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코레일이 2년 전에 작성한 '경쟁 체제와 민영화 반대' 문건을 2개 입수했다. 하나는 코레일이 2011년 12월에 작성한 것으로 제목은 '철도 운영 경쟁 체제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코레일이 비슷한 시기에 작성한 것으로 제목은 '고속철도 민간 개방, 무엇이 문제인가'이다. 두 문건을 살펴보니 내용상 큰 차이는 없었다. 두 문건은 모두 코레일이 정부의 '경쟁 체제 도입과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작성한 것으로 15문 15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글에서는 두 개의 문건 중에서 '철도 운영 경쟁 체제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를 중심으로 2년 전 코레일이 경쟁 체제와 민영화를 반대했던 이유를 요약, 발췌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1. 정부가 갑자기 고속철도 경쟁 체제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향후 수도권 고속철도(수서~평택+기존 경부고속선 연장 운행 시)는 수익성이 예상되는 유일한 사업으로, 수익성 담보 없이는 민간이 참여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경쟁 체제 도입을 위해서는 민간 대기업 참여가 불가피한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 생리상 수익 노선이 아니면 참여 유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간 대기업에서는 2015년 수도권 고속철도 개통을 앞둔 지금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민간 대기업에서는 건설 경기의 극심한 침체와 2009년 MRG(최소운영수입보장) 폐지로 인해 철도 건설 사업에서 눈길을 돌리게 되었고, 수익이 보장되는 고속철도 운영에서 새로운 돈벌이를 찾게 된 것"이다.
2. 외국의 철도에는 이미 경쟁 체제가 도입되었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2000년대 들어 유럽의 '지역 통합'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계약을 통한 경쟁 체제 도입을 제안하였고, 이후 서유럽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국 실정에 맞는 경쟁 방식을 도입, 운영 중에 있"다. "그러나,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철도 경쟁 체제는 매우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주요 장거리 간선 노선은 공기업 또는 정부 출자 주식회사가 사실상 독점 운영하는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 유럽 장거리 여객 철도 수송 시장의 특징(OECD/ITF, 2009.12)
• 프 랑 스 : 장거리 여객 철도 시장은 SNCF(공기업)가 독점
• 독일 : 대부분의 장거리 수익 노선은 DB(공기업)가 운영, 지선 및 일부 소규모 네트워크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경쟁 입찰 적용
• 스웨덴 : 간선 수익 노선은 SJ(공기업)가 독점, SJ가 서비스를 거부한 일부 지방 노선과 공익적 적자 노선에만 경쟁 입찰 시행
• 이탈리아 : 장거리 여객 철도 시장은 Trenitalia(국유)가 독점
• 네덜란드 : NS(국유)와 HSA(합작 회사, 정부 지분 90%)가 장거리 시장 양분
※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에는 아직까지 경쟁 체제가 도입되지 않고 있음
3. 민간이 운영하게 되면 정말 효율이 높아지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고속철도 운영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과 노동력이 필요하나, 우리나라 철도는 영업 거리가 협소하고 대부분의 수요가 서울을 중심으로 편중되어, 다수의 사업자 존재 시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한다. "특히, 민간 사업자는 차량 보유량 및 차종이 제한되어 수요에 맞는 최적의 좌석 공급이 불가능하고, 일반 열차와 효율적 연계 환승 체계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철도공사가 운영할 때는 기존의 조직과 인력, 시설 및 유지 보수 장비 등을 활용할 수 있는데 비해, 새로운 사업자는 모두 새롭게 채용 또는 구입해야 해 중복 투자가 불가피"하다.
※ 신규 고속철도 민간 운영 시 발생 가능한 비효율 항목(2년 전 코레일 주장)
• 보유 차량이 10량 편성으로 제한되어, 수요에 맞는 최적 좌석 공급 불가(철도공사는 기보유한 20량 편성을 탄력적으로 배치, 민간 대비 1.5배 증수송 가능)
• 차량 중정비시설 구축(약 2000억 원) 및 유지 보수 장비 구입(440억 원) 추가 발생
• 전산 시스템 구축(약 1000억 원) 및 초기 영업 준비금(약 640억 원) 추가 발생
• 본사, 전산, 역무 인력 등 330명 추가 소요, 연간 인건비 약 160억 원 추가 발생 등
4. 고속철도를 민간이 운영하면 운임이 인하되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한국교통연구원은-인용자) 고속철도를 민간이 운영하게 되면 현재 운임 수준의 20%가량을 낮출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한국교통연구원) 분석 내용을 보면, 역사 및 차량 기지 등을 인수하지 않고 저가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임대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며, 수요를 과다하게 예측해 예상 수입을 높이거나, 불분명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운영 비용을 낮게 책정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코레일은) 한국교통연구원이 제시한 수요 예측, 운임 인하 등 경쟁 관련 근거 자료를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요청했으나 최초 한 차례 추상적 답변만 있었을 뿐, 지금까지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참고로) "1994년부터 모든 노선에 경쟁 입찰을 적용하고 있는 영국 철도 장거리 부문의 경우, 매년 운임이 올라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총 107.1%나 인상되"었다.
5.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서비스는 어떻게 되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대부분의 철도 이용 고객이 특정 노선과 특정 시간대에 맞춰 열차를 선택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관별로 특별히 차별화된 서비스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복수의) 운영자가 존재하고 있는 수도권 전철 등에서도 운영 기관별로 특별히 차별화된 서비스나 가격 경쟁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속철도만 운영자가 달라질 경우에는, 기존 노선의 일반 열차와 연계 및 환승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게 될 것이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비수익 노선 및 시간대의 열차는 운행이 감축되는 등 고객의 열차 이용 선택폭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6. 경쟁 체제 도입 시 안전에는 문제가 없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관제사와 철도 운영자의 조직 이원화로 명령 체계에 혼란을 유발하게 되며, 선로나 열차 고장 등 비상상황 시 구원 열차 등의 운행에 지장을 초래해 신속한 복구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다수의 운영자와 시설 관리자, 유지 보수 수행 주체가 각각 달라져, 기관 간 정보 교환 및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관제의 영역이 복잡해지고 사고 발생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 복수의 기관 간 정보 교환 부족으로 일어난 사고 사례[영국, 영국철도안전조사국(2009)]
• 1997. Southall : 복수의 민간 철도 회사 간 정보 교환 오류로 열차 충돌(7명 사망)
• 1999. Paddington : 시설 관리자와 운영자 간 정보 교환 부족으로 열차 충돌(31명 사망)
• 2001. Salby : 복수의 민간 철도 회사 간 정보 교환 오류로 열차 충돌(10명 사망)
• 2002. Potters Bar : 시설 관리자와 운영자 간 정보 교환 부족으로 고속열차 탈선(7명 사망)
7. 이동통신 및 항공 산업도 경쟁 체제 도입으로 효과를 보지 않았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이동통신과 항공은 수요의 특성이 철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기술 도입과 트렌드 변화에 따라 새로운 수요의 창출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통신 산업과, 해외여행이라는 큰 시장 규모가 존재하는 항공 산업과는 달리, 철도에서는 인프라 확장에 따른 수요 증가에 한계가 있"다. "더욱이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이미 한 차례 큰 폭으로 증가한 철도 수요가 다시 한 번 획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8. 민간과 경쟁하면 철도공사도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경쟁의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환경'이 반드시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서는 매몰 비용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역사 및 차량 기지, 고속철도 차량 등을 저가로 임대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으며, 수익이 보장된 고속철도 사업에만 참여코자 하여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또한 신규 고속철도를 민간이 운영하게 되면, 철도공사는 기존 경부·호남선 고속철도 및 일반열차 수요의 이탈이 불가피하며, 수익 감소로 계속적인 적자 발생이 불가피"하다.
9. 도로, 항공, 해상 등 다른 교통수단과 달리 왜 철도만 독점하고 있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철도는 궤도, 차량, 인력, 시스템 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기술 및 경영상 통일성이 요구되는 교통수단이다. 즉, 열차 운행의 안전성과 수송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로, 차량 규격, 신호, 통신 방식 등이 일치되어야"한다. "철도는 인접 역들이 열차 운행 통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추월이 불가능한 점, 선로 위 각각의 열차들이 상호 간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다른 교통수단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또, 건설과 운영에 막대한 자본이 수반되어 '규모·범위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다수의 운영자가 존재할 때는 비용 측면에서 오히려 비효율이 발생하게 되며, 국민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전통적으로 자연독점성이 인정되어 왔"다.
10. 철도공사의 경영에 비효율이 심각하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구조적인 요인 등으로 영업 적자가 발생하고 있으나, 1인당 노동생산성 등 효율성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공사 전환 후 매년 5000억 원 이상의 영업 적자가 발생하고 있으나, 이는 비수익 노선 운영 등 공익적 역할 수행, 과거 미흡했던 철도 투자로 인한 고비용 사업 구조, 높은 선로 사용료와 운임 인상 규제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꼭 철도공사의 경영이 비효율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철도 선진화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여 적자 규모를 계속 감소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라면 2013년 또는 늦어도 신규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2015년에는 영업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오히려 철도 산업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인 1인당 노동생산성(수송인톤Km/1인)을 보면, OECD 국가 중 여객 부문 5위, 전체 12위로 높은 수준이며, 유럽의 철도 선진국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과 비교해도 낮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종업원 1인당 수송량(백만인톤Km, 2009년 기준) : 한국 1.33, 스위스 1.11, 영국 1.02, 덴마크 0.84, 이탈리아 0.77, 프랑스 0.77, 독일 0.71
11. 현재 고속철도의 이익으로 적자 노선의 비용을 보전하는 형태인데, 바람직한 것인가?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철도는 광범위한 지역에 다품종의 수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산업으로, 서비스 종류 및 지역 간 내부 보조의 발생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또한 국민 일상생활과 국가 경제에 있어 필수적인 기반 시설로서,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 특성을 갖기 때문에 철도 운영자에게는 적자 노선을 존속시켜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으며, 이는 곧 국민소득의 재분배 차원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현재 공익적 적자 노선에 대해 일정 부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노선에 대해서는 고속철도의 수익을 통한 교차 보조가 작용되어, 보편적 서비스로서 철도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민간 기업이 고속철도만을 운영할 시에는, 국민에게 재분배되어야 할 이익이 재분배되지 않고 일부에 독점될 가능성이 크며, 비수익 노선의 서비스 유지가 어려워지게 된"다.
12. 민간 기업에서는 어떤 철도 운영을 원하고 있나?
(2년 전 코레일의 답변) : "민간 기업에서는 수익성 좋은 고속철도의 운영을 원하고 있"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기존 노선을 운행하는 일반 열차는 수익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민간의 참여가 검토되지 않고 있"다. "현재 철도 운영 부문의 비효율성과 영업 적자를 경쟁 도입의 이유로 지적하면서, 현재도 수익성이 높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속철도만 민간 기업이 운영하고자 하는 것은 경쟁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이중적 주장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경쟁을 통해 효율을 제고하려는 목적이라면, 고속철도가 아닌 수익성이 낮은 부문을 맡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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