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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는 '헬조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야당, 막말 멈추고 국가비전 제시해야

재보궐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것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이제 막말의 성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야당을 '화적떼'에 비유했고, 이정현 최고위원은 국정화에 반대하면 '적화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국정화에 찬성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정신질환자나 조폭에 비유해 '친박실성파', '친박칠성파'라고 불렀습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연설을 듣다보면 정신분열이 된다'고 말했고,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욕설 공세'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의 화제는 '10.28 재보궐 선거'였습니다. 여야 모두 선거 결과에 주목했습니다. 24개 지역구 중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남을 포함해 단 2곳에서 이겼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에서도 승리했다는 보고를 받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내분이 격화되었습니다. 새정치가 선거에 패배해서 가장 기쁜 사람은, 어쩌면 대통령이나 김무성 대표가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주류일 것입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곧바로 문 대표 퇴진을 거론하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앞으로 더 볼만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 야당에 대한 실망, 야권 지지자들의 문재인 지도부에 대한 불신, 그런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투표율입니다. 이번 재보선의 투표율은 20.1%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그나마 기초단체장을 뽑은 고성이 50.7%였고, 광역의원은 15%에 그쳤습니다. 올해 상반기 재보궐 선거의 광역·기초의원 선거의 투표율 28.3%와 비교해 봐도 8% 이상 하락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80%의 국민은 이제 정치를 생각할 여유도,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포털의 핫토픽 키워드, "하위 50% 자산은 2% 불과"

정치권에서 재보궐 선거와 교과서 국정화로 막말을 쏟아낸 오늘(29일),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뉴스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하위 50%가 가진 자산이 2%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면 자산 상위 10%가 전체의 66%를 갖고 있었습니다.

상위 1%가 2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위 1%의 평균 자산은 2000년 13억7000만 원에서 2007년 22억7000만 원으로 7년 만에 약 60%p 정도 상승했습니다. 여기서 계산된 자산은 공시가격이라서 시가로 바꾸면 3억 원 정도가 더 늘어납니다. 기준은 가구가 아니라 성인 1인입니다.

하위 50%가 가진 자산 비중은 2000년 2.6%, 2006년 2.2%, 2013년 1.9%로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기존에 알려진 내용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입니다. 또한, 부의 양극화 정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잘 드러났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보다 자산이 부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56%지만, 자산에서는 66%로 약 10% 더 많습니다. 말 그대로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열심히 일해서 버는 것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죠.

정치인 여러분, 이제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 왜 관심을 가질 수도, 참여할 의지도 없었는지 좀 이해가 되십니까?

헬조선과 금수저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하루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뉴스가 있었습니다. 위 연구의 결과가 이미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 있었던 것이지요. '헬조선'과 '금수저'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위키백과의 헬조선 정의를 소개하겠습니다.

"헬조선(Hell朝鮮)은 2010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헬(Hell: 지옥)+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이미 언론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이 용어에 대해, 인턴 취업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역사를 잘 못 배워서 그렇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용어가 틀렸다는 지적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지옥은 나쁜 사람들만 가는데, 헬조선에서는 나쁜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입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에 대해서는 기준을 정해주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금수저는 자산 2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 원 이상, 은수저는 자산 1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1억 원 이상, 동수저는 자산 5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 원 이상, 흙수저는 자산 5000만 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 원 미만이랍니다.

금융과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상, 계층 이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세상, 아무리 '노오오오오오력'해도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 하나조차 바꿀 수 없는 세상이 여기에 있습니다.


▲웹사이트 헬조선. ⓒ헬조선

무능한 경제정당

사실 이 문제는 현재의 여당이 크게 관심을 쏟을 사안이 아닙니다. 시장 자유화를 신봉하는 정부와 여당에게 이 문제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사회·정치적 이슈로 삼을 리도 없습니다.

반면 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무엇을 해 왔는지, 또 올해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 대표는 항변할 수 있습니다.

"임기 초반 '유능한 경제정당'을 표방했는데, 당이 따라주지 않았다."

답하겠습니다. '유능한 경제정당'은 저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저잣거리에 나가서 장삼이사를 붙잡고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가 뭐냐고 물어봐도 저 답은 나옵니다. "경제가 좋아져서 먹고 사는 걱정 안했으면 좋겠어요.". "학비 걱정 안하고 학교 다니고 싶어요."

유능한 경제정당은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 때 되는 것입니다. 유능한 경제정당의 전략으로 새정치는 '소득주도성장'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은 급조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득보다는 자산 중심의 불평등이 심각하고,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과연 '성장'에 초점을 맞춘 이 해법이 정답인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소득주도성장'의 내용으로 올해 천명한, 최저임금 현실화와 비정규직 임금 체계 개선에서 야당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고, 쉬운해고를 골자로 한 소위 박근혜식 '노동개혁'에 야당은 철저하게 무기력했습니다.

애초에 천명한 전략도 문제였지만, 그 전략을 달성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능한 경제정당의 체면을 그나마 살린 것이 있다면 '을지로 위원회'였습니다.

단 한 사람도 재선될 자격이 없습니다

반대와 욕설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지금 대통령은 인격적으로 나쁜 대통령이 아닙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 정치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잘못입니다. 아무런 설명없이 본인의 말을 바꾸는 원칙없는 정치인입니다.

새누리당은 나쁜 정당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정당입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경제에 무능하고,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에 꼼짝 못하고 당론을 무시하는 대표입니다. 막말하지 않고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판도 그만하면 됐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드러난 것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국정운영 수준이 대단히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보아도 한심한 대책없는 정부와 여당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고 '정신분열', '실성당'이라는 막말이나 하는 야당은 '우리도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눈을 떠서 보십시오. 세상은 지옥입니다. 가난한 노인들은 자살하고,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었고, 직장인들은 과로로 쓰러져갑니다.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아직 아무 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의 책임입니다.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에서 하위 20% 골라내겠다고 하자, 현역에게 유리한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자는 법안에 79명이 서명하는 정당입니다. 이 헬조선에서 당신들이 가장 나쁜 사람들입니다. 단 한 사람도 재선될 자격이 없습니다.

야당이 국가의 비전을 제시할 때입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자, 야권에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나봅니다. 실제로 그런 정황이 보입니다. 야당은 다시 공천을 둘러 싼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교과서 국정화는 정국 변화의 계기이지 그 자체로 유불리를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야당이 할 일은 당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싸우되 현명하게, 민생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당장 보육예산 축소로 어린이집들이 휴원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총선은 큰 선거입니다. 교과서 국정화를 단일 이슈로 야당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세상은 다변화 되었고, 유권자들은 이슈마다 분화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진보·보수, 집토끼·산토끼 논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한심한 일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대안이 어렵다면,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문제점들이 무엇인가라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1980년대식 노선 투쟁일랑 이제 그만 합니다. 선거의 핵심은 신뢰에 있습니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약속한 것을 실행하는 것은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능력에 대한 신뢰야말로 노선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입니다.

지금으로 봐선 내년 총선은 절망적입니다. 이번 교과서 국정화 싸움을 하는 것을 보니, 야당이 지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헬조선은 지속될 것입니다. 모두 당신들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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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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