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철도노조 조상만(50) 씨. 그는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출퇴근 시간이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곳으로 일을 하러 다녔다. 그러다 철도 민영화를 막겠다며 23일 파업을 벌이고 석 달 후, 조 씨는 출퇴근에만 3시간 이상이 필요한 진주로 옮겨가게 됐다.
"부인의 증언을 따르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7시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9시다. 오후 7시에 일을 시작하는 야간 근무 때는 오후 4시에 집에서 나와야 4시 40분 열차를 타고 제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이 50세가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타지로의 전보는 장기 근속자의 자존감을 극도로 깎아내리고 그로써 길들이겠다는 비인간적인 조치다."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철도노조 강제전출 증언 및 대응 방향 토론회에서, 조 씨의 동료였던 어용수 부산전기지부 교선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조가, 제가 선배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유족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영화 시도→노조 파업→강제 전보…'오래된 공식'
민영화→파업→강제 전보. 이는 이른바 '네트워크 산업'에서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졌다. 앞서 통신산업(KT)이 그랬고, 발전산업도 동일한 길을 걸었다. 전국적인 사업소를 갖춘 기업이란 점을 악용해 파업에 참여했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는 직원들을 '뺑뺑이' 돌린 전례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직장 내에 만연한 우울증, 잇따르는 자살, 노조 무력화에 따른 노동기본권 해체 등이었다.
철도공사(코레일)의 이른바 '순환근무'에 노동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0일 시행될 '정기' 첫 전보를 시작으로 앞으로 코레일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뺑뺑이 돌릴지는 알 수가 없다. '전보'는 고유한 경영권, 즉 인사권에 속한다며 코레일이 노조와의 강제성 있는 협의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더욱이 한번 '강제 전보'의 문이 열리면 그 수준은 갈수록 악랄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로선 "동일 직렬 내 전보만 시행하므로 안정성을 확보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연고지 내에서 진행한다", "희망자를 중심으로 대상자를 선정했다"는 게 코레일의 설명이지만, 강제 전보로 일단 노조가 무력해지고 나면 전보안은 지금보다 얼마든지 개악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집으로 보내 주세요"…관리자 앞에 줄 서기는 '필연'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신현규 발전노조 위원장은 "철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니 발전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닌가란 두려움을 느꼈다"며 지난 2002년 파업을 벌인 후 발전노조에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설명해나갔다. 발전노조는 당시 5개 화력 발전사 중 한 곳을 선정해 매각한다는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반발, 38일간 파업을 벌인 후 348명이 해고됐다.
신 위원장은 "파업 이후 회사가 들고 나온 게 뜬금없는 사업소 간 인사이동이었다"며 "발전 산업에는 주요 도시에 위치한 선호 사업소가 있고 외진 지역에 있는 비선호 사업소가 있는데, 회사가 인사 이동의 이유로 한번 '형평성'을 꺼내 드니 비선호 사업소 사람들의 반응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 결과 비선호 사업소와 선호 사업소간 이동이 가능해졌다"며 "이후 노조보다 사측 관리자의 현장 장악력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원하는 사업소로 이동하고 싶을 때 노조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면 효과가 없고, 회사에 직접 얘기해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반복됐단 설명이다.
발전에선 당초 일부 발전사에서만 진행되던 강제 발령이 2010년 들어 '대규모'로 확대됐다. 신 위원장은 "선호·비선호 할 것 없이 한 사업소에서 장기 근무하면 무조건 돌리겠다는 5개 회사 차원의 '관외이동' 계획이 나왔다"며 "10~12년 일한 이들이 여수에서 일하다 강원도로 보내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립되고 소외된 50대 남성들…우울증·자살·스트레스로 사망
강제 전보는 '고립'과 '소외'를 의미한다. 가족을 떠나야 하고 정들었던 지역 사회를 떠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 산업에서 전보는 장기근속자를 상대로 진행되고, 따라서 이들은 보통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할 수가 없는 형편인 경우가 대다수다.
장 위원장은 "전보 이후 비교적 잘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며칠을 채 못 버티는 사람도 절반"이라며 "비번, 휴일, 휴가 등 틈틈이 집에 왔다가 왕복 800킬로미터를 운전해 다시 가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농담처럼 순환근무가 있을 때마다 '홀아비 집합소'들이 하나씩 더 생긴다고 우리는 말한다"고 했다.
과거 통신 공기업이었던 KT 역시, 2001년 민영화 이후 이른바 'CP 프로그램'을 설계해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 저학력인 사람을 비연고지로 '뺑뺑이' 돌리는 일들이 횡행했다. 이해관 KT 새노조 전 위원장은 "철도에서 막 시작된 강제 전출이 KT에서는 10년 동안 진행되며 '시스템'화 돼 있다"며 "회사에 찍힌 사람들은 팔도를 날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중증 당뇨병 환자를 대구에서 시작해 경상도를 거쳐 울릉도로 보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전주에 살던 사람을 포항으로 보내 지금도 찜질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심지어 난청인 나이 든 직원을 콜센터로 보내기도 했다. KT의 이러한 노무관리로 지난해에만 11명이 자살했고 2006년부터 300명 가량이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숨졌다"고 말했다.
"강제 전보 강행하며 노리는 것은 철도 민영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회사는 "노조를 탈퇴하면…"이라는 말을 건넨다. 발전노조 신 위원장은 "노조 간부를 하고 여러 차례 복직 투쟁을 한 강한 멘탈(정신)의 조합원들도 노조를 탈퇴하면 연고지로 보내주겠다는 말에 몇 달간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며 "그럼에도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작은 사업소로 몰아넣었다. 30여 명이 일하는 작은 사업소에 내로라하는 활동가 15명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보에 대해 '부당 인사'라는 법원 판결을 끌어내기는 굉장히 어렵다. 전보 및 전출에 따른 우울증 등의 질환을 '산업 재해'라고 인정받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백전백패"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법원으로 가면 보통 전보자의 '생활상 불이익'과 회사의 '업무상 필요'를 저울질한다"며 "이때 경제적 불이익 말고는 (심리적 불이익 등은) 법원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김명환 위원장은 이날 "사측도 강제 전보 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스트레스가 높다는 것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돌아가신 조상만 조합원에게 사장이 공식적인 사과하고 공사장(葬)을 하는 것은 못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저들이 강제 전보를 하며 노리는 것은 노조를 무력화해서 어떻게든 분할 민영화를 강행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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