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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사세요? 아니, 일산 산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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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양사세요? 아니, 일산 산다고요?"

[도시, 욕망을 벗다⑦] '울보'가 된 최성 고양시장

"일산 살아요"의 함의 1.

"어디 사세요?"
"고양에 삽니다."
"고향 말고, 지금 사는 데가 어디냐고요?"
"지금 사는 데가 고양이에요. 경기도 고양시오."
"아, 일산이요?"

이런 '사오정' 같은 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산'이라는 지명에는 익숙하지만 '고양'이라는 지명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덕양구와 일산 동구, 일산 서구로 이뤄져 있다. 인구가 밀집돼 있는 일산 신도심 지역 주민들은 "고양에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산에 산다"고 말한다. 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위성 도시인 성남도 마찬가지이다. 성남도 수정, 중원, 분당 등으로 이뤄져있지만, 대부분의 분당 주민들은 "분당 산다"고 하지, "성남에 산다"고 하지 않는다. 산본(군포), 평촌(안양), 중동(부천) 신도시도 있지만 이 지역은 구도심과 지리적으로 붙어 있지만 일산, 분당은 구도심과 거리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문제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일산', '분당' 밖의 주민들을 소외 시킨다. 마치 서울에서 '강남 살아요'와 마찬가지로, 마치 "래OO에 살아요"와 같은 아파트 광고처럼 은연중에 스스로를 구도심 주민들로부터 구별 지으면서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산 살아요"는 "신도시 아파트 살아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성남 같은 경우에는 분당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최성 고양시장. 인터뷰는 2102년 1월 12일 시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고양시청

최성 고양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대목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산에 사시는 분들은 좋은 도시 환경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이로 인해 덕양구나 일산 외곽 농촌 분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게 됩니다. 이런 박탈감 정서가 도시의 통합에 장애물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여의도를 가든 해외를 가든 '고양시장입니다'라고 강조를 하고 다녔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고양시가 어디지? 아 일산도 고양시구나'라고 관심을 갖게 되죠."

무엇보다 '고양시'라는 이름을 앞세운 브랜드를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도시 슬로건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호수공원도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이 아니라 고양에 있는 호수공원이고, 킨텍스도 일산에 있는 킨텍스가 아니라 고양에 있는 킨텍스로 가야 하는 겁니다. 또한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 창설, 프로농구단 고양 오리온스 이전을 지원해서 '고양'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힘을 쏟았습니다. 작년에 연 전국체전도 고양시가 주도적으로 주최하는 것이라고 홍보해서 고양시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고, 곧 열릴 꽃 박람회도 '고양'을 제일 앞에 내세우고 무엇이든 일산 보다는 고양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 김성근 감독이 합류한 고양 원더스 창단 만으로도 '고양시' 홍보 효과가 대단하다. ⓒ고양시청

최 시장이 '고양' 이름 알리기에 주력을 하자 일산 지역의 한 국회의원이 항의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최 시장, 아무래도 일산을 내세우는 게 브랜드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잘 나가는 브랜드를 골라 회사명까지 바꿀 수도 있지만, 자치단체는 다르다.

"일산이 다르고, 덕양이 다르고, 농촌이 다르면 안 되죠. 자치의 기본은 공동체 정신 아닙니까. 고양시는 그동안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따로따로였는데, 다양한 도시적 역량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야죠."


"일산 살아요"의 함의 2.

고양시의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특징은 '베드타운'이라는 것. 1980년대만 해도 고양시는 전체 인구 16만4000명에 농업인구가 4만4000명(27%)에 이를 정도로 농업 중심 도시였다. 서울 근처이지만 수도권 개발 규제에 묶여 공장 대신 지리적 잇점을 살린 채소, 화훼 등이 발달돼 있었다. 1990년대 초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인구는 현재 96만 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삼송, 원흥지구에 3만5000세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100만 돌파는 시간문제다. 반면 농업인구는 2002년 2만1000명(2.5%)으로 줄어들었다. 인구의 대부분이 서울을 일터로 삼는 출퇴근 족이다.

▲ 고양시 인구추이. 100만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고양시청

2003년 고양시 덕양구에 정착해 2004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최성 시장은 "국회의원 할 때만 해도 4년 임기 동안 주민의 70%가 바뀐다고 할 정도로 인구 이동이 심한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보다 상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싸다 보니 임시 거주지로 여기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온지 10년 미만이다 보니 지역에 대한 애착심도 떨어졌다.

그러던 것이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양 삽니다"라면 더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산 살아요"를 자랑스럽게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것.

"자기가 사는 곳에서 돈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불평만 있을 뿐이죠. 다 따로 노는 거야. 주부는 주부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토박이들은 토박이대로. 덕양 따로, 일산 따로.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만 항상 분산돼 있었죠. 그런데 확연하게 바뀌고 있어요. 고양시에는 엄청난 숫자의 지식인들, 문화예술인들, 언론인, 학자 등 여론 주도층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요즘 '고양 산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하고 다녀요. 이제 고양시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평생 살 곳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도시 행정에도 변화가 따랐다. 과거 행정의 무게추가 서울로 가는 길을 잘 뚫고 교통편을 늘리는 출퇴근 문제에 쏠려 있었다면 최 시장 취임 이후에는 요란하다 싶을 정도로 지역 내 행사가 늘어났다. 취임식을 시청사가 아니라 호수공원에서 했고, 전국체전에도 지역 주민들이 최대한 많이 참가할 수 있게 운동장을 벗어나 개폐회식을 호수공원에서 진행했고, 각종 축제도 늘렸다. 고양시민들이 지역 내에서도 충분히 볼거리, 즐길거리, 놀거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처음에는 요란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고양시라는 브랜드를 키워서 시민들을 한 곳에 서로 어울리게 하고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 시켜 지역에 애착심을 갖게 하면 고양시가 가진 맨파워와 발전 가능성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게 될 겁니다."

면적의 절반이 개발제한·군사시설보호 구역

고양시의 행정의 또 다른 딜레마는 개발과 보전 욕구의 충돌이다. 고양시는 전체 면적 267.3㎢가 과밀억제권역에 해당되고 이중 개발제한구역이 44.9%다. 개발제한구역과 겹쳐 군사시설보호구역도 45.8%에 이른다. 공장 산업단지는 언감생심이다. 사정이 이러니 전임 시장 시절에는 주거용 택지지구 내(행신 2지구)에 무리하게 아파트형 공장 부지를 끼워넣다 보니 초등학교 바로 앞에 공장 허가를 내줘 아직까지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이 고양시만의 특이한 다양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단순한 '베드타운'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고양은 전국 화훼산업의 1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선인장, 장미 등의 화훼 산업이 발달했고, 서울이라는 엄청난 시장에 인접해 있어 시설채소 재배 면적도 상당하다. 고양시 면적의 13%가 논과 밭이다. 고양시에서는 환경농업대학, 압화산업대학 등 농업 관련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최성 시장은 농업에 대해 1차 생산에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 중이었다.

"단순 생산농업에서 벗어나 2,3차 복합산업화를 지향하는 농업인과 법인은 물론 비농업인이 농업분야 사업을 추진하고자 할 경우에는 개인의 사업화 지원도 병행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토록 할 계획입니다."

농업을 단순히 '농사'가 아니라 '사업'이 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최 시장은 지난해 11월 남미 순방 당시 칠레 농림부, 칠레 원예조합 등과 함께 MOU를 체결해 '고양 1호', '메이퀸', '고양레이디' 등 고양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개발에 성공한 5종의 장미 수출 판로를 개척했다. 최 시장은 "올해 꽃 박람회에서 히든카드를 선보일 겁니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도시의 다양성만큼이나 최 시장의 시장 업무 범위와 분야는 타 기초단체를 초월한다. 수도권 거대 도시 시장이면서도 농특산품 판매에 발 벗고 나서는 농촌 지방자치단체장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지난 겨울 구제역 파동 때 고양시는 매장지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빗물에 의한 침출수 예방책을 선보였다. 관내 축산 농가도 많다는 방증이다. 백로 떼죽음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자신의 판공비를 들여 먹이를 공급했을 정도로 생태 환경 보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대강 중 유일하게 둑이 막하지 않은 자연습지인 장항습지도 있다. 기피시설 민원도 골칫거리다. 서울시립승화원 화장장, 서울시립묘지, 난지 하수·분뇨·음식물 처리시설, 재활용쓰레기 적환장 등 서울시 기피시설이 고양시에 입주해 있다.




'한 분야 최고' DJ의 가르침

'기초단체장'으로서는 '악' 소리 날 정도로 일이 많지만 최 시장의 열의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명언을 했더라고. 왕은 실수를 해도 신하들이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지만 목민관이 실수를 하면 피해는 곧바로 백성에게 가거든."

기초단체장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하고 보람도 느낀다는 것이다. 최 시장 특유의 '산만함'도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내가요. 학교 다닐 때 생활기록부에 항상 '똑똑하나 주의가 산만하다'고 적여 있었어요. 영어 시간에 국어 공부하고, 국어 시간에 수학 공부하고. 주의가 산만하다 보니 마음먹고 공부할 때는 TV 틀어 놓고 그 앞에 앉아서 해야 공부가 되는 거야. 조용한 독서실에는 못 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거든."

껄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진 최 시장은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밀했다.

"내 가슴에 품은 수첩에는 앞으로 10년 계획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는 주의가 산만한 사람의 모든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어요."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 시장은 2008년 총선에서 떨어진 뒤 '시장이나 나가볼까'하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출마를 결심하면서 '시장이 되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6개월 만에 모두 구상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고양시는 단순한 기초단체장이 아니다. 한 번 고민해보라는 말을 듣고,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전 광주시장, 전갑길 전 광산구청장 등을 만났어요. 그 분들이 '네가 갖고 있는 청와대와 국회의원 경험, 기획력, 추진력, 정책적 역량을 보면 시장이 딱 맞을 수 있다'고 조언해줬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내 특성 중 하나인데, 난 당선을 목표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되면 이걸 해야지, 저걸 해야지'를 다 준비했어요. 한 번도 떨어지면 어쩌지를 걱정하지 않고, 경선 준비가 아니라 시장에 올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함평 나비축제, 안면도 꽃 박람회 등 전국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지방자치 공부를 했습니다. 올인 했죠. 청와대와 국회의원 경험에 내 열정으로 고양시에서 작품을 만들어보면 대통령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장이 안 됐을 경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1년 반 만에 3년치 구상을 당겨 실행한 것 같아요.(웃음)"

그는 '올인'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가슴 속에 품어 둔 구상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벅찬다고 했다. 그를 정치계로 발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에게 항상 이런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 번 일을 시작했으면 그 분야의 최고가 돼라."

김 전 대통령이 정계은퇴 뒤 영국에서 머물 때 통일 관련 연구소를 만들었고, 남궁진 전 장관 등의 추천에 의해 최 시장은 젊은 통일·외교·안보 소장학자로 합류하며 연을 맺었다. 고려대에서 정치학박사를 하고 최 시장은 "당시 국비로 독일에 유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통일 문제에 대해 역할을 해달라고 해서 합류했다. 그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할 거라고 생각했으면 안 갔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정치'는 꿈에도 꿔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그는 김 전 대통령 귀국 후에도 일산 자택에 보고를 하러 다니는 등 신임을 얻었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청와대 외교안보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외교안보 쪽은 주로 장차관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나이 핸디캡이 있었죠. 정무나 공보 쪽은 어린 사람도 되는데 외교 안보 쪽은 비서관 임명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김 전 대통령의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청와대에서 나왔어요. 다시 교수직으로 갈까 하다가 청와대에서의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17대 총선 출마를 결심했죠. 그 때 고향인 광주나 연고가 있는 고려대 등 지연과 학연 전부 배제하고 연고 하나 없는 고양시 덕양구(을)로 왔습니다. 당시 내 전공분야가 남북관계였는데 주변을 물색하다보니 고양이 딱 꽂혔어요. 김 전 대통령 일산 자택 시절에 매일 자유로를 타고 보고 하러 다니던 추억이 있어 둘러봤어요. 경의선이 지나는 곳이잖아요. 언젠가 통일을 대비할 도시라는 느낌이 팍 들었죠. 북한산 밑에 '북한동'도 있더라니까.(웃음) 그 날 바로 행주산성에 올라가 묵념하고 다음 날 사무실 냈죠."


고양시를 통일의 관문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그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만 4년을 했다.

"내가 한 상임위만 4년을 한 거의 유일한 초선일 겁니다. 주변 의원들이 나한테 '재선 하려면 교육위나 복지위로 가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구요. 그런데 난 통외통위를 고집했고, 나한테 조언한 의원들은 다 재선에 성공했고, 전 떨어졌죠.(웃음) 하지만 그 4년 동안 스스로를 불태우며 열정적으로 일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선에 실패한 뒤에는 국회의원 재선, 삼선이 큰 의미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시장에 도전하게 됐죠."

'한 분야 최고'를 강조하던 김 전 대통령의 영향에 '올인'하는 그의 성격이 더해져 국회에서는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로 활약했지만, 청와대 입성 전 그는 다양한 사회 분야에 대한 연구를 펼쳤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아태재단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국사회연구소 같은 진보적 학술운동 단체에서 박형준, 정관용, 고성국, 이종석 등 지금 한국 진보와 보수의 최고들과 거의 모든 사회 화두를 다뤘고,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시절에는 4년 동안 여성, 환경, 평화, 국제적 민중운동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 때의 경험과 노력들이 지금 다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시장은 자신이 고양에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를 잊지 않았다. 그는 지난 17일 열린 고양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주최의 학술회의에서 고양시가 남북교류협력의 한 축이 되겠다며 통일부에 5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는 고양시가 개성공단과 자매도시 체결 남북간 지자체 교류를 활성화 하고, 둘째는 오는 4월 고양국제꽃박람회에 북측 화훼산업 관련 인사를 초청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7월에 열리는 런던올림픽에 남북공동응원단을 파견하자는 것이고, 넷째는 10월 고양글로벌문화축제 때 호수공원에서 임진각을 거쳐 개성공단까지 가는 평화 마라톤을 개최하는 한편 개성공단에서 남북 공동 학술회의를 열자는 것이다. 다섯째는 고양시 차원에서 북한의 영유아 및 임산부 등을 위한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지원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최 시장은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해 아직까지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있어 북한에 대한 감정적·자극적인 대응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즉, 화해·협력 정책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글로벌 평화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보가 된 시장님

최 시장은 요즘 좀 변했다고 한다. 아내에게도 최근에 "여보. 내가 옛날에 국회의원 하던 시절의 당신 남편이 아냐"라고 말했다고. 눈물이 많아졌단다.

"국회에서 통외통위에 있고 청문회 하고 그럴 때는 권력을 향해 항상 질타하고 있고 거대 담론을 얘기했었는데, 시장 자리에 와 보니 차원이 다른 겁니다. 얼마 전에 직원이 다쳐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병원 원장한테 저라 생각하고 잘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여기 저기 축사하러 다니는데도 울컥하고 그래요. 삶의 현장에 직접 밀착해 눈물겨운 목소리 듣고 다니는데 어찌 눈물이 안 나오겠어요. 국회의원 하던 때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자세도 달라졌어요. 정치인 최성이 아직 완전히 바뀌진 않았겠지만, 인간 최성의 본래성을 찾기 위한 과정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독특한 경험이죠. 아마 이런 건 지자체장들이 다 겪는 걸 겁니다.(웃음)"



▲ 설 연휴를 맞아 재래시장을 찾은 최성 시장. ⓒ고양시청

"후일을 도모하지 않고 지금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최성 시장. 얼핏 보면 정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의 한 단면이다. 2년 반 뒤 그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96만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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