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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팔문 본부장의 글이 더 돋보이려면…

[기자의 눈]'반값 아파트' 제안의 배경부터 살폈어야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방식, 즉 '반값 아파트'를 둘러싼 논쟁은 주로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이 논쟁은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이 분양방식을 핵심으로 하는 법률안을 내놓으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이 분양방식을 놓고 여러가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정작 주택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건설교통부 등 정부 관련부처에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언론을 통해 간간히 입장이 전달되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더 검토해 봐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러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건교부에서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강팔문 주거복지본부장이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방식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전제하지 않았지만, 강 본부장의 지위와 역할을 감안하면 이 글을 통해 정부 입장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강팔문 본부장의 '적절한 지적'

18일 <국정브리핑>에 "'반값아파트, 용어 적절치 않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강 본부장의 글은 짧다. 3000자가 채 안 되는 짧은 글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에 대한 강 본부장의 기본적인 인식과, 이 분양방식을 둘러싸고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잘 표현돼 있는 것 같다.

강팔문 본부장은 우선 '반값 아파트'란 표현에 대해 "과장됐다"면서 "국민들에게 잘못된 기대심리와 환상을 줄 수 있는 적절치 못한 용어"라고 밝혔다.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제도가 실제로 아파트값을 '반값'으로 낮춘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 강팔문 건교부 주거복지본부장. ⓒ 연합

강 본부장은 대지 임대부 주택에 대해 "건물에 대해서는 건물값을 제값대로 받고 대지에 대해서는 임대료를 받는다. 이는 '제값'을 받는 것이지 '반값'을 받는 것은 아니다"면서 "사과 반쪽을 반값에 판매하면서 '반값 사과'라고 하는 것과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은 높은 토지 임대료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홍준표 의원이 "용적률을 400%까지 높이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어떤 주택공급 제도도 용적률이 높아지면 주택가격은 떨어진다"라거나 "제도 자체에 의한 효과가 아니라 단순히 용적률 특례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힌 강 본부장은 이어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강팔문 본부장은 "'반값 아파트'란 용어가 마치 기정사실처럼 확산되게 되면 부동산 시장 같이 예민한 시장에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어떤 제도든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정책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본부장은 이런 우려의 연장선 상에서 "아파트값을 최대한 낮추는 것은 모두의 희망이나 주장과 결심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정치적 구호나 불확실한 기대를 앞세우기보다는 현실성과 실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중요한 때다"라고 글을 맺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구구절절 옳은 지적만 담긴 듯하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거론되는 '반값 아파트'란 표현은 엄밀히 따지면 적절치 않은 용어다. 사실 용어의 문제는 시민단체는 물론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한 홍준표 의원도 부정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정책효과는 반감된다"는 강 본부장의 지적처럼 정책효과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오해를 부를 용어에 대한 적절성을 문제 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기대가 무너질 경우에 책임을 지게 되는 쪽은 아무래도 정부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반값 아파트' 논쟁이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권의 사전포석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금은 정치적 구호나 불확실한 기대를 앞세우기보다는 현실성과 실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중요한 때다"라는 강 본부장의 비판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반값 아파트'가 지지를 얻는 이유

하지만 강팔문 본부장의 진정성을 충분히 헤아린다고 해도 이 글에 대해 갖게 된 아쉬움을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강 본부장의 글이라고 보기에는 논의의 폭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나 비판이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만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

강 본부장은 '반값 아파트' 제안이 나온 배경부터 살폈어야 했다. 이 제안의 논리적 근거가 비록 허술하다 해도 그것이 여론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된 이유는 현 정부 주택정책의 총체적 실패에 있다. 월급을 저축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뛰어오른 아파트값을 보면서 서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바라겠는가.

오히려 홍준표 의원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을 제대로 헤아렸다는 점에서, 넋 놓고 서민들의 아우성을 지켜만 보았던 정부 당국자들보다 더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 9월부터 다시 시작된 부동산 대란을 보면서도 기존 정책의 재탕이나 다름없는 '11.15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고, 그 뒤에도 허울뿐인 '분양가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여론과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강 본부장은 이런 반성과 자문을 해야 할 대표적인 정부 관료다.

주택 소비자를 괴롭히는 현재의 주택공급 제도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반값 아파트' 제안은 현재의 주택공급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공공택지 개발의 경우 한국토지공사 등 공기업이 민간에서 토지를 수용해 개발한 뒤 또다른 공기업이나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고, 토지를 받은 기업이 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경우에 따라 이 단계는 3단계를 넘어 5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주택 단가는 올라가게 되고, 결국 최종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높은 분양가에 숨이 막히면서도 은행 돈을 대출받아 무리하게 청약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다. 건설사는 이 과정에서 수천억대의 폭리를 가져간다. 전문가들은 이런 주택공급 시스템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법한 강팔문 본부장이 '반값 아파트'를 비판하면서도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지난 11월 이후 정부는 주택공급 제도 개선 논의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내년 초에 정책대안을 내놓겠다"는 말만 되뇌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정부가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건교부가 건설사의 입장만 대변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환매 조건부 주택 분양'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끝으로 하나 더 지적한다면, 강 본부장은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방식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으면서도 이것과 함께 논의되고 있는 '환매 조건부 주택 분양' 방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방식에 대해 강 본부장이 비판을 가한 관점에서 본다면 '환매 조건부 주택 분양' 방식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게다가 '환매 조건부 주택 분양' 방식도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방식'과 같은 정치적 상황과 맥락 속에서 제안된 것이 아닌가.

행여 '환매 조건부 주택 분양'은 여권에서 나온 제안이기 때문에 강 본부장이 애써 비판을 자제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강 본부장이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 방식에 대해 매우 적절한 비판을 했음에도 그 진정성과 의미는 탈색될 수밖에 없다.

기자는 격무에도 불구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이 글을 썼을 강팔문 본부장을 생각하면 이 글에 담긴 강 본부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강 본부장이 이번 글에서 다 쓰지 못한 본인의 생각을 활짝 펼쳐 보이는 글을 추가로 써서 발표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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