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들의 논리에 여당 의원들이 밀린 모양이다. 지난 13일 혁신적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던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특별위원회는 불과 이틀만에 열린 당정협의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특위 관계자는 "관료들을 강하게 질타했다"고 말했지만, 특위가 손에 든 결과는 딱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다시 한번 관료들의 힘을 재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5년 안에 내집 마련하게 해준다더니…"
우리당 부동산대책특위는 13일 한 달여 동안의 논의 끝에 마련한 부동산 정책을 언론에 일부 흘렸다. <프레시안>이 입수한 정책초안 문건의 앞머리는 '5년 안에 내집 마련을 위한 부동산 정책'이라는 표현이 호기롭게 장식하고 있다.
사실 특위의 안은 지금까지 정부·여당에서 발표했던 굵직굵직한 다른 부동산 정책들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시민사회의 해묵은 요구였던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의 전면 확대실시도 이 정책초안에 들어있었고, 공공택지에서는 공영개발만 하도록 한다는 등 파격적인 방안들이 담겼다. 또한 '반값 아파트' 논쟁에 등장하는 '대지 임대부 주택 분양'과 '환매 조건부 주택 분양' 방안도 모두 담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에서는 이 초안에 대해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여당이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라며 긍정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박영선 의원 "관료의 벽을 뚫고 나가겠다"
그러나 이날 당정협의 결과를 보면 우리당 특위의 호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하다. 특위가 제시한 방안 중 분양가 상한제의 확대실시 안만 정부에 의해 수용됐고, 나머지 정책방안들은 모두 공수표로 돌아갔다.
물론 이같은 평가에 대해 특위 측은 수긍하지 않고 있다. 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제 1차 당정협의를 한 것일 뿐이니 아직 성과를 논할 때는 아니다"라며 "앞으로 관료들의 벽을 반드시 뚫고 나가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박 의원은 이어 "오늘은 분양가 상한제를 중심으로 논의했기 때문에 합의 결과도 분양가 상한제 중심으로 나왔다"면서 "특위가 내놓은 공공택지의 공영개발 등의 방안은 다음주에 예정된 2차 당정협의에서 집중 논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당과 정부의 현격한 시각차도 드러나
하지만 특위의 이런 공식적인 태도와 달리 특위 내부에서는 정부의 단호한 태도에 부닥친 탓에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 등 정부 측 인사들과 특위 소속 의원들 사이에 현격한 시각차가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특위의 한 관계자는 "추가적인 논의를 해야겠지만, 정부 쪽은 새로운 분양제도를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며 "정부 측은 새로운 분양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전면도입보다는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수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재경부는 주택 문제를 금융자산 관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 같았고, 건교부는 아예 건설사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재경부와 건교부가 주택정책에 대해 취하고 있는 기본입장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원가공개 불가"…대통령도 우습게 만든 관료들
한편 이날 당정협의 내용 중 분양원가 공개의 확대 적용에 대한 정부 관료들의 입장이 특히 눈길을 끈다.
"열 배 남는 장사도 있을 수 있다"며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던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9월 "지금은 더 이상 원가 공개에 반대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당정협의에서 정부 측은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 다시 말해 국민 여론은 물론 대통령까지 찬성 입장을 보인 분양원가 공개를 정부 관료들이 반대하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 본부장은 "우리당이 관료들의 벽을 넘지 못하면 하나도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면서 "우리당은 관료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정당인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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