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국가로서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혈맥이겠지만, 나에게는 '고향, 어머니, 선한 이웃, 풍경'이다. 고향이 간절히 그리울 때, 어머니가 몹시도 보고플 때 철도는 갈등을 할 필요가 없는 싼 가격에 그를 이어주었다. 철마에 몸을 실으면 언제나 선한 이웃이 삶은 계란이나 귤, 김밥을 권하였고, 거리가 길어질수록 오고가는 대화와 정도 깊이를 더했다. 그러다 상대방이 잠이라도 들어 차창 너머를 바라보면, 산과 들과 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들이 어디든 펼쳐졌다. 아름다운 산천도 좋지만, 모락모락 저녁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던 마을의 정경이 떠오르면, 지금도 푸근함이 밀물져 온다. 철도 노동자들 또한 가난한 이들이건 아니건, 학력이 많건 적건, 나이가 많건 적건 고향과 어머니와 선한 이웃과 풍경을 전해줄 수 있다는 마음에 왠지 모를 뿌듯함에 젖어 기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도 민영화는 이를 앗아간다. 천안아산과 대구 구간의 비용이 16만 원이라면 과연 누가 철도를 탈 것이며, 적자노선이라고 기차를 운행하지 않으면 철길 따라 펼쳐지던 그 정경을 과연 어떤 방법으로 볼 수 있는가.
박근혜 정권은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이 철도공사 지분이 41%, 연기금 등 공적 자금 59%이며,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기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회사로 분할하면 코레일은 정부나 국회의 동의 없이 언제든 이를 매각할 수 있다. 한미 FTA에 따라 미국자본의 투자도 가능하다. 재벌과 초국적 자본이 한국 철도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준 것이다. "자회사분할→매각→민영화 완성"은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권이 국민의 반대를 피하여 민영화를 감행하는 단계별 방안일 뿐이다. 2011년 KTX의 흑자는 4,686억 원이고, 다른 일반 노선의 적자는 5,000억 원이었다. 코레일은 KTX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적자를 메워 국민 누구나가 철도를 이용하면서도 국민의 혈세가 덜 들어가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민영화가 아니라면, 왜 많은 흑자가 예상되는 수서발 KTX 노선만 자회사로 분할하려 하는가.
철도 민영화는 '고향, 어머니, 선한 이웃, 풍경'만이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목숨과 혈세와 직장, 자존을 앗아갈 것이다. 철도를 민영화하면, 안전사고가 빈번해질 것이다. 영국의 경우 철도사고가 1994년 997건에서 1997년 1,700여건으로 급증했다. 1997년 사우스홀 충돌 사고로 7명이 죽고 140명이 부상당하였고, 1999년 패딩턴역 충돌 사고로 31명이 사망하고 520명이 부상당하였으며, 2000년에는 햇필드 전복사고로 4명이 죽고 7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민간회사들이 더 많은 이윤을 올리기 위하여 자동열차보호장치를 설치하지 않거나 신호설비를 축소하고 선로균열을 방치하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대 목표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지만,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증대다. 이윤증대에 맞추어 모든 시스템이 작동하는 기업이 공익과 사익을 조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서 착한 고양이이니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철도를 민영화하면, 수많은 철도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앉게 될 것이다. 쌍용자동차는 회계조작까지 하여 2,646명의 선량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였고, 그 문제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24명이 죽었음에도 이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법에 규정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아니라 '극단의 이익'을 위하여 회계조작까지 하여 대량해고를 하고 그것을 사법부와 정부가 용인하는 한국 사회에서 철도를 인수한 기업이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철도 민영화를 단행한 영국의 보수당 정권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데, 영국의 경우 국영 철도 노동자 수는 1992년 15만 9000명에서 1997년 9만 8300명으로 줄었다.
철도는 국민의 혈세로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공공재다. 국가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재원으로 철로를 놓고 기차를 달리게 하여, 적자노선이든 흑자노선이든 가리지 않고 자원과 물자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고르게 운송하고, 국민이 산간의 오지라도 오고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철도를 공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시설과 운영을 통합하여 더욱 공영화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는 상황에서 수천 억 원의 흑자가 예상되는 수서발 KTX만 따로 떼어내 사영화하는 것은 최소한의 공적인 영역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자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수서발 KTX자회사가 매각될 경우, 코레일은 그 자회사에서 발생하는 흑자만큼 적자를 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함은 물론, 고객을 빼앗겨 그동안 매년 5천 억 원에 가까운 흑자를 보던 서울역발 KTX노선의 흑자폭이 대폭 감소될 것이다. 영국 보수당 정권은 민영화로 정부 부담을 줄이고 효율화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민영화 이후 해마다 2조 원 가량의 공적자금을 지원해야 했다. 노후 선로 등 시설을 보수하고 관리하고 개인투자자에 대해 배당을 지급하고 관련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데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 민영화란 국민의 혈세는 혈세대로 들어가면서 자회사에 투자한 기업과 개인들만 배를 부르게 하는 멍청이 짓이다.
무엇보다도 철도 민영화는 국민의 철도 이용 기회를 앗아갈 것이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민영화 이후 영국의 장거리 철도 요금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107%가량 인상돼 물가인상률 대비 2배 이상 폭등했다. 스탠퍼드~런던 구간(214㎞) 이용 시 한국 돈으로 16만 7000원가량을 지불해야 한다. 비슷한 거리인 천안아산~동대구(197㎞) 구간 요금 2만 6300원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비싸다. <한겨레신문>에 의하면,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지난 7월 진행한 '철도산업발전 워크숍'에서 적자노선 포기에 대해 원론적으로 합의했다. 그 합의대로 진행된다면, 경의선, 일산선, 경전선, 정선선, 경북선, 진해선, 동해남부선, 교외선을 이용하여 고향이나 휴양지를 찾아가던 국민들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은 선거부정으로 집권하여 출발부터 정당성을 상실하였고, 공약을 파기하고 국민과 소통을 거부하여 2차적 정당성마저 획득하지 못한 채 1년차에 이미 레임덕 상태에 놓였다. 쌍용자동차에서 합법적인 정당이나 단체 해산 공작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은 폭력에 의존하여 통치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철도민영화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파업 이전에 대화로 해결하려는 철도노동자의 요청을 묵살하더니, 시민단체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한 사태의 합리적 해결 방안 또한 무시한 채 강경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폭력에 의존하여 어느 만큼이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폭력에 의존할수록 권력은 약화한다는 진리를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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