확인되고 있고 심지어 은폐한 정황도 있지만, 검찰이나 경찰은 이에 대해 어떠한 조사도 하고 있지 않고, 검찰과 경찰을 지휘 감독하는 청와대, 법무부, 안전행정부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이 검찰을 신뢰하지 않고 부검을 거부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2) 칼럼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3차례 부검이 실시됐다. 세 부검의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원인 불명 사망사건의 사인(死因)을 조사하는 법정에 넘겨졌다."

이것만 보면 부검을 여러 차례 해서 사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톰린슨 씨에 대한 부검이 3차례나 실시된 것은 사연이 있습니다. 4월 1일 경찰의 곤봉에 맞고 쓰러진 톰린슨 씨에 대해 4월 3일 첫 부검이 실시되었습니다. 알콜중독 병력이 있는 톰린슨 씨는 무려 13년 간이나 가족과 떨어져 노숙인 생활을 해 왔지만, 첫 부검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시행한 검찰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첫 부검에서 사인은 심장마비였습니다. 경찰의 폭행 영상이 공개된 후 4월 9일 실시된 두 번째 부검은 가족과 비정부 조사기구인 '독립경찰조사위원회(IPCC)'의 요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부검에서 처음으로 외부 충격에 의한 복부 충격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세 번째 부검은 런던 경찰과 피의자인 경관 헤이우드의 요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 번째 부검의 이유는 앞선 두 번의 부검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톰린슨 씨에 대한 세 번의 부검은 그래서, 유가족의 동의, 공정한 제 3의 기구가 동의하고 참여하지 않은 부주의한 부검이 어떠한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는가 하는 교훈을 줄 뿐입니다. 또한 폭행 영상이 공개된 뒤 이 사건의 조사에서 경찰을 배제하고 '독립경찰조사위원회(IPCC)'가 사건을 맡게 되는데 무려 5일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언론과 시민들이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백남기 씨에 대한 직사 살수에 대한 영상이 공개된 지는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서 경찰은 배제되어 있습니까? 유족은 부검에 동의하고 있습니까?

3) 톰린슨은 사건 발생 직후 곧바로 사망했습니다. 가족과도 13년이나 떨어져 노숙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간단한 병력조차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부검이 실시되었습니다. 그런데 백남기 씨는 병원에서 약 1년 간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백남기 씨의 사망에 다른 의학적 원인이 있다면 의학적으로 규명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게다가 서울대 의료진 역시 다른 병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전혀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백선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외인사' 대신 '병사'라고 말하는 것은, 연명치료를 더 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 사망에 이르게 된 다른 병인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 칼럼의 글쓴이조차 이렇게 썼습니다.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부검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4) 이 칼럼에서 핵심은 유족이 경찰 지도부를 살인 미수로 고발했기 때문에 법적다툼이 생겼으니, 부검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인이 분명해 보여도 법적 다툼이 된 사망은 부검이 필수적이다"라는 주장입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법적 다툼이 된 모든 사망에서 부검이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가령 법적 다툼을 제기한 쪽에서 스스로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고인의 명예를 위해 부검을 거부할 때는 부검을 반드시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유족이 제기한 고발에 대해 법원에서 부검을 하지 않아 살인 미수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판결이 난다면, 유족은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법원이 경찰의 살인 미수 혐의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부검 없이도 다른 의학적인 증거로 살인 미수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법적 다툼으로 인한 논란이 있습니까? 이것은 형식적 다툼을 실제적 다툼으로 오해한 무지가 아니라면 논지를 일부러 흩트려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나쁜 글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5) "영장은 설득이 안 됐을 때를 대비한 강제수사의 수단이다. 유족과 협의하라는 건 임의수사를 하라는 것이다. 임의수사를 할 것 같으면 영장은 왜 필요한가. 영장의 개념에 반하는 영장을 영장이랍시고 발부하는 법관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이미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유족이 검찰이나 경찰을 신뢰하지 못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고, 부검은 반드시 유족과 협의해서 집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정감사에서 서울지방법원장이 말했듯이, 그 협의가 완료되지 않으면 부검은 집행할 수 없다고 법원은 본 것입니다. 압수수색 영장 등 부대 조항이 달린 영장은 종종 발부됩니다. 그리고 그 부대 조항을 지키지 않는 영장집행은 불법입니다. 여기에 무슨 법적 다툼이 있습니까? 이 영장에 일반 부검 영장과 달리 부대 조항이 달린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부검 조건이 지나치게 검찰과 경찰에 유리하게 되어 있고 유가족이 부검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대조항을 단 것입니다. 영장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은 이 칼럼을 쓴 사람입니다.

6) "시위 현장은 건장한 청장년은 몰라도 70세가 서 있을 자리는 아니다. 법은 자초한 위험까지 보호하지 않는다."

국민의 참정권과 자유권을 나이를 기준으로 이렇게 몰상식하게 이해하는 언론인이 어디 있습니까? 따져야 할 것은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법을 제대로 집행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설령 백남기 씨가 참석한 집회에서 불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불법에 대한 적절한 정도의 대응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이 공권력이 져야하는 책임입니다. 칼럼을 쓴 사람도 그 다음 문장에서 곧바로 "경찰이 물대포 사용 준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따져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겠지만"이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이 먼저이며, 우리가, 그리고 언론인인 당신이 물어야 할 거의 모든 것입니다.

7) 그 다음 문장에서 칼럼은 "백 씨는 경찰에 전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곤봉에 맞아 사망한 톰린슨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백 씨가 어떤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나온 동영상으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백 씨는 누군가를 해칠만한 위협적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는데, 살수차는 운용지침을 어기고 처음부터 직사로 백남기 씨를 겨누어 발사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중요한 사실을 애매한 진술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백남기 씨는 집회에 참여했을 뿐이고, 설령 거기에 불법적 요소가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을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8)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9년 8월 5일, 영국 경찰청은 다음과 같이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톰린슨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관의 과도하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 앞에 전적으로 사과드립니다."

법적 판결이 없다면 미안하다는 말인 'sorry'도 잘 하지 않는 것이 영미권의 전통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만, 사망한 유가족에게 도의적인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이 정부는 이제 어느 나라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 2016년 10월 5일자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 ⓒ동아일보

부검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법원은 유가족의 의견을 반영해서 부검을 진행하라고 조건부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서울지방법원장은 이러한 절차 제안이 의무 규정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제안에는 따라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영장은 법원이 발부할 것이고, 그 취지는 그것을 발부한 법원이 판단할 일입니다. 그것이 상식적입니다. 검찰과 경찰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내용을 놓고 스스로 판단해서 집행 여부를 결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의적 법집행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부검을 절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정부가 백남기 씨 사망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십시오. 검찰은 백남기 씨가 쓰러진 당일 경찰의 시위 진압이 규정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즉각 수사에 착수하십시오. 경찰은 이 사건에서 일체 손을 떼고, 민간인이 주축이 된 별도의 독립기구가 부검 여부를 포함해 이 사건 전체를 원점에서 조사해야 합니다.

현직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인사가 병원장으로 있는 국립대학 병원의 의사들을 배제하고, 의사협회 등 제3의 기구를 중심으로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에 대해 적합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백남기 씨에 대한 부검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저는 유가족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예우를 거쳐서 부검이 실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조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런던 경찰은 2009년 11월, 톰린슨 씨를 사망으로 이끈 당시 시위 진압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150페이지의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자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경관들에게 충분한 주의가 부족했으며, 경관들에게 지나치게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경찰 지도부는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그 대안으로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져야 할 경찰의 행위 준칙을 국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시위와 집회에 대한 경찰의 진압이 정부에 따라 달라지고, 그로 인해 참여자들이 때로는 온건한, 때로는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는 데 제한을 받는 일이 없어진다면,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인 행위를 통해 말하는데서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역사적으로 평가받는다면, 고(故) 백남기 씨도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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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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