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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새정치 혁신위의 담대한 제안? 박근혜식 해법!

[주간 프레시안 뷰] '대권후보' 유승민 탄생은 야당 덕분

'친박(親朴) 연대'의 추억

지난 8일은 비극과 희극이 엇갈린 날이었습니다. 아니면 두 편의 비극, 또는 두 편의 희극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한 편은 물론 새누리당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수로 쫓겨난 일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연승불패의 선거 여신(女神) 앞에서 감히 누구도 유승민의 편을 들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 편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가 내놓은 제안입니다. 한마디로 '박근혜 식' 해법입니다.

'친박(親朴) 연대'라는, 우리나라 정당 사상 유일무이하게 오로지 한 사람과 친하다는 것을 표방한 정당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당에서 8명의 비례대표와 6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아주었습니다. 이 당에서 비례대표 1, 2, 3번 국회의원은 모두 당선무효형을 받았는데, 1번과 3번은 비례대표 '구매'로, 2번은 '판매'로 유죄를 받았습니다.

먼저 '구매'쪽을 살펴보면, 비례대표 1번 양정례 후보는 만 31살로 아무런 정치 경력이 없었는데, 건설업을 하는 어머니가 새누리당 16번을 사주려다가 잘 안되어 친박연대에 15억을 주고 1번을 사주었다고 합니다. 1981년에 11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3번 김노식 후보는 15억1000만 원을 주고 3번을 구매해서 27년만에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징역형을 살게 됩니다.

이 때 '판매'를 담당한 사람이 비례대표 2번 서청원 의원입니다. 말 그대로 '친박 연대'의 대표이니 자타가 공인하는 '원조 친박'이지요. 서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두 석을 30여 억원에 판 혐의로 2009년 5월에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이후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런데 19대에 다시 국회의원이 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

2010년 2월 친박연대의 노철래 원내대표(현 새누리당 의원)는 서청원 의원의 특별사면 탄원서를 공개하면서 박근혜 대표도 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8월, '광복절 특사'에 서 의원을 포함시켰고 6개월 특별감형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 24일 '성탄절 가석방'에 포함됩니다. 이 날 의정부 교도소를 나온 서청원 의원은 출감소감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을 향해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서청원은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어 취임을 준비하던 2013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마지막 대통령 특별 복권에 서청원을 포함시킵니다. 당시 특사 명단에는 MB맨이라고 불리는 최시중 방통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사돈이었던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8대 총선에서 추잡한 선거비리로 실형을 살고 10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서청원 의원은 이렇게 금방 깨끗한 몸이 되어, 19대 국회의원이 됩니다. 2013년 1월에 복권된 서청원은 곧바로 10월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 된 뒤, 불과 9개월 뒤에는 새누리당 대표 선거에 나섭니다. 아쉽게 2위에 그쳤지만, '친박 연대'의 설움은 이제 완전히 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 대표는 김무성이지만 대통령이 가장 믿는 사람은 서청원 최고위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서청원이라는 사람의 비루하고도 자랑스럽지 않은 이 정치사를 되돌아 본 이유는, 최근의 유승민 원내 대표 사퇴는 물론이고, 성완종 특별사면 관련 수사, 이완구, 황교안 총리 임명이나 멀리는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통치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관대하다"

이완구 총리는 임명 직후 3.15 의거 기념식에서 "최우선 과제로 부정부패와 고질적 적폐를 척결하기 위해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사건으로 물러난 뒤, 후임 황교안 총리는 취임사에서 "사회 각 분야에 쌓여 온 비정상적 관행과 적폐는 우리 사회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비정상을 바로 잡고, 부정부패를 근절해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고 성숙한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정치에서 소위 '적폐'라고 부를 만한 정치인이 있다면, 아마도 위에서 살펴본 것만 갖고도 서청원 의원이 몇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정부패와 고질적 적폐와 비정상적 관행을 쌓고, 키우고, 용서한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정부'를 질타하는 대통령의 말이 유체이탈화법이고, 이것은 '공주'로 커서 '여왕'이 되었기 때문에, 영국 여왕이 '나의 정부(My Government)'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왕도 사과합니다. 왕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체이탈'의 근본적 원인은 '박근혜 여왕설'이 아니라 '박근혜 무오류설'로 정정되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어떤 적폐에는 무관용 원칙에 입각해 엄단할 것이고, 또 다른 적폐에는 한없이 관대하실 것입니다.

무원칙한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충성이라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적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적폐냐가 중요합니다.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는 관용이, 배신하는 자에게는 불같은 진노가 미치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나쁜 자는 충성하는 척하다가 배신한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용서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왕정이 복고되었다고 합니다만, 동서고금을 들어 이런 왕정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특별한 왕정을 우리는 따로 구별하기 위해 '절대군주' 혹은 '절대왕정'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왕은 오류를 범할 수 없고, 그래서 이런 국가는 신정정치의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는 이미 한 지자체에 의해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유승민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이긴 것일까요? 보통 이 질문에 사람들은 유승민을 중심으로 이야기 합니다. 유승민 의원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는 김무성을 바짝 따라잡은 2위로 16.8%였습니다. 19.1%의 김무성 대표와는 2.3% 차이, 대구 출마를 선언한 3위 김문수 전 도지사는 6.0%에 불과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불과 2주 전에, 유승민 의원은 오세훈, 김문수에 이어 겨우 5.4%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결과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고, 유승민이 져도 진 것이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유승민이 대선후보로 떠올랐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의 사퇴서는 대선 출마 선언문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유승민이라는 보수의 새 주자가 나타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싸움 구경만 해서는 정치가 조폭영화와 다를 바가 없고, 실제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정치는 조폭영화와 달라야 합니다. 모욕감을 주었다고 누군가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걸 보고 역시 정치는 비정한 것이군, 한다고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아직 멀었고, 정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코 앞에 닥친 선거, 내년 총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보다 다음 총선에서 뽑히는 국회의 임기가 더 깁니다. 그리고 이 총선의 향방이 적어도 몇 년 간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선거의 여왕은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까?

근래에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조사가 있었습니다(한국 갤럽. 6월 23~25일). 충격적인 것은 세대별, 계층별 지지도의 편차였습니다. 국정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답은 전국평균 33%였고, 잘못하고 있다는 58%였습니다. 그런데 40대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64%, 30대는 82%, 20대는 74%였습니다. 반면 50대는 52%, 60대 이상은 27%였습니다. 40대와 50대를 기준으로 크게 다릅니다.

농업/어업에서 지지도는 무려 69%에 달했지만, 화이트칼라에서는 16%에 불과했습니다. 학생은 10%였습니다. 생활수준에서는 4단계 분류에서 '하' 만이 45%라는 평균이상의 지지를 보였고, '상/중상'은 24%, '중'은 31%, '중하'는 28%의 지지를 보였습니다. 자신의 삶이 상에서 중하까지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아무도 평균 이상의 지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지표가 나타내는 것은 분명합니다.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위태롭다는 사실입니다. 유승민 개인이 대구에서 공천을 못 받든, 무소속으로 나와 떨어지든, 수도권에서 출마하든, 그래서 대선 잠룡이 되든 그건 별 일이 아닙니다. 국민의 삶은 유승민이 아니라 총선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두 거대 정당 내부에서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나라를 위하거나 당의 미래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본인들의 재선이 달려있을 때입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국민들이 한가하게 유승민을 응원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바람이 불던 2004년 선거에서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후로 당내에서 치러진 대통령 경선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져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아닙니다. 지난 지방선거가 결절점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무능 때문에 이긴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스스로 이기지 못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완패했고, 경기도에서도 도지사가 남경필이 아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모든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통령과 유승민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 것이 나의 재선에 유리한가를 철저하게 따져 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끝났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다음의 진짜 싸움을 위한 좋은 구실만을 남겨주었을 뿐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과연 여당 프리미엄을 누리려고 할까요? 아니면 대통령을 딛고 넘어서려고 할까요? 그래서 절대왕정은 끝나게 될까요? 이 해답은 야당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새정치 혁신위의 담대한 제안?

내년 총선에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관계는 순전히 야당의 유능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야당이 잘하면 새누리당은 대통령을 넘으려 할 것이고, 야당이 못하면 적당히 타협하며 갈 것입니다. 결국 여기에 국민들의 삶이 달려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당이 없다시피하니 여당 원내대표가 반 년간 야당 노릇을 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잘못되었으니 국회법으로 이를 제한하자고 제안한 것은 물론 야당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결정한 것은 문재인이 아니라 유승민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야당은 이 사안에 관해 여당을 완전히 압박할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유승민은 안 들어줘도 될 만한 일을 들어준 것이고, 바로 그것이 대통령이 진노한 이유입니다.

야당은 유승민 대표를 마음 속으로 응원했을 것입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애초에 야당이 무능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은 유승민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 밖의 적이 막강하면, 집안의 싸움은 멈추게 마련입니다. 이번 싸움에 야당은 손톱만한 변수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혁신위가 실로 담대한 제안을 내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박근혜식 해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파가 문제니 최고위원회를 없애고, 공천이 문제니 사무총장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의 공천심사위원회는 전원 당 외부인사로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왜 이런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혁신위가 '야당이 문제니 야당을 없애자'고는 하지 않는지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경을 단숨에 해체하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의 결단에는 참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 제안이 담대한 이유는 계파정치 종식을 위한 최고위원제 폐지 시점을 내년 총선 이후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내년 총선 이후에도 이 당이 과연 남아 있을까요? '공천에 영향을 행사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는 100% 외부인사로 구성하되 위원은 위원장 추천을 통해 당 대표가 임명한다'는 제안을, 소위 비노계가 10월 재보선 이후에도 받아들일까요?

새누리당은 야당을 바라볼 것입니다. 야당이 바뀌면 여당도 바빠지겠지요. 야당이 고만고만하면 여당도 사이좋게 주저앉을 것입니다. 야당이 정말로 유승민을 살리고 적폐를 청산하고 싶다면, 대통령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당이 알아서 대통령과 싸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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