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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백로 홀로코스트'…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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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백로 홀로코스트'…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현장] 8월말이 고비, 해법은 없나?

7월 3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 백로 떼죽음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쥬쥬테마동물원' 입구에서 내렸다. "어린 생명 약자에게 전기톱이 웬일이냐"라는 환경단체의 펼침막 옆 사잇길로 들어서는 순간 처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건이 발생한 지 18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어진 나뭇가지 더미 폐허 위에 백로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철거촌의 무너진 잔해 위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있는 철거민들의 풍경과 오버랩이 됐다. 아직 이곳에는 300여 마리의 백로들이 새끼를 낳고 먹이를 사냥하며 살던 터전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 있다.

▲ 31일 오후 고양시 사리현동의 파괴된 백로 집단 서식지 현장. 백로들이 벌목된 나무 더미 위를 떠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김하영)

왜 몰랐을까

이미 보도된 대로 지난 7월 13일 땅 소유자가 벌목을 강행하는 바람에 수백 마리의 백로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특히 알에서 갓 깨어나던 때라 피해가 심했고, 새끼를 찾아 해매던 어미 백로들도 부러지고 쓰러지는 가지와 줄기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제 둥지가 나무 더미 속에 뭉개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백로들은 자기가 살던 가지를 떠나지 못하고 뙤악볕 아래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죽은 백로만 350여 마리였고, 살아남은 백로가 350여 마리. 환경단체에서는 떠나간 백로를 300여 마리로 추정해 대략 1000여 마리가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500마리만 살아도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1000여 마리의 거대 서식지를 그동안 왜 모르고 있었을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곳에 백로들이 집단 서식한 지는 3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주변에 공릉천, 원당천 등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하천들의 합수부가 있는데 미꾸라지, 피라미, 송사리 등의 먹이가 풍부해 백로들이 많이 모여들게 됐고, 이 지역의 잣나무 등이 백로가 서식하기 좋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백로는 여름을 한반도에서 나면서 새끼를 부화해 가을에 필리핀, 대만, 보르네오 섬 등으로 이동하는 여름 철새인데, 30분만 알을 떠나도 알이 식어버리기 때문에 사냥터에서 가까워야 한다. 이곳에서 왕복 2차선 찻길 옆이 바로 하천으로 조건이 매우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찻길 바로 옆에는 높이 10m가 넘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어서 서식지가 외부에서 안 보이는 장벽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고양시에서도 환경단체에서도 이곳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하천 너머 동물원에서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의 13일 무차별 벌목이 개시됐다. 마침 옆의 찻길을 지나던 운전자가 서식지 상공을 우왕좌왕 집단으로 날면서 울어대는 백로 떼의 아비규환을 보고 환경단체에 제보를 하면서 세상에 참극이 알려질 수 있었다. 제보마저 없었다면 백로들은 무관심 속에 모두 몰살 당했을지도 모른다.

▲ 찻길 쪽으로 난 키 큰 플라타너스가 담장 역할을 하고 찻길 옆에는 하천이 있어서 백로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서식지였다. ⓒ프레시안(김하영)

산이었다면, 두루미였다면

인간들이 자기 잣대로 만든 인간의 제도도 백로들을 비극 속으로 내몰았다. 원래 산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베어도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아 나무를 벨 때는 벤 만큼 심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땅의 용도가 산(林野)가 아니라 '밭'(田)이다. 밭에 심어 놓은 나무는 농작물과 같아서 주인이 마음대로 베어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곳도 땅 주인이 조경업체 사장으로 조경용으로 나무를 심었다가 이번에 땅을 팔기 위해 나무를 베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곳이 벌목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산(임야)이었다면, 백로가 문제가 돼 제멋대로 벌목을 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백로는 노랑부리 백로를 제외하고는 '개체수가 많다'는 이유로 멸종위기 보호종에서 제외돼 있다. 재두루미, 황새 등이 이런 꼴을 당했다면 땅 주인은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백로들을 학살한 땅 주인에게는 도덕적 비난 외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끝나지 않은 사투

그나마 제보가 접수된 직후 고양환경운동연합, 고양시청, 고양시 수의사협회 등이 현장으로 달려와 헌신적으로 구조 작업을 펼쳐 '몰살'만은 피할 수 있었다. 사건 당일 수십 마리를 평택의 야생동물보호센터와 인근의 동물원에 보내 치료를 받게 했고, 수의사들도 출동해 다친 백로들을 보살폈다. 어미를 잃은 새끼 백로들에게는 미꾸라지를 입에 넣어주며 살리려 안간힘을 썼다.

환경단체는 사건 현장에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과 고양이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조를 짜서 현장을 감시하고 있고, '고양시 백로를 지키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고양시에서도 매일 미꾸라지 40~50kg을 공급하면서 환경단체를 돕고 있다. 예산 준비가 안 돼 처음 10일 동안은 최성 고양시장의 업무추진비로 미꾸라지를 샀다고 한다.

고양시 송이섭 환경관리과장은 "사건 현장에 와서 처음 보고 '일단 살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면서 "처음에 수습을 하고 난 뒤에는 17일께 큰 비가 내려 새끼들 솜털이 젖어 저체온증으로 죽어나갈 때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드라이기를 동원해 어린 백로들의 젖은 솜털을 말렸다.

▲ 서식지 웅덩이에 고양시에서 풀어 놓은 미꾸라지를 사냥하고 있는 어린 백로. ⓒ프레시안(최형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둥지와 나무그늘을 잃은 백로들은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환경단체 회원들과 고양시청 공무원이 백로들을 감시하며 고개를 떨구고 입을 벌린 채로 탈진하는 백로들을 구조해 고양시 수의사협회에서 치료를 하고 있지만, 현장을 찾은 31일에도 4마리가 기력이 쇠해 죽었다고 한다.

미꾸라지를 공급하고 있지만, 제 부모를 잃은 어린 백로들은 먹이 경쟁에서 밀리기도 한다. 현장을 두 차례 방문했던 최성 시장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백로인데, 어미 백로들이 자기 새끼를 찾아내 보살피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어미를 잃은 백로들은 먹이 잡는 법, 나는 법을 배우지 못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비는 8월말

그래서 백로들이 남하를 시작하는 8월말이 고비다. 몸이 성한 어른 백로들과 어미를 잃지 않은 새끼 백로들은 자연의 섭리대로 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지만, 몸이 쇠한 백로들과 어미를 잃은 백로들은 떠날 수 없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동대책위 이성한 위원장은 "비교적 따뜻한 서남해안에는 백로가 텃새화 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면서 "지금도 건강한 백로들은 떠날 수 있지만 엄청난 교란이 일어나면서 둥지가 있던 곳, 새끼가 있던 곳을 못 떠나는 백로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떠날지 안 떠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게다가 성한 백로들이 떠난다고 해도 백로는 회귀성 철새이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 위원장은 "언제까지 이렇게 둘 상황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구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천연기념물 지정 가능할까?

우선 '생태 조사'에는 이견이 없다. 1000여 마리가 집단 서식하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데 대한 반성도 포함돼 있다. 이 위원장은 "지자체별로 관내 생태조사를 정례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 국립생활자원관에서는 이곳 백로 45마리에 밴딩을 해서 추적 관찰하기로 했다. 고양시에서도 대대적인 생태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송이섭 과장은 "전문가, 환경단체와 함께 조사위를 꾸려서 1년 동안 생태조사를 한 뒤 필요하면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 과장은 이밖에 "의견을 수렴해 야생동물의 집단서식지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여하고, 산란·성장기에는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도록 조례 재정비를 검토하고, 사진전 등 홍보 활동을 통해 야생동물 보호와 환경의식을 고취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나아가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13호), '여주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06호), '무안 용월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15호), '양양 포매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쳔연기념물 제229호), '통영 도선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31호), '횡성 압곡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48호) 등 보호종이 아닌 왜가리와 백로의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곳도 이미 6곳이나 된다.

특히 이 위원장은 "이들 번식지 대부분이 300마리 안팎임을 감안할 때 고양시 사리현동 번식지는 1000여 마리로 천연기념물 지정 보호 가치가 충분하다"고 역설했다. 마침 길 건너편 동물원과 연계해 훌륭한 생태학습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 부상이 심한 백로들의 인공 치료장. 사진 왼쪽 천막에서 치료를 받은 뒤 기력을 되 찾으면 스스로 장애물을 넘어 사진 오른쪽 통로로 나갈 수 있게 설계했다. ⓒ프레시안(김하영)

시민 트러스트

걸림돌은 '사유지'라는 점이다. 이성한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시에서 토지를 사들여 보호하면 좋겠지만 예산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대신 토지를 임대해 보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백로들이 한 곳에서 영구히 번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단으로 서식하면 백로의 배설물이 토양을 산성화 시키고 나무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각종 개발에 밀려나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나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난다는 것. 통영 도선리의 경우 197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나 1980년대 이후 백로나 왜가리가 거의 찾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양양 포매리도 1970년 2000마리 이상의 왜가리와 백로가 찾아왔으나 1992년 조사에서는 500마리로 줄어들었다. 여주도 마찬가지로 배설물로 소나무가 죽고 아카시아가 자라자 다시 소나무를 심어 보호했음에도 지금은 극소수만 남았다고 한다.

따라서 번식지를 영구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에게도 큰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개발제한구역이기 때문에 밭으로 써도 큰 이익을 내기 힘든 땅"이라며 "이에 상응하는 토지 임대료를 지급하면 훌륭한 번식지로 회복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를 위해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백로 서식지를 지키는 '시민 트러스트'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김하영)

끝나지 않은 백로 홀로코스트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백로는 희고 깨끗해 예부터 청렴한 선비를 상징했고, "백로가 들면 마을이 부유해진다"해서 백로가 줄어들면 일부러 백로가 좋아하는 소나무를 심어 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의 백로는 수천, 수만 년을 대를 이어 한반도에 날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의해 밀려나고 학살을 당해도 보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간의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고통 받고 있다. 대부분의 백로·왜가리 번식지 천연기념물도 1960~70년대에 지정된 곳들이다. 근래 들어 이들에게 더 무관심했던 것이다.

사건이 났을 때 관계자들은 "한 달만 기다려줬어도"라고 안타까워했다. 어차피 가을이면 남쪽으로 떠날 새인데, 뭐가 그리 급해 새끼들이 알에서 갓 깨어나던 시기에 둥지를 밀어버렸느냐는 것이다.

2010년 여름, 고양시 사리현동 백로 떼죽음 현장. 아직 '홀로코스트'는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백로들이 인간들에게 '탐욕'에 대해 묻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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