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27일 '공공 기관 3대 분야 기능 조정 추진 방안'(SOC, 농림·수산, 문화·예술 분야)을 내놓았다. 정부는 기능 조정이라 이름 붙여 마치 불합리한 것을 재정립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갖췄지만, 그 내용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정부의 발표에 포함된 철도의 기능 조정 내용은 그동안 국토교통부가 줄기차게 추진해오던 철도 경쟁체제와 민영화 정책의 얼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정부의 철도 정책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고 이에 기초하여 정책이 세워졌다. 철도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독점이기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쟁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도로, 항공과 같이 다양한 운영자가 경쟁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효율이 담보된다는 발상이다. 인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는 수 십 여개에 이르지만 서울역에 정차하는 열차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운영하는 열차 외에는 없다. 도쿄역이나 각국의 국제열차가 정차하는 베를린 중앙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독점 논리로 철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철도의 산업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특정한 목표를 위해 무시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공기업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민간의 효율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다. 민간, 즉 '사기업은 효율적'이라는 맹신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래 관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의 결합인 민간 경쟁체제는 철도산업이 도달해야할 궁극적 목표가 된다.
이런 일관성 속에 추진된 정책이 이명박정부 시절 시도된 수서 KTX의 민영화였다. 국토부의 '청부 용역 기관', 교통연구원이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정부가 밀어붙였다. 그러나 범시민적 반대 여론은 수서 KTX(수서KTX주식회사) 민영화 문제를 차기 정권인 박근혜 정권으로 넘기게 했다.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경험한 박근혜 정권의 국토부는 기존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면서 '민영화'란 말만 떼어냈다. 2013년 12월, 민영화는 절대 아니라는 정부의 장담 속에 수서KTX가 출범했다. 2013년 6월에 정부에 의해 발표된 '철도산업발전방안'에 제시된 로드 맵에 따른 조치였다. (☞관련기사 : 국토부, 박근혜 임기 내 '철도민영화 완료' 방안 발표 )
이번 기획재정부의 철도 기능 조정안 역시 '철도산업발전방안'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기능 조정안에 따르면 철도를 기능 별로 분리시켜 각각의 다른 회사로 분리하는 것이다. 화물운송을 담당하는 물류회사와 차량정비, 유지 보수 및 임대 사업을 맡는 3개의 자회사가 출범하게 된다. 여객 분야에 있어서도 이미 분리된 수서KTX 외에 신설선 등에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여러 운영사가 생긴다.
철도 민영화, 철도를 세월호로 만들려는 것
정부 발표에 따르면 각각의 자회사는 안전 확보 및 경영 효율화를 위해 아웃소싱을 확대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경영 효율화는 비용 대비 수익을 극대화 하는 것인데, 안전을 강조할수록 수익의 많은 부분을 안전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은 경영효율화를 위해 외주화를 확대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정부의 속셈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형용모순의 용어가 되는 안전 확보를 앞에 가져다 놓았다.
정부의 발표문은 정부가 형식적으로 갖다 붙인 용어와 진실로 추구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그 안에 담겨진 속뜻을 알 수 있다.
여객철도에 대한 경쟁체제 강화 및 비용구조 합리화라는 항목에 보면, 새로운 사업자를 영입해서 경쟁을 강화하고 정부의 공공 철도 보조금을 축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경쟁이 강화될수록 여러 운영사들은 목표 수익 달성에 매진하게 된다. 정부의 보조금도 축소되는 마당에 더욱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 인건비 절약을 위해 비정규직이 대폭 양산된다. 정부가 나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안전 관리체제는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가 아니므로 형식적으로 유지된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협력도 하지 못했던 세월호 선원들과 바를 바 없는 인력구조가 광범위하게 확대된다. 평형수를 빼고 컨테이너를 대충 묶어도 정비 이력서에는 정상이라고 표시되는 것을 일반화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능조정안이다.
정부는 2016년에 관제 공정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철도 민영화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코레일로 부터 관제권을 회수하는 것이 국토부의 향후 첫 번째 과제임을 천명한 것이다. 철도 관제에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말은 철도 관제가 불공정하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재 전국의 모든 국유 철도 노선을 운영하는 코레일의 열차는 당사자인 코레일이 관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불공정이 개입될 여지 가 없다. 그러나 정부의 관제 공정성 확보라는 말에는 앞으로는 철도 공사 외에 많은 철도 운영자가 생긴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철도 관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첫째는 열차 운영 계획 단계로 제한된 선로조건 속에 적절한 열차 운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운영사가 경쟁하게 될 경우 각각의 운영사는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 황금 시간대 등 수익이 극대화 되는 시간대에 자사의 열차 운행을 더 많이 확보하도록 경쟁할 것이다. 국토부 입장에서는 코레일이 관제권을 가지고 있으면 경쟁사가 불이익을 갖게 되므로 관제권을 회수해 제3의 기관으로 넘기는 것이 공정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이렇게 되면 철도 공사의 기본적인 영업 기획 능력자체가 무력화 되고 얼마든지 국토부의 지침이나 정책에 의해 수익구조가 변화될 수 있다. 얼마든지 정부 맘대로 우량이나 불량 회사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실제 운영과정에서의 열차 운행조정이다. 특정 역이나 선로 진입과정에서 각기 다른 회사의 열차가 경합을 벌이게 되거나 사고나 기타 고장 등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하지 않게 관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철도방식의 구조개혁을 한다면서 독일 철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영업키로(킬로미터)'를 가진 한국 철도에서 여러 운영사를 두고 경쟁시키는 것은 넌센스다. 독일 국유철도 노선의 98퍼센트는 독일철도공사 독점체제이다. 현재 추진되는 공정한(?) 관제를 위한 관제권 회수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민영화 아니라고? 인천공항철도 지분 팔면 민영화 끝!
민영화된 영국 철도에서 셀 수 없는 운영자가 경쟁한 결과 대주주와 투자자들이 떡고물을 챙겼다. 그동안 시민들은 다른 유럽국가의 철도에 비해 최고 10배에 이르는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철도 정책이 가는 목적지는 영국철도와 다를 바 없다.
수서KTX를 비롯해 기능조정안에 따른 결과로 나타날 물류 자회사 등 많은 자회사들은 독자적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구조로 정착된다. 현재 정부는 절대 이들 자회사들이 민영화로 가는 길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현재 상황만 봐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임을 알 수 있다. 인천공항철도의 지주회사는 코레일이다. 코레일 이사회가 인천공항철도 민간매각을 결정했고 인수자가 결정되어 민간자본에 주식 매각절차가 추진 중이다. 아주 간단하게 민영화가 완결되는 구조다.
철도 민영화는 절대 아니라고 장담할수록 정부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새로 건설된 호남고속선은 처음 예정됐던 분기점을 천안에서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노선이 19킬로미터 늘어났다. 당시 주무장관이던 추병직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장관은 노선연장으로 인한 추가 부담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전직 장관들의 장담은 가볍게 무시되는 게 현실이다. 때가 되면 정부는 늘 하던 대로 그럴듯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민영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면 그만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조정이란 이름아래 진행되는 철도의 기능과 역할 분리조치를 2016년에 시행될 종합평가 과정을 거쳐 2017년부터 본격화 할 것을 천명했다. 박근혜 정권 임기 내에 철도 민영화로 가는 대못을 박아놓겠다는 것이다. 사회의 공적 자산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진격하는 이 거인의 질주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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